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역량 강화·당내 민주주의 확대·공천 양보 등 목소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출범 후 첫 현장 최고위로 광주를 찾았고, 지명직 최고위원에 호남 출신을 한 명 앉혔다. 그러나 단편적인 노력으로는 염증난 호남 민심을 치료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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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인 호남 민심이 싸늘하다. 6·1 지방선거에서 광주 투표율이 전국 최저를 기록한 데 이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호남 세 곳(광주 34.18%, 전남 37.52%, 전북 34.07%)의 권리당원 투표율은 전국 평균(37.09%)에 미치지 못했다. 유일한 호남 출신 최고위원 후보는 당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했다. 정권 재창출 실패에 따른 일시적 허탈감 때문일까, 기득권화된 민주당에 대한 따끔한 경고일까. 추석 연휴 동안 <더팩트>는 호남 민심 이반 현상의 원인을 중앙과 지역정치, 시민사회 등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민심 반등 대안을 모색한 '호남이 뿔났다' 기획을 2편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호남을 '민주당의 심장'이라고 많이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5·18 등 행사나 선거 때 (당 지도부가) 열심히 찾아오시긴 하는데 그만큼의 배려는 부족하지 않느냐에 대한 서운함을 시민들, 이쪽 정치인들은 다들 갖고 있어요. (민심 다독이기 위해) 단순히 최고위원 한 명 지명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호남 지역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
수도권에 정치적 기반을 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취임 후 첫 현장 최고위 지역으로 호남을 택했다.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 중 하나는 호남 출신 임선숙 변호사를 앉혔다. 민주당은 "호남과 여성 지역 사회의 의견을 당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지난 지방선거와 전당대회에서 식어버린 호남 민심을 향한 구애 차원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민심 이반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축적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인 만큼 단편적인 호의보다 신뢰 회복 방안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정당으로 거듭난 민주당의 호남 의존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지역 기반인 호남을 수성하지 못할 경우 집권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호남 역할론'을 되짚어봐야 할 때다. 지역 정치인 개개인은 역량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당은 당원·국민과의 소통 창구를 활성화하고, 일당 독점으로 굳어버린 기득권 구조를 스스로 해체하는 결단이 절실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내 24명의 호남 정치인들은 비교적 존재감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24명 중 3선 중진 의원은 이개호 의원이 유일하다. 왼쪽 상단 시계방향으로 김관영 전북도지사 만난 한병도 의원(전북도당위원장),광주전남 경선에서 연설하는 송갑석 전 최고위원 후보, 5·18 민주화운동 기념 행사 'ㄱ역이ㄴ은이 축제'에 참여한 이병훈 의원(광주시당위원장) 지역주민에 추석인사하는 신정훈 의원. /한병도·송갑석·신정훈·이병훈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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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역 분리 가속화...정치인 개별 역량·경쟁력 강화 노력 필요
대선 후보가 호남 유권자로부터 얻는 득표율은 전체 비중에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인구 변화로 호남 인구 감소나 호남의 민주당 결집력이 약화하면서 호남 의존도는 떨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수도권 기반 정당으로 탈바꿈하면서 지역 정치의 현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본다. 이재명 대표는 공약 중 하나로 '전국 정당화'를 내세웠다. 수도권 집중 전략을 공식화한 것이다.
호남 대표 정치인이 없다는 점도 중앙·지역 정치가 분리된 원인으로 거론된다. 당의 정책과 예산편성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중량급 의원이 없다 보니 중앙정치에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호남이 고립된다는 것이다. 정치력 약화는 지역 현안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유권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김현영 광주 전남지역 정치개혁연대 발기인(시민사회 활동가)은 "'대표 정치인이 없다'는 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키워주는 게 아니라 본인 능력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중앙과 지역을 연계도 하고, 중앙에서 '이 사람이 정말 민심을 대변하고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서 정책도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들 지역 출신이라 서울이나 다른 지역과 네트워킹이 안 돼 있다. 지역 정치인들은 호남의 정치적 대표성을 실현해야 하는데 의석수로만 대변되는 분도 있다. 호남 정치인들이 대표 역할을 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기본적인 능력 자질 부족이라기보다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본인들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광주 지역 국회의원 6명의 출신 대학은 모두 지역 대학인 전남대·조선대다. 10년 전 절반을 서울대 출신이 차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인물이 나오기 위해선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강수훈 광주시의원은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 리더는 태어나는 게 아니고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훈련을 통해 양성해야 한다. 그동안 후진 양성에 게을렀다. 다잡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호남 정치'란 정의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 행동할 수 있는 용기라고 본다. 용기 있는 정치인을 양성하는 게 호남 정치의 복원"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에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됐는데 '자치분권 2.0' 시대에 맞는 지방 의회의 역할과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당내 민주화가 굉장히 필요하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게 가장 좋다. 온라인 소통이 예다. 민주당 광주시당은 블로그만 있지 누리집도 없다. 당원이 직접 본인 의사를 이야기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대의원대회나 상무위원회 이런 것들을 통한다. SNS가 발달한 시대에 직접 당원의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당위원장을 평당원에게 돌려줄 수도 있다. 지역위원장을 꼭 국회의원만 맡을 필요가 있나. 이처럼 정당을 운영하는 제도도 당원과 분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주당의 당내 민주화와 더불어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선거와 제도 관련 법도 앞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갓 출범한 '이재명 지도부'에 대해선 "광주·전남의 기존 행태를 바꾸는 것에 이 대표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이쪽 지역을 바꾸는 게 민주당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이 대표에 대한 기대는 있다"고 했다.
