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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시선] 감옥에서도 차별받는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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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수감된 외국인 A씨의 변호인 접견을 마치고 서류를 정리하면서 구치소 생활은 괜찮은지 물었다. 묻고 나서 속으로 아차 싶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에 연루되어 먼 타국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삶이 괜찮을 리 없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국적으로 한국어 대화가 서툴러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A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곤 잠시 망설이다, 배가 좀 고프다고 했다. 구치소에서 밥을 많이 안 주느냐고 물으니, 한국식이 아니면 한 끼에 빵 2개와 잼 1개를 받는다고 했다. 무슬림인 A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한국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음식을 배식받으면 김치와 밥만 먹는데 그것도 양이 많지 않아 늘 배가 고프다고 했다.

경향신문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오랫동안 개정되지 않았던 ‘행형법’을 2008년 수용자의 인권증진 및 권리구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면개정해 지금의 ‘형집행법’이 되었다. 개정되면서 외국인 수용자와 관련한 내용도 처음 만들어졌다. 과거엔 차별금지 사유에 ‘국적’만 있었는데 ‘출신민족’이 추가되고, ‘(교도)소장은 외국인 수용자에 대하여 언어·생활문화 등을 고려하여 적정한 처우를 하여야 한다’는 근거 규정도 새로 마련되었다. ‘형집행법 시행규칙’에는 외국인 수용자 관련 세부내용이 더 있다. 음식 부분을 보면, 수용자에게 지급하는 음식물의 총열량은 1일 2500㎉ 기준인데 외국인 수용자에게는 소속국가의 음식문화, 체격 등을 고려해 조정할 수 있고, 쌀이나 빵 또는 그 밖의 식품을 주식으로 지급하되 소속국가의 음식문화를 고려한다고 정하고 있다. 현행 법령의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외국인 수용자에게 밥 대신 한 끼에 빵 2개와 잼 1개를 주는 건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조금 부족해 보인다.

국제기준에 비춰보면 부족한 부분이 더 보인다. 27년간 교도소에 구금되어 있었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추모하며 유엔에서 2015년 인준한 ‘유엔 피구금자 최저기준 규칙’(이른바 ‘넬슨 만델라 규약’)에 따르면, 외국인 수용자에게는 필요한 경우 통역이 지원되어야 하고, 실질적인 외부교통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형집행법에는 외국인 수용자의 통역지원 내용이 전혀 없다. 시행규칙에서 ‘외국어에 능통한 교도관’을 전담교도관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제한적이다. 구치소에서는 통역기 등 외부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어 재판을 준비하는 변호인 접견에서조차 손짓 발짓이 동원되는 상황이다. 가족이 모두 외국에 있어 사실상 가족의 방문접견이 불가능한 외국인 수용자의 경우 전화통화가 유일한 외부소통 창구인데, 내국인 수용자와 동일하게 한 달에 한 번씩, 3분 정도만 허용되고 있다. 2019년 외국인 수용자의 외부교통권 강화를 위한 국가인권위 의견표명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변화는 없다.

2020년 기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외국인은 2451명이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범죄에 대한 엄한 처벌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지금처럼 수용시설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고, 인권침해다. 감옥이 차별적인 공간이 되지 않도록, 시설 내 외국인 처우가 개선되길 바란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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