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3058’을 아십니까···“의사 부족해 간호사들이 대리수술·처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30일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불법의료 근절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3058을 아십니까.” 30일 나순자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강조한 이 숫자는 17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 수이다. 나 위원장은 “이 숫자는 한국 의료와 국민 건강에 있어 통한의 숫자”라며 “이 숫자를 돌파하지 못한 한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 공공의료 확충도 지역의료 격차 해소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부족해 간호사 등 타직종이 대리수술·처방 등을 한다는 실태조사 결과와 현장 종사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 인력 부족 의료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보건의료노조 산하의 99개 의료기관(사립대병원 29개, 국립대병원 10개, 특수목적공공병원 22개, 지방의료원 20개, 민간중소병원 18개)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병원들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 정원과 현원의 격차가 가장 큰 A국립대병원은 정원보다 106명이 모자랐고, 사립대병원 중 격차가 가장 큰 B사립대병원은 73명이 부족했다. 특수목적공공병원(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 근로복지공단병원 등)과 지방의료원은 병상 규모가 작지만 미달된 정원 수는 10~50여명에 달했다.

의사가 부족해 실제로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진료과는 산부인과(26개 병원), 소아청소년과(24개), 흉부외과(23개), 비뇨기의학과(22개), 일반외과·정형외과(21개), 일반내과(19개), 응급의학과·신경외과(17개) 등이었다. 특히 지역의 유일한 거점 병원인 사례가 많은 지방의료원은 응급의학과의 진료 차질이 빚어진다고 응답한 병원이 6개에 달했다.

부족한 의사 인력은 PA(의사가 하는 진료·치료 행위 일부를 대신하는 병원 내 보조인력)라고 불리는 간호사 등이 대체했다. 단일 의료기관으로 PA 인력이 가장 많은 곳은 한 사립대병원으로 200명에 달했다. PA 인력은 주로 사립대병원과 국립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 많았는데, 27개 사립대병원의 PA 인력은 평균 78명, 9개 국립대병원은 평균 74.5명이었다.

한국에는 PA인력에 대한 의료법상 근거가 없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드나든다. PA간호사는 의사를 광범위하게 대체하면서 불법 의료행위에 내몰린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63.2%(60개)의 의료기관이 수술·시술·처치 등 의사 업무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이 대리하는 불법 의료행위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외에도 의사의 아이디·비밀번호 공유를 통해 간호사 등이 처방전을 대리 발급하는 행위, 동의서 서명을 대리하는 행위 등에 대해선 각각 75.3%(73개)와 69.1%(67개)의 의료기관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경향신문

30일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간호사 A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사 부족으로 담당 교수는 5분도 안 되는 진료를 더 빨리 보기 위해 전공의나 PA간호사들이 먼저 환자를 만나서 증상을 기록하고 검사 결과까지도 정리하라고 한다”며 “진료는 의사의 업무이기 때문에 PA간호사들은 불안하고 부담감이 너무나도 크다. 무슨 일이라도 발생했을 때 의료법 위반의 몫은 PA간호사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지역이나 병원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병원의 PA간호사들은 제가 입사했던 10년 전보다 2배 이상은 늘어난 상황”이라고 했다.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현재 우리 병원은 전공의 정원보다 10명 부족해, 남아있는 전공의들이 과중한 업무로 힘들어하고 외과 파트의 경우 전공의 지원자가 전무하다”며 “전공의 업무가 과중되니 수술·시술 동의서를 낮 시간에 받을 수 없어 부득이 환자가 자고 있는 밤에 원활한 설명 없이 동의서를 받고, 보호자가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 그에 대한 불만과 민원을 간호사에게 전가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던 B씨의 병원에는 현재 감염내과 교수가 1명도 없다.

노조는 이같은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려면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필수 진료과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는 “의사 업무는 계속 늘어나는데 의대 정원은 17년째 동결되고 있고, 전공의 충원율은 91.2%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의사 인력 부족이 초래하는 파행진료와 의료왜곡을 개선하려면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인력을 확충하는 게 가장 근본적이고 최우선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