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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법정서 비대위 요건 따진 이준석…"숨는 정치 안돼" 尹 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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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관련 심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출범에 반발해 당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낸 효력·직무정지 가처분 사건의 심문이 17일 열렸다. 집권 여당 전·현직 지도부가 내홍 끝에 법정 다툼을 벌이며 지도체제 정당성을 법원에 평가받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직접 법원에 출석한 뒤 "책임 있는 정당 관계자로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을 자책한다"면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을 겨냥해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도 책임을 통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려고 하는 삼권분립의 위기"라고 주장하며 "사법부가 적극 개입해 바로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한 시간 동안 양측 주장을 들었다. 직후 출입기자단에 "신중히 판단해 조만간 결정하겠다. 당일 결정이 나오지는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 측은 배현진 의원 등이 사퇴 의사를 밝힌 뒤에도 최고위원으로서 상임전국위원회 소집 의결권을 행사한 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비대위원장 선임을 의결한 전국위 절차가 자동응답전화(ARS)로 진행된 것은 정당법상 서면결의 금지 원칙 등의 위반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아울러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대표가 비대위 출범으로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도 헌법상 당원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 본인 역시 법정에서 대리인 발언에 의견을 보태가며 논박에 참여했다. 특히 상임 전국위에서 '비상 상황'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데 대해 "유권해석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상임전국위원은 당연직으로 임명돼 정파 간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에선 이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염두에 두고 당헌·당규에 따라 절차를 진행했던 만큼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먼저 사퇴 선언을 한 최고위원들의 의결권 행사는 당에 서면 사퇴서를 내기 전, 즉 사퇴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설령 잘못된 의결권 행사였더라도 별도로 상임전국위원 4분의 1 이상의 소집 요구가 있었던 점, 직후 이의 없이 비대위 출범을 위한 후속 절차가 진행된 점 등을 보면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ARS 의결은 본인확인 절차 등을 거쳤기에 정당하다고 항변했다.

판사 출신인 주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 법률지원단과 검토한 뒤 우리 절차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만에 하나 인용 결정이 나더라도 "어떤 절차가 미비하다면 그 절차를 다시 갖추면 된다"며 당장 비대위가 해산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내 초선 의원도 "당대표가 윤리위원회 징계로 공석이 되는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한 만큼 당에서 '비상 상황'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정치 영역에 사법이 끼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 결정에 따라 당이 겪을 혼란은 불가피하다. 인용되면 이 대표 쪽에선 당대표 임기 보장과 당무 복귀 등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비대위 권위도 상처를 입게 된다. 기각되면 비대위는 계획대로 출범하겠지만 이 대표의 장외 여론전으로 여당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최근 윤 대통령을 직접 저격하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날 법원 앞에서 취재진이 "윤 대통령의 100일 기자회견은 어떻게 봤나"라고 묻자 "제가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불경스럽게도"라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 관련 질문에 "대통령으로서 민생 안정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들께서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하셨는지 제대로 챙길 기회도 없다"고 한 말을 비꼬아 맞받아친 것으로 해석됐다. 전날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나아갈 때는 앞에 서고 물러설 때는 뒤에 서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참모 뒤에 숨는 정치는 안 된다"고 쓴 글도 윤 대통령을 향한 작심발언으로 읽혔다.

정치적 화해 없이 법정 다툼이라는 극한으로 치닫게 된 현 상황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주 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이 대표를 만나 만찬을 함께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거친 표현은 자제해달라'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는 건 선을 넘는 행동'이라는 내용의 말을 했지만 이 대표는 즉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측은 관련 보도 이후에도 만남에 대해 말을 아꼈고, 회동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을 불러왔다. 주 위원장은 취재진에게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만나지 않겠다고 한 마당에 자꾸 만나자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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