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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월드리포트] 제로 코로나의 역설…유럽여행보다 비싼 베이징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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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0월 1일 국경절(건국기념일)을 맞아 일주일 간의 연휴에 들어갔습니다. 모처럼의 황금연휴를 맞아 여행을 계획하는 건 수도 베이징 주민들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올해 국경절 연휴를 맞아, 베이징 교외의 숙박비가 터무니없이 비싸졌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베이징 외곽 여행 비용이 예전 유럽 여행 비용보다 비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겁니다. 특히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민슈(민숙, 民宿) 형태 숙박비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민숙을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민박, 펜션 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도심이 아닌 외곽 교외 지역에 위치한 단독 주택 형태의 숙박시설을 의미합니다. 숙박업을 하는 전문 회사들이 경영하는 경우도 있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가격과 형태가 다양한데,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일단 교외 지역에 호텔이 별로 없다는 이유가 크지만,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생활에 익숙한 도시주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특히 마당이 있고 민속적 정취가 있는 교외 민숙을 호텔보다도 더 선호합니다. 해외에 나갔다가 돌아올 경우 10일 동안 격리를 해야 하는 방역정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황금연휴에도 중국 밖으로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결국 국내 여행 밖에는 할 수 없는데 그 중에서도 베이징 교외 숙박비 상승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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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민박 10배 뛴 가격에도 예약 어려워



문제는 올해 국경절 연휴기간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겁니다. 여행 관련 데이터 조사업체에 따르면 베이징 교외 숙박시설의 평균 가격이 한해 만에 30% 이상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체감하는 가격은 그 이상입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하루 숙박비 100위안(한국돈 약 2만 원) 정도면 괜찮은 곳을 예약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하루에 1000위안(약 20만 원)을 넘는다는 겁니다. 특히 중국 하이난을 비롯한 다른 지역 유명 관광지의 5성급 호텔 가격은 많이 오르지 않았는데 유독 베이징 외곽 민숙 숙박비만 크게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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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교외 인기 관광지인 구베이 수상 마을(고북수진, 古北水镇)의 이 숙박시설은 평소 1박 가격이 300-400위안(약 6~8만 원) 정도지만 국경절 연휴에는 1박에 3,166위안(약 62만 원) 으로 10배가 올랐습니다. 최초의 전문화된 민숙 시설로 인기가 많은 한 숙박시설의 경우 국경절 연휴 기간 방 2개 거실 1개 형태의 1박 가격이 4,300위안(약 86만 원)인데, 여행객들은 인도양 몰디브의 고급 호텔 오션뷰 객실 가격과 비슷하다며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베이징이 중국 전체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고 물가도 비싼 곳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라는 겁니다. 상하이에 이어 전국 2위인 베이징 주민 1인당 평균 가처분 소득은 7만 5,002위안으로 1,400만 원을 약간 넘습니다(2021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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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에 베이징을 떠나지 말라'…폭증한 수요



유독 베이징 외곽 민숙 숙박비가 비싸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됩니다. 첫 번째는 '베이징을 떠나지 말라'는 방역 정책입니다. 공식적으로 국경절 연휴에 베이징을 떠나 다른 곳을 방문했다가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교통수단을 타려면 48시간 내 PCR 검사를 받아 음성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베이징으로 복귀 후에는 3일 동안 2번의 PCR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7일 동안은 모임과 인원밀집 장소 방문을 자제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방문한 베이징 외 지역에서 7일 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베이징 복귀가 엄격히 제한됩니다. 예를 들어 한 베이징 주민이 연휴 기간 베이징에서 가까운 텐진시의 한 호텔에 투숙하며 2-3일 여행을 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묵었던 텐진의 호텔이 속한 행정구역에서 확진자 1명 나왔다면? 여행 계획에 맞춰 베이징에 복귀하려던 교통편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베이징 주거 지역의 담당자에게 상황을 알리고 베이징 외곽에서 며칠을 더 머물며 PCR 검사를 수차례 더 받아야 합니다. 최근 베이징 밖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오려던 직장인들 중에서도, 출장지역 확진자 발생으로 베이징에 돌아오지 못하고 외곽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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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아직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경우, 아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연휴에 베이징을 떠나지 말라'고 권고 아닌 권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베이징을 떠나 방문한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상당기간 등교를 못할 수도 있다'는 설명인데, 이런 말을 듣고도 여행을 강행할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일부 직장에서도 직원들에게 '베이징을 떠나지 말라'고 사실상의 지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지로 여행을 갔다가 그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해당 지역이 아예 봉쇄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외지 여행을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도박'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결국 행정구역상으로 베이징시에 있는 도심 외곽 숙박시설에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인구 2천 1백만 명으로 서울의 두 배가 넘는 베이징 주민들 상당수가, 황금연휴에도 베이징 밖으로 나갈 엄두는 내지 못하니 베이징 내 숙박시설 예약은 두 달 전부터 이미 만석인 겁니다.

민숙 숙박시설 잇단 폐업…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의 역설



두 번째 이유는 그동안 숙박시설의 공급이 줄었다는 겁니다. 지난 2019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엄격한 방역 정책이 지속되면서 직장 워크숍이나 가족 모임 등 여행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고 그 사이 폐업하는 숙박시설도 늘어났다는 게 현지 여행업계의 분석입니다. 특히 2021년까지는 공실률이 50%에 달해도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던 소형 숙박시설 운영자들이, 올해 들어 더 엄격한 봉쇄형 방역 정책이 지속되자 영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공급 자체가 줄어든 상태에서, 황금연휴에 베이징 밖으로 못 나가는 여행객들이 베이징 내 숙박시설을 집중적으로 찾다 보니 가격이 10배씩 뛸 수 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일부 여행객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라며 '물가관리국에 신고라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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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문을 못 열었으니, 한 번에 3년 치를 벌어야



하지만 '숙박시설 운영자들이 황금연휴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만 하기는 어려운 사정도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방역정책은 물론 실질 소득 감소로 인해 여행 수요가 크게 줄었고,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중국 소비자들도 더더욱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숙박 업계에서 '3년 간 문을 못 열었는데, 한 번에 3년치를 벌어야 한다(三年不开张,开张吃三年)'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황금연휴에 민숙 숙박시설은 예약이 두 달 전부터 꽉 차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1년 전체로 보면 예약률은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여행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의 소비여력이 줄어들면서 앞으로 갈수록 숙박시설들의 수입이 줄어들 거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제로 방역 정책이 올해 안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고, 경기침체의 골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정영태 기자(jyt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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