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주목 받는 아세안

[한중수교 30년] 앞으로 30년은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중 수교 30년이다. 한 세대를 매듭짓고, 또 다른 세대로 가는 접점이다. 지난 30년 한중 경협, 그럭저럭 괜찮았다. 앞으로 30년은 또 어떠할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자칫 우리 경제가 '중국이라는 큰 바퀴에 맞물려 움직이는 작은 바퀴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중국에 종속된 경제 말이다.

기분 나쁘다고? 필자도 그렇다. 매우 거슬린다. 그러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자칫 삐끗하면 우리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한국과 중국만을 보면 답이 안 나온다. 아시아 산업의 큰 흐름을 봐야 한다. 핵심만 간단히 보자.

중앙일보

2014년에 방문한 중국 광둥성 선전의 한 전자상가. 한 때 20%에 육박했던 삼성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금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Flying geese

'안항(雁行)'이라고 했다. 영어로는 ‘Flying geese’, 70~80년대 동아시아 지역의 산업 발전 모델이다.

위아래가 바뀐 V자 형태다. 일본이 가장 앞서 날았고, 그 뒤를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4마리 작은 용(四小龍)이 따랐다.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가 꽁지에 매달렸다.

일본이 먼저 해 먹고, 그 산업을 한국에 넘겼다. 한국이 단물 빨아먹고 남긴 걸 말레이시아가 받아갔다. 그렇게 아시아에서는 산업 이전이 진행됐다.

#2. 흩어진 기러기떼

90년대 기러기 대열은 흐트러진다. 중국이 국제 분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아시아 공장을 대거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동남아로 가던 공장은 중국으로 향했다. 부산의 신발공장이 대거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으로 가는 식이다. 일본도 그랬고, 동남아의 화교 자본도 중국으로 달려들었다.

중국은 기러기 편대의 꼬리에 붙는가 싶더니 아예 대형을 흩트렸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모습이다.

#3. Production Sharing(생산 공유)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으로 중국은 '세계 공장'으로 부상한다. 주변국은 그 공장에 중간재(부품, 반제품)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산업 내 분업이다.

이런 식이다. 중국 우시(無錫)에서 생산되는 컬러TV의 경우 디스플레이는 한국에서, 이미지 센서는 일본에서, 외부 박스는 태국에서 생산된다. 그게 우시 공장으로 모여 조립돼 미국으로 수출된다. 공정 분업, 생산 분절(Fragmentation) 등으로 불린다.

WTO 가입 후 10년 중국 경제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을 차례로 따돌리고 글로벌 넘버투로 등장했다. 중국 혼자 한 게 아니다. 동아시아의 합작품이다.

#4. Clustering(집적)

중국은 완제품 생산에 만족하지 않았다. 기술 수준이 높은 부품 공장도 끌어들였다.

2002년 말 현대자동차가 베이징 순이(順義)에 공장을 세웠다. 관련 한국 부품업체 130여개가 동반 진출했다. 그러면서 베이징-톈진에 자동차 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곳곳에 클러스터링이 형성됐다. 상하이와 충칭에 조성된 노트북 클러스터는 전 세계 노트북의 약 90% 이상을 만든다. 삼성노트북, LG노트북도 그렇다. 창춘(長春)과 우한(武漢) 등에는 자동차 클러스터가 등장했다. 난징에는 화공클러스터가 들어섰다.

#5. Red Supply Chain(홍색공급망)

클러스터가 형성되면서 중국 산업은 점점 자기완결형 구조를 갖게 된다. 부품에서 완성품까지의 공정을 중국 내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는 구조다. 언론은 이를 'Red Supply Chain'이라고 했다.

중국은 더는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 중국에 진출한 선진 부품업체들이 기술을 가져왔고, 중국 로컬 기업들이 이를 받아 내재화했다. 이젠 거꾸로 중국 부품을 한국에 수출하기도 한다. 가격 경쟁력이 높으니 먹힌다. 우리가 4개월 내리 대중 적자를 본 주요 이유다.

