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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푸틴, 우크라 4개주 병합 수순 착수…미, 장기전 대비 新사령부 설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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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거세게 반발한 가운데 미국은 유럽에 새 사령부 설치를 계획하는 등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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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헤르손과 자포리자 2개 주(州)를 독립국으로 승인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이들과 동시에 지난 23∼27일 러시아 병합 주민투표를 실시한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독립국 지위를 인정해둔 상태다. 포고령 서명은 이들 4개 지역을 러시아 영토에 병합하기 위한 사전 절차이다.

30일 오후 3시(한국시간 30일 오후 9시)로 예정된 러시아 연방 편입 조약 체결식, 다음 주 헌법재판소의 합헌 여부 검토와 상·하원 비준 절차 등을 거쳐 푸틴 대통령의 70번째 생일을 사흘 앞둔 다음달 4일 병합 절차가 모두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60만3500㎢)의 16.5% 규모이자 남한 면적과 비슷한 약 10만㎢의 땅과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3970만명)의 10분의 1에 달하는 약 400만 인구가 러시아 수중에 떨어진다. 이는 1945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 강제병합이라고 CNN방송은 전했다.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 푸틴 대통령은 이들 지역에서의 우크라이나 군사행동을 러시아의 ‘영토적 통합성’ 침해 행위로 간주해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핵 보복 가능성도 시사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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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루한스크에서 한 남성이 러시아 국기가 그려진 옷을 입은 어린이들 벽화를 지나고 있다. 루한스크=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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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격화·장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푸틴의 병합 절차 착수로 협상의 문을 걸어잠근 꼴이 된 데다 피 한 방울 안 묻혔던 2014년 크름반도 병합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도네츠크·자포리자주 상당 지역은 아직 러시아군이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새로운 영토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30일 영토 편입 조약 체결식 후 연설에서 무력 사용 위협 언급을 할지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국내 민심 동요도 부담이다. 러시아의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56%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매우 놀랐다”고 답해 지난달 37%를 훨씬 웃돌았다. 푸틴 대통령의 부분적 동원령에 대해서는 47%가 “불안, 두려움, 공포”를 느꼈다고 답했다. 다음은 “충격”(23%), “분노·분개”(13%) 순이었다. 러시아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는 응답은 27%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29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부분 동원령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실수가 바로잡혀야 하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며 노인, 환자, 장애인, 군면제자 등 잘못 징집된 이들을 귀가시키라고 지시했다.

독립국가연합(CIS) 정보기관장들과 영상회의에서는 “서방은 어느 나라에서든 색깔혁명(민주화·독립 운동)과 유혈사태를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며 정국 불안의 화살을 외부로 돌렸다. 또 “단일 패권은 가차 없이 무너지고 있다”며 “이제 보다 정의로운 세계질서의 형성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가스관에서 잇달아 발생한 누출 사고를 놓고는 “국제적 테러행위”라고 비난하며 미국 배후설 주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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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열차 차량 기지가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파괴돼 잔해만 남아 있다. 하르키우=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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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합 조약 체결식 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축하 행사 역시 국론 결집과 애국심·적개심 고취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결국 병합 절차에 착수한 데 대해 “쓸모없는 주민투표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며 “우리의 대응은 매우 가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결코(never), 결코, 결코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른바 주민투표는 완전한 가짜이며 그 결과 역시 모스크바가 조작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얼마가 걸리든 필요한 만큼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 “절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나라의 영토를 무력이나 위협으로 병합하는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 훈련·장비 지원 효율화를 위해 고위 장성이 지휘하는 새로운 사령부를 독일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NYT 등이 이날 전했다. 지난 2월 개전 직후 마련된 대응 체계를 효율화해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다.

러시아 군사전문가 바실리 카신은 NYT와 인터뷰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보내더라도 푸틴 대통령은 새로 병합한 지역의 통제권 상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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