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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헷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74년째 해결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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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후 4차 중동전쟁에 이스라엘 세력만 확장…불법 점거로 문제 빈발

냉전 이후 오슬로 협정서 ‘두 국가 해법’ 언급 됐지만 25년 넘게 진척 없어

뉴스1

27일(현지시간)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 군인에게 항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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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서영 기자 = 중동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대표적인 ‘세계의 화약고’다. 74년간 이스라엘과 분쟁이 이어져 오고 있는 중인데, 국제사회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2014년 7월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50일 전쟁’이 있었고 7년 뒤인 2021년 5월10일에도 ‘11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2014년에는 팔레스타인인 2143명, 이스라엘인 70명이 죽고 2021년에는 팔레스타인인 최소 250명, 이스라엘인 13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몇 년을 주기로 일종의 ‘학살’이 이뤄지고 있는 셈.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예루살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해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등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양측은 25년 넘게 평화회담을 해왔음에도 지금까지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잔류 문제부터 예루살렘을 공유할 것인지 등이 해결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것이냐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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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인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이스라엘 경찰들과 팔레스타인인들 간 2021년 5월7일(현지시간) 충돌이 벌어졌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조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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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1일 전쟁'부터 2022년 성전산에서의 분쟁…왜?

지난해 5월의 ‘11일 전쟁’ 이후 올해 유대인 유월절과 무슬림 라마단 기간(이슬람의 금식 성월) 동안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셰이크 자라’에서의 분쟁을 알고 있어야 한다.

셰이크 자라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동예루살렘 구시가지다. 지난해 5월 이스라엘 대법원이 이곳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릴 것이란 소식이 충돌의 도화선이 됐다.

아랍인들은 항의 시위를 시작했고 5월 7일 이슬람교과 유대교 양측 모두에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이스라엘 경찰에 돌을 던졌다. 이스라엘 측도 강경 진압으로 맞대응하며 긴장이 고조됐다.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격화하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5월 10일 저녁 6시까지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산(Temple Mount, 유대인의 성지)' 등에서 이스라엘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측은 당연히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결국 로켓포를 발사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하면서 ‘5월 전쟁’은 시작됐다.

알아크사 사원은 무슬림들에게는 알하람 알샤리프(al-Haram al Sharif 고귀한 성역)으로 세 번째 성지다. 동시에 유대교들에게는 두 개의 고대 신전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성전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이자 유대교의 중심지로 여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중동 전쟁 이후 구시가지가 포함된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는데,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때문에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은 사원을 방문할 수는 있어도 사원 경내에서 기도할 수는 없다. 무슬림들만 예배 드릴 수 있고, 유대인들은 성전산 바깥쪽 서쪽벽에서만 기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갈등이 첨예한 알아크사 사원 지역은 수 세대에 걸쳐 분쟁이 벌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의 가장 민감한 곳 중 하나다.

지난해 5월에도 라마단 마지막 금요일(권능의 밤)을 맞은 7일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팔레스타인 주민 수만명이 모여 종교의식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일부가 반 이스라엘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경찰이 알아크사 사원에 진입해 이를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양측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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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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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례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세력만 커져져…'두 국가 해법'도 쉽지 않아

셰이크 자라는 1948년 이래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이·팔 영토분쟁의 축소판 지역이다. 무슬림들이 주로 살던 곳이지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한 1870년대 당시 오스만령 팔레스타인 아랍인들로부터 이 지역 땅을 사들여 그 세를 확장했다.

결국 이스라엘 건국이 원인이 돼 이스라엘 건국을 막으려던 1차 중동 전쟁 이후 모두 4차례(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의 큰 전쟁을 치렀으나 번번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고,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보다 더 확장된 영토를 갖게 됐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요르단 통치지역인 동예루살렘과 이스라엘 통치지역인 서예루살렘 사이의 무거주지였으나, 1956년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가정 28가구가 이곳에 거주해 왔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이를 예루살렘 행정구역으로 편입해 통치하기 시작했는데,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한 이런 불법 점령은 현재까지 이어져 갈등을 낳고 있다.

그나마 1993~1995년 냉전체제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팔을 걷고 나서면서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는 등 분쟁이 해소될 조짐이 보이기도 했다.

오슬로 협정을 계기로 양자 간 평화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협상 목표는 명료했다. 현재 이스라엘 점령 지역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로 독립해 이스라엘과 ‘국가 대 국가’로 공존하는 것이다. 이른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다.

그러나 벌써 20년을 훌쩍 넘기며 협상을 해왔는데 거의 진척이 없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 해법을 지지하고 있고,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증오하며 때론 폭력으로 고통받기도 하니 빨리 갈라설 만도 한데 지지부진하다.

특히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이슬람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다수당이 된 이래,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세 차례의 전쟁(2008-2009, 2012, 2014)이 발생했으며, 이 외에도 소규모 충돌이 지속되면서 갈등이 쉽게 고조되는 양상이 반복돼 왔다.

현재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7년 이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각각 별도 국가로 공존하자는 구상인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등 이스라엘 편향적인 행보를 고수하며 ‘2국가 해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2국가 해법’에 따른 문제 풀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13일 3박4일의 중동 순방 일정을 소화하면서 ‘두 국가 해법’을 최선의 방법이라 규정하고 양측 모두의 자유와 번영,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돌아간 7월 15일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에 대항해 가자지구 중심 군사 시설을 폭격했다. 이렇듯 바이든 대통령이 떠난 뒤 다시 갈등이 분출되면서 회의론만 더 깊어지는 상황이다.

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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