강 시의원은 "여의도에 있는 정치인들이 민심을 듣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여의도 안에 둘러싸이면 (소통)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 정치 역시) 민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쌍방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통 부족'이 호남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꼽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호남 지역 한 의원은 "이미 호남 같은 경우는 시스템이 다 돼 있고 거기에 따라서 시민사회, 각 지역과 소통·네트워크는 다 돼 있다. 의원들은 의정보고뿐만이 아니고 활동도 코로나 이후에 오히려 더 왕성하게 하고 있다. '의원의 활동력이 부족하다, 접촉력이 약하다'는 건 국회의원들이 1년 365일 많이 듣는 얘기"라고 했다. 다만 "광주는 (민심과의 소통에) 특수한 사정이 일부 반영된 건 있는 것 같다. 다만 그마저도 큰 흐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호남 지역 시민사회는 '일당 독점'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치개혁 광주시민연대가 지난달 3월 31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1 지방선거에 앞서 특정 정당 독점 해소를 위한 정치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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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독점 타파' 환경 조성 필요"...'차기 총선 공천 양보' 제안도
지역 정가와 시민사회, 학계는 호남 민심을 되찾는 방안으로 입을 모아 '일당독점 타파'를 외쳤다. 중앙 정치에 예속되지 않도록 정치적 선택지를 늘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달 17일 광주·전남 청년 정치인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당제 정치개혁안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 발표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구체적 방안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강 시의원은 "이제 이전처럼 민주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몰아주는 구조가 돼선 안 된다. 지난 대선 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다당제 정치개혁안이 채택됐다. 그런데 대선에서 졌다고 지속해서 이슈화하지 않으면 국민은 쇼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거다. 대선 전 약속이지만 그 방향으로 우리는 가야 한다. 지금 당장은 좀 손해인 것 같아도 다당제 정치개혁안이 더 나은 길로 가는 방향이라면 그 길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선 직전 '정치개혁안'을 당론 채택했지만 현재 추진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월 27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이 당론 채택됐다. /국회사진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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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교수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도 호남에 절실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그는 "대안으로서의 정당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의 경우 다음 대선 때 '15%, 그다음에는 20% 얻으면 되지' 이런 차원으로 접근하면 그것밖에 못 하게 된다. 호남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데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 그런 것들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의당은 지역에서 노동 대표성 등이 굉장히 취약한데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각 정당이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지지를 안 하는 것이다. 민주당에 90% 넘는 지지율을 보내는 유권자가 이상한 게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정당들이 이상한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라고 아무리 얘기해봐야 강요된 선택이다. 정당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에는 차기 총선 일부 무공천을 제안했다. 지 교수는 "민주당은 다양성 보장 차원에서 예를 들어 22대 총선에서 (어느) 지역구를 다른 정당에 양보하고 공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등 구조적으로 한 지역에 단일 정당이 독식하는 구조를 차단하는 것을 공천 과정에서 규범화·제도화하는 노력이 의미 있다고 본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그런 노력을 보이면 수도권에서 더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어 불리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 정치의 다양성을 위해 선도적으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이는 게 지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는 '직접 후보를 내겠다'며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했다. 민주당 정치 개혁을 위한 '광주·전남 정치개혁연대'는 지난달 6일 공식 출범식을 가졌다. 첫 행보로 평당원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 후보를 내기도 했다. 김 활동가는 "민주당은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무조건 당선이기 때문에 이제 소수 정당이 좀 바꿔줬으면 한다. 한계가 분명하다. 민주당이 각성하고 제대로 역할 할 수 있게 하는 게 정치개혁 연대의 목표"라며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예정이다. 지방선거, 대선까지 보면서 직접 후보를 내거나 후보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공개 모집하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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