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강원도 양양 명지리 한 야산에서 갓 캔 양양송이. 가을철 한정적으로 맛볼 수 있는 자연산 양양송이는 황금송이라 불릴 만큼 값이 높지만, 맛과 향이 워낙 탁월해 미식가 사이에서 최고의 식재료로 통한다. 백종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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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귀족’ ‘숲속의 보물’에 비유하는 귀한 버섯이 있다. 바로 강원도 양양의 특산물 ‘양양송이’다. 가을철 가장 값비싼 식재료로 알려졌는데, 그만큼 향과 맛이 독보적이다. 지난해는 품귀 현상으로 1㎏당 130만원대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송잇값이 작년 대비 절반가량 떨어졌다는 소식에 양양으로 달려갔다.
지난 15일 양양전통시장의 풍경. 싱싱한 양양송이가 시장 안팎으로 쫙 깔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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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도 급이 있다
40년 경력의 박상희 선별사가 등급 별로 양양송이를 분류하고 있다. 양양에서 채집한 송이는 그날그날 양양산림조합이 한꺼번에 거둬들여 등급을 나누고 입찰을 진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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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을 찾는 MZ세대는 서핑으로 이름난 죽도나 인구 해변으로 몰리지만, 식도락가의 핫플레이스는 따로 있다. 온갖 제철 식재료와 먹거리가 즐비한 남대천 옆 양양전통시장이다. 가을철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양양송이다. 시장통의 허름한 식당이나, 약초 가게, 좌판 할 것 없이 ‘양양송이’를 내걸고 손님을 맞는다.
1㎏당 53만원. 지난 15일 양양산림조합 공판장에서 낙찰된 1등품 양양송이의 가격이다. 자연산 송이가 비싼 건 인공 재배가 어렵고, 산지가 강원도와 경북 산간 지역으로 한정돼 있어서다. 양양에서는 특히 현북면 명지리와 어성전리가 주생산지로 꼽히는데, 맛과 향이 타 지역 송이보다 빼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연간 생산량은 경북 영덕이나 청송이 더 많으나, 양양송이가 20~30%가량 더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다. 우리네 산림에서 나는 농산물 가운데 산림청의 ‘지리적 표시’를 최초로 인정받은 것도 ‘양양송이(2006년)’다.
1등품 양양송이와 4등품 양양송이. 크기의 차이가 확연하다. 양양송이는 1‧2‧3등품이 각각 금‧은‧동 빛깔의 띠를 둘러 시중으로 유통된다. 4등품은 주황색 띠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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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서 채집한 송이는 그날그날 양양산림조합이 한꺼번에 거둬들여 입찰을 진행한다. 등급도 이곳에서 결정된다. 40년 경력의 선별사 박상희(80)씨는 “버섯에 붙은 흙만 봐도 안다”면서 “딴 지역보다 몸집이 두툼하니 단단하고 향이 깊다”고 귀띔했다. 양양송이의 등급을 좌우하는 것은 길이와 갓. 버섯 대가 8㎝ 이상으로 길고, 갓은 우산처럼 펼쳐지지 않고, 뭉뚝한 상태여야 1등품이다. 1‧2‧3등품 버섯을 각각 금‧은‧동 빛깔 띠를 둘러 시중으로 유통한다.
1등품 양양송이. 갓이 펴지지 않고, 대가 8㎝ 이상으로 길어야 1등품으로 분류된다. 요즘은 1㎏당 40~60만원대에 공판가가 형성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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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 찾아 삼만리
양양송이는 살아있는 소나무 밑에서 두어 개씩 짝을 이뤄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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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양양 명지리의 한 야산. 극한직업으로 통하는 양양송이 채집 현장에 따라나섰다. 송이는 생육 조건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화강암 토질에 6~8월 100mm 이상의 충분한 강우량이 필수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송이꾼 이모씨(65)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말을 해마다 실감한다”면서 “이론적으로 모든 생육조건을 갖춰도 안 나는 해가 있다”고 털어놨다.
송이 채집은 요령이랄 게 없었다. 송이꾼은 길도 나지 않은 가파른 산비탈을 새벽부터 수차례 오르내렸다. 송이는 보통 9월부터 10월 초중순까지만 채집하는데, 생산량이 좋은 해는 한 달 동안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단다. 이맘때 송이꾼들은 하루 7~8시간씩 산을 탄다.
땅을 비집고 올라온 양양송이. 요즘 같은 날은 하루에 5㎝가량 쑥쑥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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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송이가 나는 땅의 산주들은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막는다. 워낙 고가이기도 하고, 생산량도 들쭉날쭉해 예민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무단채취자들이 드나드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단다. 이씨도 “송이밭은 자식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 송이꾼 사이에선 불문율이라고 했다. 숲 한편에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이자, 감시를 위한 텐트가 벙커처럼 숨겨져 있었다.
초보자에게 송이 채집은 숲속 보물찾기가 따로 없었다. 소나무 주변 푸석푸석한 땅 밑에서 고개를 내민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발밑에 두고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작 송이를 캐는 일은 쉬었다. 송이가 묻힌 땅을 긴 막대로 찔러 넣자, 송이가 쑥 삐져 올라왔다. 얼굴을 들이밀 필요도 없었다. 송이에 붙은 낙엽과 흙을 털어내는 동안 향긋한 버섯 향이 코를 찔렀다.
양양송이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양양전통시장 인근 '송림'의 등심 상차림. 양양송이와 한우는 불판 위에서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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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양양송이를 맛볼 차례. 양양전통시장 인근 동네 맛집으로 알려진 22년 전통의 한우전문점 ‘송림’을 찾았다. 한우 구이나 불고기에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양양송이를 쌓아두고 영업하는 고깃집이다.
“등심 2인분에 양양송이 좋은 놈으로 한 접시요.” 그날그날 경매해 가져온 양양송이를 사용하는 이집에선 주문하는 법도 남달랐다. 당연히 버섯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팔리는 4등품이 한 뿌리(100g)에 3~4만원을 받았다. 등심과 함께 먹는 양양송이는 풍미가 과연 대단했다. 되레 고기보다 질감이 쫄깃쫄깃해서 씹는 맛도 훌륭했다.
양양전통시장 '물치칼국수'에서 먹은 손칼국수. 시장에서 그날 채집한 양양송이를 직접 구해다 고명으로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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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칼국숫집에 가서 송이를 내밀자, 주인장이 익숙한 듯 싱크대를 가리키며 대접과 칼을 내줬다. 직접 송이를 씻고, 먹기 좋게 자른 다음 칼국수를 기다렸다. 김이 폴폴 나는 칼국수 위에 양양송이 올리기. 이만한 초간단 궁극의 레시피가 없었다. 칼국수는 7000원, 4등품 양양송이는 2만원. 배보다 배꼽이 더 컸지만 생애 가장 향긋하고 진한 칼국수를 맛봤다.
양양=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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