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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고환율 시대 산업계 명암](上) '킹달러'에 원자잿값 급등…車·전자 등 수익성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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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산업계가 길어지는 고환율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사업 분야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는 가운데, 불확실성에 따른 위기감은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가 긴축 정책을 이어가는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도 좀처럼 끝나지 않을 조짐이라 고환율 상황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고환율 시대 산업계 영향을 확인하고 대책을 모색한다.


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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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달러·원 환율이 1440원을 돌파하며 연고점을 새로 썼다. 환율이 144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6일(고가 1488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의 일이다. '킹달러' 기조 속에 국내 산업계가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특히 항공, 자동차 관련 업계, 전자 등이 원가 상승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있고 이른바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잘 나가는 산업'으로 꼽혔던 정유업계와 배터리 업계도 고환율의 장대비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자동차 업계는 환율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핵심 소재인 철강 가격이 크게 오르는데다가,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부품 가격 압박으로 원가가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해외 공장에서 차량을 사와야 하는 수입차 업계는 고민이 깊다. 예약이 밀려있는데도 반도체 공급난으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실적이 저조했는데, 환율 상승 영향으로 추가 물량을 마음껏 들여오기에는 부담이 지나치게 커졌다.

그렇다고 당장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미 정해진 출고가에 시가를 연동했다가는 소비자 신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테슬라코리아가 차량 가격을 수십 퍼센트(%) 인상하면서 소비자들에 뭇매를 맞고 있다.

일단 일부 자동차 업계는 연식변경 등 모델을 새로 출시하면서 가격을 소폭 인상하고 있다. 환율 문제가 아닌 옵션을 추가하는 등 상품성을 개선한 영향이라고 설명이지만, 현실적으로 가격을 올리려는 조치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렇다고 가격 인상 폭이 수백만원 수준에 그친 탓에 실제 환율 영향을 상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자 업계도 인플레이션에 더한 고환율로 어려움이 크다는 전언이다. 이미 상반기 원자재 부담이 전년 대비 20% 안팎으로 커진데 더해, 하반기에는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일단 소비자를 위해 기존 가격 정책을 유지한다는 방침,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 조정은 더욱 쉽지 않게 됐다. 한때 프로모션을 축소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재고 해결을 위해 다시 대규모 프로모션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세계가 엔데믹에 접어들며 날개를 펼치려는 항공업계도 고환율 현상은 악재다. 현장에서는 '환 헤지(hedge)'를 마련해 환율 변동에 늘 대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환율 변동이 급하고 크게 일어나는 시기에는 헤지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저가항공사(LCC)들은 환 헤지를 준비할 여력이 없어 고환율에 몸살을 앓는 중이다.

대형항공사(FSC)들의 상황 역시 녹록잖다. 대한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하고,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는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284억 수준의 외화 환산 손실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항공기 운영 시 가장 필요한 항공유, 기재 리스료, 영공 통과비 등이 달러로 결제되기에 고환율이 이어지면 여객이 회복되더라도 실적 회복에 환율이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높으면 소비자들의 여행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해, 고환율은 여객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혔다.

상반기 실적만 '12조'라는 역사를 쓴 정유업계도 하반기 환율에 놀란 모습이다. 국제 하락 속에서 정제마진까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까지 더해져 상반기 대비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업은 달러를 기반으로 거래하기에 평시에는 환율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면서도 "지금처럼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면 환차손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유사는 원유를 구입한 뒤 일정 시차를 두고 현 시점 환율로 계산해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국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환율 추이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해외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배터리 업계에도 고환율은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배경에도 고환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 자체를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 시점을 조정할 정도로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분석이다.

산업계가 고환율로 고통받자 우리 외환 당국도 환율 급등 방어를 위해 나섰지만 묘수는 없어 보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은행이 14년 만에 국민연금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로 했다.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국민연금은 한은에서 달러를 빌려 해외 투자에 나설 수 있고 한은은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공격적인 해외 투자가 가능해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환율 방어 효과가 바로 나타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서학 개미(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팔 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기업과 금융사가 해외 자금을 국내로 가져오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한·미 통화스와프를 논의할 정도로 달러 유동성이 부족하다고는 여기지 않는 모습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민이 불안해하기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한다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저희가 (미국에) 저자세로 스와프를 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라고 선을 그었다. 이론적으로 통화스와프가 필요 없다고 재차 강조한 것이다.

설령 임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수 있다 해도 미국이 특정 한 국가만 단독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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