#6. '시장 줄게 기술 다오'

시장은 미끼였다. 중국은 '시장 줄 테니 기술 다오(以市场换技术)' 식으로 기술을 끌어들였다.

일본 가와사키, 독일 지멘스는 그걸 믿고 고속철도 기술을 들고 중국에 들어갔다. 결과는? 다 털리고 나왔다. 중국은 기술을 잡았다고 판단한 그 순간 자국 시장에 있는 외국 기업을 밀어낸다. 그렇게 당한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산업 흐름은 기술 전이(轉移)가 표면화된 현상일 뿐이다. 안항모델도, 중간재 교역도, 클러스터링도, 홍색공급망도 모두 기술이 만들었다. 그 기술 전이를 추동하는 건 언제나 시장이다.

#7. GVC War

지금 동아시아의 산업 트렌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GVC 전쟁'이다. 이제 시작이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승자다.

트럼프가 저돌적이었다면 바이든은 좀 더 정밀하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글로벌 밸류 체인(GVC)에서 중국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반도체가 가장 뜨겁고 배터리,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바이든의 전략은 스크럼 짜기다. 칩4 동맹, IPEF 등을 만들어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 K-반도체가 전쟁에 휩쓸렸다.

중국은 반발한다. 국가가 나서 공급망을 재정비하고 있다. 클러스터링, 홍색공급망 구축 등은 '시장'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국가가 나서 공급망을 보강한다. 체인은 점점 조밀하고, 단단해지고 있다.

GVC는 충돌하고, 새롭게 짜인다. 동아시아 산업 지형은 지금 출렁이고 있다.

#8. 미국의 중국 포위는 성공할까?

어렵다고 본다. 이유는 시장이다.

기술은 시장과 만나야 의미가 있다. 기업은 시장에 끌리게 되어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은 유혹이다. 우리가 칩4 동맹 가입을 앞두고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이든의 스크럼'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는 그렇다 치자. 그 외의 산업은? 배터리 기술은 한국이 중국에 앞설 수 있다. 그러나 배터리 GVC는 중국이 꽉 잡고 있다. 중국 소재와 부품 없이는 경쟁력 있는 K 배터리는 만들 수 없다. 홍색공급망을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대부분의 영역이 그렇다.

올해 들어서만 1만편 이상의 중국-유럽화물열차(中欧班列车)가 중국에서 출발해 유럽에 도착했다. 미국과 중국이 GVC전쟁을 벌이는 그 시간에 중국 상품은 유럽 시장을 파고든다. 중국 없이도 원활한 GVC가 작동할 수 있을 거라는 건 환상이다.

#9. 앞으로 30년

우리의 미래 대 중국 경제정책은 이런 동아시아 산업 트렌드를 다 담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기술이라고는 반도체 정도다. 자존심이다. 반도체가 없었더라면 중국 교역은 이미 한참 전에 적자로 추락했을 터다. 초격차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이 '반도체도 이젠 한국 잡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경제는 송두리째 팽당하게 되어 있다. 스마트폰이 그랬다. 칩4 동맹에 무조건 가입해야 할 이유다.

한-중 중간재 교역의 역(逆)구조를 인정하고, 적응해야 한다. 중국 부품을 받아 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못할 리 없다. 삼성폰에도 중국 부품이 쓰이는 시대다. 중국 부품을 우리가 수입해서 '메이드 인 코리아' 마크를 붙여 제3국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 '코리아'라는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할 이유다.

'시장을 사지 말고 기업을 사라.' 잘 나가는 중국 기업에 투자하고, 그 등에 올라타야 한다. 삼성의 BYD 투자는 회심의 한 수였다. 아직 기회는 있다. 중국 유니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보다 정밀한 중국 비즈니스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GVC 전쟁의 시대다. 글로벌 공급망을 디테일하게 전면적으로 스크린해야 한다. '중국 외의 대안이 없다'는 건 곧 중국에 휘둘릴 수 있다는 얘기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안이 없다면, 중국과의 공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공급망 연구는 시작이다. 산업 당국과 각 기업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반중(反中)감정? 사치다. 비즈니스는 절대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이다.

한우덕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