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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험관 시술로 낳은 아들 26년 키웠는데… 아빠와 유전자 불일치, 머리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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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 담당 교수, 20년 전 돌연변이 가능성 언급… 믿었던 게 너무 후회돼”

세계일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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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전 대학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체외 인공수정)을 통해 얻은 아들의 유전자가 아버지와 일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1996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시험관 시술로 아들을 얻은 50대 여성 A씨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아이가 네다섯살 되던 때 간염 항체 주사를 맞은 다음에 검사를 했는데 소아과 선생님이 ‘아이 혈액형이 A형인 거 알고 계시죠’라고 하시더라. 저희 부부 둘다 B형”이라며 처음 의아함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렸다. 부모가 모두 B형일 때 A형 아들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이상하다고 여긴 A씨는 26년 전 시험관 시술을 담당했던 교수에게 연락했는데, 교수는 해외자료를 보여주면서 ‘시험관 아이한테 돌연변이 사례가 있을 수 있다. 걱정할 것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런 교수 말을 신뢰했던 A씨는 추가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당한 설명 같은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진행자가 묻자, A씨는 “전혀 못 했다. 대학병원 교수님이고 직접 시험관 시술까지 해 주셨고 평소에도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는 분이기에 그 말씀을 듣고는 ‘아, 정말 다행이다’고 안심했다”고 했다. A씨는 둘째 아들도 이 교수의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얻었을 만큼 교수의 말을 믿었다고 했다.

이후 20년이 지나 아들이 성인이 된 시점에 아들의 혈액형이 다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A씨는 병원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A씨는 “(담당 교수가) 몇 달이 지나도 답이 없길래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말씀드렸더니 그 당시 자료가 없어서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때 처음 ‘이게 이상하다. 이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결국 A씨 부부는 지난 7월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는데, 아들의 유전자가 A씨와는 일치하지만, 남편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접해야 했다. A씨는 “검사소에서도 (검사 결과가) 이상해서 두 번이나 더, 총 세 번을 검사해보셨다고 한다”며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사소) 그분한테 돌연변이 사례를 보신 적 있냐고 여쭤봤더니 없다고 하더라. 머리가 하얘져 주저앉았다”고 당시 참담한 심정을 털어놨다.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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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A씨는 수차례 담당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다. 병원 측에서는 해당 교수가 정년퇴직해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A씨는 “변호사를 통해서 알아보니까 싱가포르, 미국 등 해외에서는 병원 실수로 이런 사례가 너무 많다고 하더라. 실수가 아니고선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며 “처음에는 진실만 알고 싶었는데 병원에서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저는 피해를 보고 있는데 가해한 사람은 없다 보니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하나 (생각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제가 마음을 좀 추스르고 설명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아직 말 못했다”고 했다.

A씨는 병원 측 소명을 듣기 위해 소송을 알아봤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공소시효가 아이의 혈액형을 안 날로부터 10년인데 지금은 26년이나 지나 승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소송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한국소비자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로펌 등 다 문의를 했는데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패소 가능성이 크다고만 한다”면서 “20년 전 의사 말을 믿었던 게 너무 후회된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고, 상처를 주면서 덮을 생각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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