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감독
3년간의 준비로 유럽 5개국 초청공연 성사
가장 한국적 오케스트라의 빅픽처 첫단추
부임 후 악단명 바꾸며 시작된 실험·도전
‘관습적 서양악단화’ 국악관현악단 지양
전통악기로 만든 음향에 시대 고민 녹이고
창조성 발현한 시나위 음악 전세계 속으로
“이제 이륙, 지속가능 한국음악 미래 그려”
원일 예술감독은 2019년 11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 부임, ‘악단 브랜딩’에 돌입했다. 3년 목표를 두고 그린 ‘큰 그림’을 통해 악단명의 변경과 함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국악관현악단의 모습을 지향하며 실험과 도전을 이어갔다. 그는 5개국 유럽투어에 대해 “지난 3년간 추진해온 일의 첫 단추를 낀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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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의 구성부터 관습은 깨졌다. 이국의 타악기에 한국의 전통악기, 그 위로 ‘최신의 소리’인 전자음향과 인성이 얹어진다. 흔치 않은 ‘청각의 충격’은 디오니소스를 깨웠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인 연주자들의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한다. 관객들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린 듯 춤을 췄다. ‘기경결해(技經結解·내고, 달고, 맺고, 풀고)’의 음악적 미학이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음악은 세계를 초월하고, 경계를 허물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디오니소스 로봇’이 유럽으로 향했다. ‘K-뮤직 인베이전(Invasion)’이다.
장담컨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천편일률적 국악관현악은 진작에 던져버렸다. 지난 3월 ‘2022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 초연한 ‘디오니소스 로봇’은 ‘현 시점’에서 원일 예술감독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이어온 ‘혁명적 실험’의 최정점이다.
‘디오니소스 로봇’은 ‘가장 한국적인 악기’로 전 세계의 ‘보편적 고민’인 “인간의 실존 문제를 이야기”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흥미로운 것은 음악의 메시지가 곡의 형식, 소리의 표현방식과 같은 방향을 향해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고민을 말하고, 그 대안으로 시나위 정신을 이야기해요. ‘행동을 통해서만 자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거죠. 그 정신이 음향의 충돌과 융합을 통해 나타나요. 가장 파격적인, 현대적이고 자발적인 시나위의 모습이에요.” 5개국 유럽투어 직전 만난 원일(사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지난 3년간 추진해온 일이 코로나19로 늦어지다 마침내 첫 단추를 끼게 됐다”고 말했다.
▶ ‘빅 픽처’를 향한 3년의 시간...한국 대표 악단을 향한 길= 장장 13박 15일에 걸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유럽투어는 일종의 ‘빅 픽처’였다.
“부임하자마자 첫 공연 ‘반향’을 마치고 유럽 출장을 갔어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향후 3년 안에 가장 좋은 공연장에서 가장 좋은 개런티를 받고 유럽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2019년 11월 부임 이후 원일 예술감독은 ‘악단 브랜딩’에 돌입했다. 원일 감독과 함께 한 지난 3년은 파격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부임과 동시에 그는 악단명부터 손을 댔다. 단체명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일 감독이 그리는 ‘새로운 미래’엔 ‘새로운 브랜드’가 요구됐다. 그것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였다. 그는 “세계 사람들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고, 가장 한국적인 음향을 내는 오케스트라라는 걸 인식하도록 브랜딩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 따라왔다”고 했다.
“행동을 통해 자기 창작을 실현하는 과정, 그 창의성을 시나위라고 부르는 거예요. 시나위의 이념과 철학은 굉장히 한국적이에요. 그것이 외국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봤어요.”
‘경기도립국악단’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불리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변화가 나타났다. 여러 국악관현악단을 거친 원일 감독의 개인적 경험들이 변화의 바탕이 됐다. “서양 오케스트라를 지향”하며 “관습적으로 서양악단화” 된 국악관현악단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다.
