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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쌀, 건강함 업고 ‘분질미’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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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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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오늘은 쌀의 날이다. 쌀 미(米) 한자 획을 풀어보면 여덟八, 열十, 여덟八로 형성 되어 오늘 8월 18일을 쌀의 날로 지정했고 올해로 8회째를 맞이했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88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쌀 미(米)는 숫자 팔(八)이 두 번, 즉 팔(八)+팔(八)로 벼 낟알 하나를 얻는데 여든여덟 번 손길이 간다는 뜻도 담겨있다. 쌀에 담긴 의미와 가치, 농업인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되새겨 보자.



88번의 손길이 담아져 만들어진 쌀.



농업혁명 이후 쌀은 줄곧 권력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부자를 일컬어 천석꾼, 만석꾼으로 부르며 부의 단위를 쌀로 재단했다.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부와 권력의 기준이 됐던 쌀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흔하디흔한 식재료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쌀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우리는 흔하게 여기는 쌀밥과 한식에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88번의 손길을 담아 키워진 정성스러운 식재료로 세계에서 추앙받고 있는 쌀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자.



쌀이 곧 권력, 역사 속의 귀한 ‘쌀’



인류가 겪은 3번의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산업혁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실은 첫 번째 농업혁명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식량이 늘어나고 군집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가장 큰 변화라고 보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부자를 표현할 때 천석꾼, 만석꾼으로 표현했다. 곡식 천 섬, 곡식 만섬을 거두어 드리는 부자를 일컫는 말로 쌀이 부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쌀은 곧 돈이고 권력인 시대.



쌀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일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12~13년을 제외하면 가뭄에서 자유로운 해가 없었고 그중 태종 15~16년에는 가뭄이 심각한 흉년으로 이어지며 제삿밥을 마련하려다 쌀을 훔친 백성이 옥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민심이 흉흉했다. 태종은 가뭄으로 인해 백성이 겪는 어려움을 자식의 덕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여겼고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세자 충녕대군에게 양위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하늘과도 같은 조선 시대 임금에게 살아있는 동안 후계자에게 왕권을 넘겨주는 양위를 결심하게 한 ‘쌀’의 대단한 위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쌀밥’의 가치



최근 K-pop과 더불어 새로운 한류열풍의 주역이 떠오른 K-food 대표주자 ‘한식’은 건강한 다이어트 효능으로도 주목받으며 ‘케이팝 다이어트’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케이팝 다이어트’는 케이팝 스타를 좋아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식을 통해 그들처럼 날씬한 몸매를 얻고 싶어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미국 NBC 계열 ‘투데이닷컴’은 케이팝 다이어트의 장점을 소개하며 한국이 미국보다 비만율이 낮다는 점도 언급했다. 다이어트에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영양소가 포함돼야 하는데 한식에는 영양밀도가 높은 식품들이 풍부하며 간식도 쌀과자나 과일을 먹는다고 강조하고 특히 장기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 다이어터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이어트의 적처럼 여겨지며 기피하고 있는 쌀밥에 대한 오해를 보기 좋게 깨는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쌀밥은 다른 식품과 잘 조화돼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단 조성에 유리하며 조리 시 열량이 추가되지 않고 아미노산 조성이 우수하다”라며 “저지방 식품으로 지방산 조성이 우수하고 저 나트륨, 혼식을 통한 건강 기능성 상승과 다양한 건강 기능성을 갖췄다”라고 말했다.



곡물전쟁, 곡식을 가진 자가 권력이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국제 곡물 수급 비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국제 곡물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지금, 세계는 새로운 시대의 ‘신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70년대 80%를 웃돌던 곡물 자급률이 2020년 기준 사료용을 포함해 20.2%까지 떨어지면서 식량안보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민국에서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식량안보 강화계획을 국정과제에 담는 등 보다 구체적인 식량안보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쌀이 권력이었던 조선 시대가 재현되고 있는 형국이다.

