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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장준하 사망…의문사와 실족사 사이[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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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정권 반대 투쟁하다 산에서 숨진 채 발견

수차례 진상규명 불구 아직 진상 밝혀지지 않아

2기 진실화해위, 지난해 8월 재조사 착수 선언

이데일리

고(故) 장준하 선생. (사진=장준하기념사업회)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75년 8월 17일. 독립운동가로서 박정희 정권 시절 군사독재 반대 투쟁을 하던 장준하 선생이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후 1944년 탈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에 입대했다. 이때 그는 강제 징집됐던 다른 동지들과 중국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을 탈영해 7개월간 무려 2500㎞를 이동해 충칭에 위치한 임시정부를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이후 장준하 선생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활동했다. 이승만 정권의 1공화국에서 문교부(현 교육부) 국민사상연구원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고, 4.19 혁명 이후 출범한 2공화국에서도 군토건설단장 등을 지냈다.

장준하 선생은 애초 5.16 군사정변에 대해 우호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군사정변 직후 사상계에 “구악을 뿌리 뽑고 새로운 민족적 활로를 개척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며 지지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군부가 약속했던 민정 이양을 이행하지 않자 박정희 정권의 반대편에 서게 됐다. 그는 사상계 편집인으로서 박정희 정권 반대 운동을 했지만 계속되는 언론탄압에 결국 1967년 정치권에 뛰어들게 된다.

장준하 선생은 국회의원 유세 도중 당시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자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력을 언급하며 “박정희가 밀수 왕초”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반대 투쟁을 계속하던 1975년 8월 17일 등산을 갔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사망 원인을 실족사로 발표했지만 유족은 정권 차원의 살인이라고 주장해 여전히 사망 관련 의혹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사망 이후 유족들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취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식들은 해외로 흩어졌다. 특히 장남 장호권(현 광복회장)씨는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진상규명을 시도하다 핍박을 받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과 2004년 조사를 진행했으나 결국 “진상 규명 불능”으로 최종 발표했고, 2010년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도 조사 중지 결론을 내렸다. 2기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장준하 의문사에 대해 다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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