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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글로벌포커스] 한국에 기회가 될 러시아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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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러시아에서 지난 6개월은 '엘리트 대탈출'의 시대였다. 2월 24일 이후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났다. 출국자 수에 대한 확실한 통계가 없지만, 여러 자료를 감안하면 망명을 선택한 러시아 사람은 60만~7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최근 6개월만큼 러시아 엘리트들이 해외로 도망친 전례는, 100년 전 공산주의 혁명 때뿐이다. 이것은 물론 러시아에 큰 위기이지만,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엑소더스의 이유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아직까지 러시아 국민 다수는 어용언론의 프로파간다를 믿고 있으며, 전쟁을 열심히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교육 수준이 높은 대도시 거주 청년층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 즉 지금 엑소더스 행렬에 있는 사람은 학자, 기술자, 경영자 등 전문직들이다.

그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대략 3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징집에 대한 우려다. 특히 부분동원령 선포 이후 이러한 사람들이 급증했다. 둘째는 사상 때문이다. 탈출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 만행이다. 또한 그들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러시아의 권위주의화에 대해 불만이 많다. 셋째, 직업 때문이다. 2월 24일 이후 외국 기업 상당수는 러시아에서 철수했으며, 국제시장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기업들도 제재 때문에 많이 무너졌다. 따라서 세계 수준의 엔지니어나 IT 전문가들은 무너지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망명을 선택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물론 비자가 있는 사람들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유럽·미국에서 좋은 직업을 찾기는 쉽지 않으며, 단기비자를 취업이 가능한 장기비자로 바꾸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지금 비자 발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튀르키예와 같은 나라들로 갔다. 특히 구소련의 일부였던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그리고 조지아로 이동한 사람이 많다. 부분동원령 선포 이후 보름 만에 20만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출국을 선택했다.

하지만 망명자 대부분은 그 나라들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문직 일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 한편으로 갑작스럽게 망명을 선택한 사람의 상당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한다면 돈이 부족해서 해외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바로 한국에 기회일 수 있다. 최근에 한국은 고학력 이민자 유치에 대한 희망이 많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선진국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한국으로 올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를 탈출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잘 모르는 러시아 엔지니어와 학자들은, 한국에서 취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선택할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 국내에서 첨단 기술의 나라로 인기가 높으며, 삼성이나 LG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국 대기업과 연구소들이 저렴한 임금으로 구글·애플과 같은 IT 공룡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고급 인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앙아시아에서 홍보를 한다면 수많은 러시아 망명자들은 한국에 관심이 생길 것이다. 물론 이 지역의 한국 공관들이 이 '두뇌 사냥'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좋은 기회는 앞으로 언제 올지 모른다.

그들이 한국에 온 이후 어떻게 될까? 일부는 한국에 정착해서 평생 동안 나라의 기술 발전에 많이 기여할 것이다. 다른 일부는 위기 이후에 귀국하거나 제3국으로 갈 수 있다. 어느 경우든, 누구든지 한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자신을 도와준 한국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질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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