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회사의 의약품 연구개발비는 통상 비용으로 처리하지만, 국제회계기준(K-IFRS)이 정한 6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면 공장이나 기계장치처럼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렉키로나처럼 시장성을 상실하거나, 임상 시험에 실패하면 곧바로 손실 폭탄으로 돌변한다.
박동흠 엔터밸류 대표 회계사는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식약당국의 판매 승인 이후에 발생하는 개발비만 자산으로 인식한다”며 “국내처럼 개발 단계에서 무리하게 자산으로 분류하게 되면 손상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23일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산업 회계처리 감독지침’을 발표하면서 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회계기준원은 임상 1상 승인 전에 지출한 개발비도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면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기존에는 신약은 임상 3상 이후, 바이오시밀러(복제약)는 임상 1상 이후부터 자산화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같은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금감원에 따르면 신약은 임상 3상 이후 절반가량(50%),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이후 60%가량이 식약당국의 최종 승인을 통과한다. 나머지는 모두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 감독지침대로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개발비 규모가 커지면 개발 실패에 따른 손실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새 지침은 또 이미 한 국가에 판매 중인 의약품을 다른 나라 식약당국에 추가로 판매 승인을 요청한 경우, 이때 지출하는 개발비는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식약당국이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손실처리 될 수 있다. 의약품 원료 등 창고에 있는 재고자산도 다른 의약품 개발에 활용되면 개발비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재고자산은 시장 가격이 하락하거나, 더는 팔리지 않게 되면 재고자산평가손실로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약품 개발에 쓰인다는 이유로 다시 자산으로 분류되면 자산 규모가 부풀려질 수 있다.
이밖에 감독지침 문구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금융당국은 ‘임상 1상 전 자산화’ 가능한 의약품을 바이오시밀러로 한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지침에는 이런 문구가 없다. 제약업계와 투자자 입장에선 복제약이 아닌 신약도 같은 지침이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또 개발비를 자산으로 분류하려면 기술적 실현 가능성뿐만 아니라 IFRS에서 정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지침에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 항목만 나와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임상 1상 전 자산화는 바이오시밀러에만 해당하고, IFRS의 6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만 개발비를 자산화할 수 있다”며 “오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추가 설명 자료를 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그간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개발비를 자산으로 과도하게 인식해 투자자에 혼란을 주는 문제가 많았음에도, 정부가 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겠다는 명분으로 지침을 개정한 건 ‘탁상행정’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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