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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폭력으로 왕위 찬탈했지만 세조는 유능한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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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남 교수 '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 출간
왕위 찬탈했지만 유능했던 '세조' 리더십 조명
결과와 과정, 개혁과 폭력... 현대에도 교훈
한국일보

국립고궁박물관이 공개한 세조 초상화(왼쪽).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은 이정재의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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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7대 왕 세조(재위 1455~1468)는 문제적 인물이다. 정통성에 죽고 사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의 왕위를 찬탈했다. 친동생 둘을 죽였고, 단종이 목을 매달게 했으며, 아버지 세종의 충신 성삼문 등 사육신을 제거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왕좌를 향한 꿈틀거리는 욕망은 영화 관상의 대사를 통해 대중에 각인됐다.

왕위에 오른 후의 행적은 '격변'이라 할 만하다. 재위 14년 내내 손에 묻은 피 냄새를 지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 백성을 괴롭히던 여진족을 토벌하고 국가 재정을 튼튼히 했으며 통일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했다. 조선 500년 토대를 굳건히 다졌다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측근들로 나랏일을 꾸려 가면서도 능력 있는 신하라면 반대를 무릅쓰고 발탁하는 파격도 보였다. 폐쇄적이고 즉흥적인 국정운영이었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업적을 냈다. 머리 아픈 고민거리도 후대에 안겼다. 과정이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한가. 그는 부국강병의 개혁가인가, 비정한 왕위 찬탈자인가.

조선 전기 정치사를 전공한 김순남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가 세조의 삶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책 ‘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를 출판했다. 세조실록을 통해 세조의 욕망, 고뇌, 성과와 한계를 날 것 그대로 드러냈다. 김 교수는 본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세조는 선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며 "창작에 기반한 영화는 예술가가 아름답게 구현하고, 그에 나타난 왜곡된 이미지는 연구자가 기록 확인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일보

김순남 고려대 교수. 저서 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ㆍ김순남 지음ㆍ푸른역사 발행ㆍ375쪽ㆍ2만원.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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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세조는 폭력을 동원해 집권한 결과 그 정당성을 부정당했다. 하지만 재위 14년간 ‘조선의 체제’를 완성한 유능한 군주였다. 세조를 향한 선악의 이분법적 이해는 그의 정치 실상을 밝히는 데 제약이 될 뿐이다.”

-세조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파격적 결단의 지도자다. 정변을 통해 집권했고, 그 과정에서 함께 한 동료가 신하가 됐고 나아가 가족이 됐다. 그러니 국정 운영 과정에서 구태여 공적 시스템을 고집하지 않았다. 자신이 검증한 인물이라면 절차와 형식에 구애하지 않고 발탁했고, 목적 달성을 위해 선봉에 세웠다. 세조가 두드러진 정책 성과를 낸 이면에는 이런 파격적 결단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세조의 공과는.

“조선 체제를 완성했다. 경국대전을 편찬해 고려시대 위화도 회군부터 세조에 이르는 전장(典章ㆍ법칙)을 성문화했다. 전국 각 고을을 진관(鎭管ㆍ지방 군사조직)으로 편성해 스스로 싸우고 스스로 지키는 국방 체제를 확립했다. 다만 세조는 발 딛는 곳마다 신이와 상서가 쏟아지는 하늘의 아들이자 살아 있는 부처, 유교적 군주를 초월한 절대 군주가 되고자 했다. 이런 성과를 거두는 과정에서 신료의 책임은 가중됐고, 백성의 고통은 배가 됐다.”

-세조의 왕위 찬탈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리 역사 속 인물 중 특히 세조는 지나칠 만큼 가혹한 평가를 강요당하고 있다. 우왕과 창왕을 살해하고 정몽주를 격살한 후 새 왕조를 세운 태조, 정도전의 목을 베고 배다른 동생 둘을 살해하고 아버지의 항복을 받아 집권한 태종, 큰아버지 광해를 끌어내리고 정인홍 등을 숙청하고 집권한 인조에게는 찬탈의 정당성을 묻지 않는다. 세조의 왕위 찬탈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은 이로 대신하고 싶다.”
한국일보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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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현대 정치에 주는 시사점은.

“찬탈이자 정난을 거쳐 왕위에 오른 세조였기에 ‘파격’은 필연적이었다. 정치가 세조가 파격적으로 국정을 결단하는 면이 특장점일 수 있다. 다른 말로 즉흥성과 일회성을 띤다는 의미다. 세조의 국정 운영 방식은 이후 시스템으로 구축되지 않는다. 정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측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세조는 ‘파격적 결단’으로 자신이 고집한 바를 성취했으나 현대 사회는 다르다. ‘파격’의 일상화는 오히려 혼란으로 혹은 일탈로 귀결될 확률이 더 높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세조의 일생을 통해 ‘파격적 정치 결단’의 희열과 우려를 동시에 느끼기 바란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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