1년 전에 내가 내린 결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되세요?
2021년 10월, 한 스토킹범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에게 벌어진 일입니다. 이때 이 판사가 풀어준 스토킹범이 약 1년 뒤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는데,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이죠.
판사의 결정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판사는 왜 스토킹범을 풀어줬던 걸까요?
가해자가 피해자를 해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는 수사 과정에서 사람을 구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토킹을 또 할 것이 뻔해 보여도, 그런 이유만으로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는 뜻이죠.
왜냐고요? 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을 펼쳐보면요, 불구속 수사 원칙이 먼저 나오는데요, 범죄를 수사할 때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이란 뜻입니다. '구속 안 하기'가 디폴트값인 거예요.
첫째, 수사받는 사람의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을 때.
둘째, 수사받는 사람이 증거를 없앨 것 같을 때.
셋째, 수사받는 사람이 도망갈 것 같을 때.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의 경우를 볼까요?
지난해 10월에 판사는 전주환이 이 세 가지 조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풀어준 겁니다. 주소 일정하고, 문자 메시지 같이 스토킹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서 증거 없애기도 어렵고, 도망갈 것 같지도 않다는 이유로요.
스토킹범이라 풀어주면 또 스토킹할 가능성이 누가 봐도 컸지만, 법에 이렇게 정해져 있으니 판사는 법대로 한 거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8월까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가운데 무려 32%가 기각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면 법에 한 줄 추가해서 수사 받는 사람이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도 구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 규정하면 어떨까요?
거의 그렇게 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7년에 우리나라 구속 제도가 크게 바뀐 적이 있는데, 이때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도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넣자는 제안이 나왔거든요. 열띤 토론이 펼쳐졌는데 결국에는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는 구속 사유 조항에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구속할 수 있는 예외 조건을 추가하면 구속하지 않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너무 훼손하는 것 같다고 걱정한 국회의원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는 구속영장 심사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만 법에 들어갔습니다. 일종의 절충안이었죠.
이제라도 다시 법을 바꿔서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도 구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런 법안이 나와 있고 이번 국회에서 논의될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입장이 좀 달라요. 그 방법보다, 일명 '조건부 석방'이라는 대안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그냥 자유롭게 풀어주게 돼 있는데요, 스토킹범처럼 피해자를 또 해칠 것 같은 경우에는, 전자 발찌를 차고 행동을 실시간 감시 받는 '조건부'로 풀어주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수사할 때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과 피해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안이라면서 법원은 이쪽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죠.
반면 검찰 같은 수사 기관은 아무래도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관리하기도 훨씬 쉽고 수사하기도 편하니까, 구속할 수 있는 사유를 추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앞으로 어떤 방안이 채택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가가 지금 피해자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9월 1일부터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번째 정기국회가 시작됐는데, 정기국회 회기인 100일이 다 지나가기 전에 스토킹 범죄로부터 피해자들을 보호할 확실한 방법을 법으로 만들길 바랍니다.
판사들은 법대로 결정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억울한 죽음과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면 그런 법과 제도는 어딘가 망가진 것이 분명하니까요.
(기획 : 정윤식 / 영상취재 : 신동환 / 편집 : 김복형 / 콘텐츠디자인 : 김성은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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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한 스토킹범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에게 벌어진 일입니다. 이때 이 판사가 풀어준 스토킹범이 약 1년 뒤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는데,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이죠.
[전주환 /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제가 진짜 미친 짓을 했습니다."
판사의 결정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판사는 왜 스토킹범을 풀어줬던 걸까요?
구속영장, 오해와 진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해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는 수사 과정에서 사람을 구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토킹을 또 할 것이 뻔해 보여도, 그런 이유만으로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는 뜻이죠.
왜냐고요? 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을 펼쳐보면요, 불구속 수사 원칙이 먼저 나오는데요, 범죄를 수사할 때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이란 뜻입니다. '구속 안 하기'가 디폴트값인 거예요.
그럼 언제 구속을 할 수 있느냐? 딱 세 가지 예외 상황을 법에 정해놨습니다.
첫째, 수사받는 사람의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을 때.
둘째, 수사받는 사람이 증거를 없앨 것 같을 때.
셋째, 수사받는 사람이 도망갈 것 같을 때.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구속해서 수사하면 안 된다고 법에 박아 놓은 겁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의 경우를 볼까요?
지난해 10월에 판사는 전주환이 이 세 가지 조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풀어준 겁니다. 주소 일정하고, 문자 메시지 같이 스토킹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서 증거 없애기도 어렵고, 도망갈 것 같지도 않다는 이유로요.
[우종수 / 경찰청 차장 - 2022년 9월 20일 국회 발언]
"(저희가 1차 고소 사건의 영장을 청구했지만) 주거 일정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을 당했습니다."
스토킹범이라 풀어주면 또 스토킹할 가능성이 누가 봐도 컸지만, 법에 이렇게 정해져 있으니 판사는 법대로 한 거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8월까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가운데 무려 32%가 기각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겠죠.
피해자를 위협해도 구속 안 된다?
그러면 법에 한 줄 추가해서 수사 받는 사람이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도 구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 규정하면 어떨까요?
거의 그렇게 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7년에 우리나라 구속 제도가 크게 바뀐 적이 있는데, 이때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도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넣자는 제안이 나왔거든요. 열띤 토론이 펼쳐졌는데 결국에는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는 구속 사유 조항에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구속할 수 있는 예외 조건을 추가하면 구속하지 않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너무 훼손하는 것 같다고 걱정한 국회의원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는 구속영장 심사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만 법에 들어갔습니다. 일종의 절충안이었죠.
하지만, 이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허용되는 상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애매할 때 판사가 참고하라는 뜻입니다. 피해자를 또 해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는 여전히 구속할 수가 없는 거죠. 그 결과 스토킹범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줄줄이 기각되고, 풀려난 스토킹범들이 피해자를 또 공격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이제라도 바뀔까?
이제라도 다시 법을 바꿔서 피해자를 해칠 것 같은 경우도 구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런 법안이 나와 있고 이번 국회에서 논의될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입장이 좀 달라요. 그 방법보다, 일명 '조건부 석방'이라는 대안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그냥 자유롭게 풀어주게 돼 있는데요, 스토킹범처럼 피해자를 또 해칠 것 같은 경우에는, 전자 발찌를 차고 행동을 실시간 감시 받는 '조건부'로 풀어주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수사할 때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과 피해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안이라면서 법원은 이쪽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죠.
반면 검찰 같은 수사 기관은 아무래도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관리하기도 훨씬 쉽고 수사하기도 편하니까, 구속할 수 있는 사유를 추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앞으로 어떤 방안이 채택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가가 지금 피해자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9월 1일부터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번째 정기국회가 시작됐는데, 정기국회 회기인 100일이 다 지나가기 전에 스토킹 범죄로부터 피해자들을 보호할 확실한 방법을 법으로 만들길 바랍니다.
판사들은 법대로 결정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억울한 죽음과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면 그런 법과 제도는 어딘가 망가진 것이 분명하니까요.
(기획 : 정윤식 / 영상취재 : 신동환 / 편집 : 김복형 / 콘텐츠디자인 : 김성은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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