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위촉된 비구니 우관 스님
“고향 전라도 음식 DNA 살아있어
13년전 봉녕사 사찰음식대향연서 부족해진 전시음식 만들며 시작”
사찰음식 영문책 최초로 집필… 해외 초청받아 세계화에 기여
2018년 주영 한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아 현지에서 사찰음식을 만드는 우관 스님. “공양을 준비하며 스스로 풀을 뜯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는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과 사랑, 자비심이 깔려 있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우관 스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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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찾은 경기 이천시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은 작은 법당에 연구소를 겸한 살림채가 있는 소박한 공간이다.
이곳 원장으로 있는 우관 스님(58)은 올해 6월 정관 스님과 함께 사찰 음식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 명장(名匠)으로 위촉됐다. 우관 스님은 조계종 사찰음식 표준교재를 만들었고 해외문화원의 초청을 받아 사찰음식을 알렸다. 국내 최초로 사찰음식 관련 영문책도 집필했다.
음식과 영어에 관한 질문을 던졌더니, 뜻밖에 그의 얼굴은 화두(話頭)에 직면한 수행자의 표정이 됐다.》
―어려운 질문인가.
“긴 이야기가 있다. 저는 발심(發心)하고 출가해 공부와 수행 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려고 했다. 어떻게 중노릇을 잘할 것인가, 이게 유일한 관심사였다.”
―원래 음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고향이 전북 김제인데 출가 전 집에서는 양말 한 짝 안 빨았다. 그런데 요리는 못해도 전라도 음식에 대한 DNA, 그 미각이 살아 있더라. 은사를 모시느라 절집 음식을 배웠는데, 공양을 내면 스님들이 그릇을 싹싹 비웠다. 경기 수원 봉녕사승가대에 재학하던 때 김장철이면 학장 묘엄 스님(1931∼2011·청담 스님의 딸)이 마이크로 ‘우관이, 어서 올라오라’고 불렀다. 제가 간을 보고 ‘오케이’ 하면 3000포기 김장이 시작됐다.”
1997년 성지 순례를 떠났던 우관 스님은 여행 중 만난 중암 스님, 한국인 여성 신자와의 인연으로 인도 델리대 불교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영어를 잘 못해 누가 말을 시킬까 봐 땅만 쳐다보고 다니는 학생이었다.
―어렵다는 음식에 관한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어에 자신 없어 시험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나보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베트남 스님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더라. 가만 보니, 관련 내용을 통째로 외우고 있었다. 비 올 것으로 생각하고 나가지 않으면 햇빛을 맞을 수 없다. 그래서 나도 A4용지 500장 분량을 외웠고 5년간 그렇게 공부했다.”
―그럼, 사찰음식은 어떻게 하게 됐나.
“2009년 수원 봉녕사에서 열린 첫 사찰음식대향연에 갑작스럽게 전시음식이 턱없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묘엄 스님이 ‘우관이는 할 수 있다’며 난데없이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
―어떤 음식을 냈나.
방울토마토가지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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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주식이 밥인데 점차 밥을 안 먹는다는 점에 착안해 봄 민들레 쑥 녹차, 여름 감자 보리, 가을 시래기, 겨울 팥 연근 등의 재료로 16가지 밥과 죽을 내놨다. 행사장에서 호평이 이어졌지만 공부하는 스님들 사이에서는 ‘우관 스님이 어쩌다가 사찰음식까지 하게 됐나’ ‘그동안 공부가 아깝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 반응은 뜻밖이다.
“평생 공부하며 살겠다는 초심(初心)에 비출 때 사찰음식은 의도하지 않았던 길이었다. 30, 40대 때는 ‘공부해야지 왜 음식 하나’ 하는 갈등이 있었다. 50대가 되면서 철이 들더라. 자신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룰은 없다. 시장에 가면 시장 아줌마, 법상(法床)에 올라가면 스님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토마토비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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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모든 게 수행 아닌 것이 없다. 먹는 것도 수행 아닌 것이 없다. 말은 쉽게 잊혀도 맛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맛있게 감사하게 먹었다는 마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불법을 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르침 아닐까 싶다.”
이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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