원일 감독은 자신과 단원들의 시너지를 믿었다. 그는 일찌감치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창작음악의 꽃을 피웠다. 푸리(1993), 바람곶(2003) 등을 통한 음악과 소리의 실험은 현재 ‘진화한 K-뮤직(한국음악)’의 뿌리깊은 DNA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음악에 대한 미학적·철학적 사고”와 “시대성을 고민한 ‘첨단 음악’의 시도”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안에서도 이어졌다. 여기에 “전통음악을 탄탄히 쌓아온 엄청난 역량의 단원들”이 만나니 다양한 ‘음악 실험’이 가능해졌다. ‘신(新), 시나위’, ‘메타 퍼포먼스:미래극장’, ‘시나위 일렉트로니카’, 뮤지컬 ‘금악’, ‘장단의 민족, 바우덕이 트랜스포머’ 등을 통해 장르의 경계를 넘고, 확장을 이끌었다. 그는 “국악관현악단의 관습은 우리가 하는 음악 행위 열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일 감독이 탐색해온 ‘전통음악의 미래’가 ‘시나위’라는 용광로 안에서 들끓고 있었다.
지난 3년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 음악계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며,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 험난한 길에서 원일 감독은 스스로를 “예술감독이 아닌 부족장”이 되길 자처했다. “한 공동체를 책임지고, 단원들을 대신해 희생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예술감독으로서 그의 철학이다.
“개성있는 연주자가 모여 딱 부러지게 합주하고, 개인일 때는 어디에서도 따라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오케스트라예요. 시나위 정신은 협동과 자발성이라는 궁극적 근원을 통해 음악을 실현하는 거예요. 창조적인 역량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성숙한 단계까지 가는 것이 궁극적 오케스트라의 완성인 거죠. 아마 완성은 없겠죠. 계속 제시하고 시도하고, 단계 단계 나아가는 과정인 거예요.”
원일 예술감독이 이끄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지난 11일 폴란드 바르샤바 드라마티즈니 극장(Teatre Dramatyczny, Warsaw Poland)에서 유럽투어의 첫 일정을 소화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한국의 미’·‘다이내믹 코리아’를 주제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컨템포러리 음악을 들려줬다. [폴란드 바르샤바 크로스컬쳐 페스티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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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뮤직 인베이전...“한국정신과 음악의 근원...K팝의 뿌리 느끼게 될 것”= ‘3년의 결실’이 꽃 필 유럽 투어는 원일 감독의 오래 전 구상처럼 각국의 랜드마크에서 현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지난 1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시작, 오는 23일까지 헝가리·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체코로 이어진다. 투어는 현지 한국문화원과 대사관의 공식 초청으로 성사됐다.
1부에선 ‘한국의 미’를 주제로 보다 ‘전통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한국 행진곡 풍의 ‘대취타 역(易)’을 비롯해 거문고 산조, ‘민요, 가곡, 정가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곡들이다. “어떤 악단도 할 수 없는 음악이 될 것”이라고 원일 감독은 귀띔했다.
공연의 ‘메인 디쉬’는 2부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나온다. 원일 감독이 쓴 ‘디오니소스 로봇’이다. 이 곡은 니체의 ‘디오니소스론’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났다. “시속 120㎞로 질주하다 급격히 방향을 꺾는” 짜릿함을 만날 수 있다. 원일 감독은 “현대적으로 개량된 악기가 아닌 전통악기로 지금 우리 시대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했다.
“한국음악이 유럽인들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서양음악은 하모니로 구성된 화성음악이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요. 우리 음향이 가진 자연성과 음악이 가진 여백, 그 안에서 나오는 파격적인 모던함, 장단과 선율의 정교함은 서양음악의 관점에서 보면 불협이고, 금기된 것이기도 해요. 그 신선함이 놀라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생충’, ‘오징어게임’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를 주축으로 한 K팝 등 한국의 콘텐츠가 역사적으로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없어요. 이번 유럽투어는 K-콘텐츠의 창의성, K팝의 음악적 역량과 퍼포먼스 능력, 그 뿌리가 어디인지, 어떤 것에서 근원했는지 볼 수 있는 무대가 될 거예요. 그것이 전통적이든 현대적이든, 이게 ‘리얼 코리아’구나, 이것이 ‘한국 정신(Spirit)의 근원’이구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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