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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임 100일 넘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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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1972년생/ 경문고/ 서울대 경제학과/ 1998년 공인회계사 합격/ 2000년 사법시험 합격(42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 대전지검 형사3부장/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 2022년 금융감독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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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많이 해주지 말라고 금융감독당국에서 창구 지도한다는 말이요? 요즘은 그런 거 없어요. 금감원장 바뀌고 나서 오히려 자율에 맡기겠다는 쪽으로 자리 잡히는 분위기입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의 귀띔이다.

문재인정부 때만 해도 각 은행은 대출 상한선을 두고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상시 점검을 받아야 했다. 최근 취임 100일을 넘긴 이복현 금감원장(50)이 오고 나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그의 직전 이력을 감안하면 작금의 행보는 일견 의아해 보인다. 더 강하게 금융권을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1972년생 이 원장은 서울 경문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사법시험에 차례로 합격(사법연수원 32기)했다. 이후 검사로 20여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원장 내정 전 직책은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였다. 이 같은 이력 덕에 금감원 내에서 ‘최초’ 딱지를 여럿 달았다. 일단 역대 원장 중 최연소다. 더불어 검사 출신 첫 금감원장이다. ‘검사’ 하면 드는 선입관 탓에 향후 금융권이 ‘사정 한파’에 시달릴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 검사 시절 별명부터 예사롭지 않다. ‘독사’다. 꼼꼼히 사건 기록을 살핀 후 법정에서는 관련 사건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기소 이유에 논란이 없게 자료 조사도 직접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 보유 검사로 금융·조세범죄 수사에 강했고, 특히 국정농단 사건 때는 삼성그룹을 집중 수사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런 ‘강성 검사’ 이미지 때문에 원장 내정 당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이 원장을 두고 “경제학과 회계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아주 적임자”라고 두둔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그런데 막상 금감원장 취임 후 대내외 평가는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의 기조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 발현’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우선 현장 전문가, 업계 종사자와 소통을 상당히 많이 해왔다. 취임 후 100일이 되기 전에 은행·금융투자·여신전문금융·보험·저축은행 등 주요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 형식으로 대부분 소통했다. 가상자산 사업자와도 두루두루 만나고 다녔다. 지난 8월 말에는 빅테크·핀테크 업계 간담회를 열어 핀테크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금감원의 금융중심지 지원센터를 통해 해외 IR을 개최해 국내 유망 핀테크사가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투자 유치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 하면 권위를 내세우고 금융권을 옥죄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이 원장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다. 핀테크 간담회 때는 정장이 아니라 캐주얼 차림으로 참석,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 이해도가 낮으면 어쩌나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물론 감독 기능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업계 현안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쪽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예전 원장들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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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핀테크 업계 간담회 때 캐주얼 차림으로 소통에 나서 화제가 된 이복현 금감원장(왼쪽에서 네 번째).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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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초기부터 강조했던 유관 기관과의 협조도 ‘순항 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원장 취임 후 ‘감독 업무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업권, 그리고 관계 기관이 모두 협력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당국 주도로 감독 방향을 결정하기보다는 현장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려 노력했고, 금융위뿐 아니라 기재부, 한국은행 등 유관 기관과 정보 공유를 확대해 공조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고 답한 바 있다. 실제 이 원장 취임 후 불공정 거래, 불법 행위 시도 등에 대해 사정당국과 빠른 공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쌍용차 인수 무산 관련 불공정 거래 혐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에디슨모터스 관계사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즈)는 대주주가 6개 투자조합이다. 그런데 에디슨EV가 쌍용차 인수를 발표했다. 관련주는 폭등했다. 그러다 결국 인수가 무산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6개 투자조합은 거액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금감원은 6개 투자조합이 불법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 서둘러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 패스트 트랙(신속 수사 전환) 사건으로 이첩시켰다.

이 원장은 “회사 내부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행위, 그로 인해 발생한 시장 교란, 주가 급락으로 소수 주주에게 피해를 준 행위 등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엄하게 처벌하려고 한다”며 검찰과 공조를 더욱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더불어 그는 무엇보다 ‘균형감’에도 초점을 맞출 것이라 강조한다. 한동안 이전 정부가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이로 인해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가 등장했다. 문제는 종전 금융권과는 다른 잣대의 규제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전통 금융권의 불만이 불거진 것. 이와 관련 이 원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성장 효율성과 경쟁성 그리고 소비자 후생 증진 등 몇 가지 큰 가치를 두고 규제, 감독을 하겠다”고 말했다.

빅테크가 편리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각 금융 상품을 비교할 수 있게 하는 등 혁신적인 면도 있지만, 빅테크가 자칫 독과점으로 흘러가면 수수료 인상 등 이런저런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을 금지하는 금산분리(은행이 비금융회사의 지분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규제) 완화, 부수 업무를 제한하는 전업주의 규제 개선 등 전통 금융권 숙원 사업을 하나둘 풀어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정치 논란에 노출될 수도

해묵은 사모펀드 소비자 피해 문제, 금융지주 CEO 중징계 관련 소송 등 오랜 시간 법정에서 다퉈야 할 현안은 이 원장에게 주어진 숙제다. 이 원장이 ‘윤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만큼 정치권과 대립할 여지도 상존한다. 대표적인 것이 태양광 관련 사건이다. 그는 총 5조6088억원 규모 은행권 태양광 사업 대출에 대한 금융당국 실태 파악, 전수조사와 더불어 부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정당한 조사라 주장할 수 있지만 태양광 사업은 문재인정부 당시 강력하게 추진했던 프로젝트인 만큼 논란을 빚을 수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 측근으로 친시장 중심 행보,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건 때로는 필요하지만 원치 않는 구설에 오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할 때”라고 얘기한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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