쌀의 힘은 최근 코로나19 발생 초기 다시 한번 입증됐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곡물창고를 담당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빗장을 걸어 잠그자 세계 곳곳에서 식품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식품 사재기가 거의 없는 나라로 외신에 보도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것은 주식인 쌀 자급률이 평균 96%를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쌀은 위기에서 우리나라를 구했다. 단순히 식량안보 차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다. 벼농사는 대기 정화, 수자원 함양, 토양 유실 방지를 비롯해 폐기물 분해 등 환경보전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봄철 논 가득 펼쳐지는 모내기 장면이나 가을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농촌경관 유지 기능도 훌륭하다. 뿐만 하랴, 모내기와 품앗이와 같은 전통문화 보전의 공익적 기능도 수행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의 분석에 따르면 벼가 재배되는 논은 여름철 집중호우 피해를 방지해 주는 거대한 댐의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전체 논의 저수량은 21억 8000만 톤으로 서울시민의 식수원인 팔당댐 저수용량 2억 4400만 톤보다 9배나 많은 양이다. 우리나라 전체 다목적댐의 홍수조절 능력과 맞먹는 양으로 매년 60억 톤의 지하수를 보충해 주는 논은 수자원의 확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농촌진흥청은 이 밖에 수질 및 대기 정화, 조류의 서식지 제공, 농촌 경관과 전통문화 보전, 휴양 및 레저 공간 제공 등 논과 쌀 산업이 가진 여러 가지 공익적 기능을 연간 32조 8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실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쌀, 밥으로만 먹지 마세요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쌀을 밥으로만 먹을 것인가. ‘기껏해야 쌀밥’이라고 생각했다면 주목하자. 자녀들의 아토피 때문에 수입되는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을 기피하는 소비자들이 최근 쌀 빵을 선택하면서 ‘분질미’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가공용 쌀의 안정적 공급과 수입 밀가루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품종인 분질미는 쌀 가공식품을 위해 개발된 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반 쌀보다 하얗고 전분 구조가 둥글고 성글게 배열돼 따로 물에 불리지 않아도 가루로 빻을 수 있어 가루로 만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분질미는 글루텐 프리로 평소 밀과 글루텐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소비자도 편안하게 섭취할 수 있다. 분질미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 개발로 수입 밀가루 의존도가 낮아지면 쌀의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쌀 농가들의 소득 개선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식량주권 확보와 밀가루 대체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027년까지 밀가루 연간 수요의 10%가량을 가공 전용 쌀 분질미로 대체하겠다”라며 “이를 통해 2020년 45.8%에 불과했던 식량자급률을 2027년까지 52.5%까지 끌어올릴 것이며 쌀 가공산업 시장 규모도 지난해 7조 3000억 원에서 2027년까지 10조 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건강한 쌀가루로 요리하세요



이 같은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더욱 발전 가도를 타고 있는 쌀가루는 최근 건강 식재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제면용 쌀가루, 박력 쌀가루 등 제품 다량이 판매되고 있으며 쌀가루를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일반인들의 사회관계 서비스 망(SNS) 게시물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주부 안혜림(42세) 씨는 “평소 빵을 정말 좋아하는데 밀가루를 먹으면 뾰루지가 올라오고 컨디션이 나빠져 글루텐 민감증이라는 것을 알았다”라며 “쌀 빵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온라인몰에서 쌀 빵을 주문해 먹었더니 소화도 잘되고 거부반응이 없어 애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글루텐 민감증 환자는 물론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나 이유식용으로도 쌀가루가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에 거주하는 차미애(32세) 씨는 최근 둘째를 출산하고 쌀가루를 활용해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차 씨는 “쌀은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거의 없어 이유식을 처음 시작할 때 쌀 미음으로 시작하는데 첫아이 때는 쌀을 불려 가루를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라며 “최근 인터넷 검색으로 쌀 가루가 제품화돼 있는 것을 보고 구매해 이유식을 만들었는데 너무 편하고 아기도 잘 먹어 좋았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쌀가루 제품화와 유통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쌀가루를 쓸 만한 업체와 연계해 밀가루 대체가 유망한 가공식품 개발을 지원한다는 복안이다. 정책적 지원으로 쌀가루 전용 제품인 케이크, 카스텔라, 제과 과자류 등 비발효 빵류와 밀가루 함량이 낮은 어묵 소시지 등의 개발‧판매가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가루 가공 전용 품종 개발과 빵류, 면류 가공 기술 개발 연구를 통해 수입 밀가루를 대체하는 것은 쌀을 소비하는 방법을 확대하는 것이며 식량안보 강화와 자급율을 제고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이다”라며 “무엇보다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민들의 시름이 높아진 이 때에 쌀과 쌀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을 등 쌀 소비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서명수 기자 seo.my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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