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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권 따라 대외정책 바뀌면 신뢰 상실···한국판 블루리본위원회 필요" [尹정부 출범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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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마지막 외교부 장관 지낸 송민순 인터뷰

안보·자유무역·인권 가치 추구하고 전략적 명료성 확보 최우선

日 강제징용은 국내서 해결···국가간 조약 무시하는 조치 안돼

尹정부, 미중 냉전 격화 속 위기관리·장기외교 어젠다 설정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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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정책이라고 뒤집기보다 논란의 중심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블루리본위원회(Blue Ribbon Committee)’처럼 진보·보수가 다 어울려 대외 정책의 균형을 잡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16일 남산 자락의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로 대외 정책은 정권에 관계없이 비교적 일관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국내 정책과 달리 미국과 일본·중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행동반경이 제약되기 때문에 정책을 바꾼다고 뜻대로 시행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였다.

1975년 외무부에 입부해 노무현 정부 마지막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기까지 총 33년을 외교관으로 살아온 그는 “우리가 정책을 갑자기 바꾸면 주로 마찰만 생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뿐 아니라 일본 강제징용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그는 미국의 블루리본위원회를 제안했다. 블루리본위는 정계·산업계·학계·언론계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위원회를 일컫는 말로 미국의 장기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안들을 검토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제안을 통해 정책의 명료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확신을 갖고 있었다. 송 전 장관은 “나라 사이에도 개인 사이처럼 명료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한국의 기본적인 입장을 상대국에 인식시켜야 “당장의 작은 실망으로 나중의 큰 실망을 방지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北, ‘담대한 구상’ 곱씹어 보게 될 것···韓, 과감한 협상 필요

-윤석열 정부가 17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다. 앞으로 외교 분야의 가장 큰 정책 과제를 꼽는다면.

△윤석열 정부가 안고 있는 대외 환경의 요체는 미중 냉전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에 성과를 보여주려고 조급하기보다 닥쳐오는 위기를 잘 관리해서 외교 치적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초기에 설정한 외교 방향을 구체화해서 다음 정권에도 이어갈 수 있는 장기적 어젠다로 세운다면 더 좋은 업적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북한이 당장 응해 올 사정은 아니다. 그래도 몇 가지 생각할 점들이 있다. 한반도 위기관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주도로 미국과 함께 적극적 대화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이를 곱씹어 보게 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사정을 볼 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의 조건인 ‘진정성 있는 비핵화 협상’이 뭘 말하는지, 협상의 핵심 요소인 ‘정치·군사적 상응 조치’는 뭘 담고 있는지 등이다. 한미는 물론 남북·북미·한중, 그리고 미중의 다각적 접촉과 초기 협상을 거쳐야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목전에 왔다는 평가다. 앞으로 유효한 대북 압박 수단은 무엇이라고 보나.

△효과적이면서 실제 동원 가능한 대북 압박 수단은 사실상 소진된 상태다. 제재를 풀어 달라는 북한과 제재 해제는 절대 안 된다는 미국, 북한 붕괴만은 막겠다는 중국의 이해가 얽히고 상충한다. ‘핵 없는 북한’을 만들 기회는 2008년 말로 사실상 사라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새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명칭에 걸맞게 과감한 협상을 하고 다음 단계로 갈 명분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과감한 협상이라면.

△제재를 일부 해제해주고 북한 핵을 당장 없애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통제하는 방식을 협상해야 한다. 서로의 행동을 엄격한 상호성과 동시성에 따르기보다는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만으로는 안 되고 미국과 중국이 반드시 협상에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제재 해제에 동의하겠느냐가 문제다. 대미 외교를 잘해야 하는 이유다. 그냥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잘하는 게 아니고 우리에게 필요한 쪽으로 미국을 끌고 오는 게 대미 외교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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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오부치 선언 2.0’···공은 일본에게 넘어갔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두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며 적극적인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기본 골격은 (일본은) 과거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동시에 한국은 2차 대전 후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한 역할을 인정한다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근래 와서 양측 모두 이 기둥에서 멀어졌지만 윤 대통령이 그 기둥을 다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결국 일본도 그런 의지를 보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에 공을 던졌다는 의미가 있다(※송 전 장관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 비서관으로서 ‘김대중·오부치 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한일 관계에서 강제 동원 문제는 시급한 현안이다.

△해법은 다 나와 있다. 특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정확히 해석하면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제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사법부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법부는 외교를 하는 기관이 아니지 않으냐. 국가 간에 체결하고 국회의 비준 동의까지 받은 협정에 대해 사법부가 다른 판단을 내렸다면 이는 국가원수가 국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간 맺은 조약이 의미가 없어진다.

-외교부가 대법원에 ‘현금화를 미뤄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며 징용 피해자 측이 한일 민관협의회에서 빠졌다.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취지로 본다. 워낙 정서적인 요소가 강해서 시간을 두고 가야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한일 관계는 기본적으로 상처투성이다. 서서히 아물어야 한다. 어느 방향이든 서두르면 덧난다.

사드 3불 입장 변화, 정권 아닌 北 변화 탓

-박진 외교부 장관의 8~10일 방중 이후 ‘사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사드 문제를 두고 ‘주권적 논란’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주권 문제로 간주하면 사드 배치가 안보상 불가피한 조치라는 한국의 주권과 사드 배치에 안보적 민감성을 부여하는 중국의 주권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대책 없는 충돌로 가는 셈이다.

-그럼 사드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과 중국 사이에 생긴 상처다. 원인은 북핵 때문이다. 중국에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북핵 문제에 좀 더 과감한 역할을 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설치 과정에서 이런 외교적 명분의 축적 과정이 부족했다.

-중국이 요구하는 이른바 ‘3불(不)·1한(限)’도 해결 실마리가 안 보인다.

△똑같은 문제다. 분명한 것은 3불이 한중 간 합의가 아니고 당시 정부가 밝힌 정책 의지라는 점이다. 정책 의지는 정부가 바뀐다고 무조건 바꾸는 것이 아니고 다음 정부도 가급적 이어가는 게 좋다. 대외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사드 문제는 한국이 ‘정권이 바뀌어서 정책 의지가 바뀌었다’고 할 게 아니라 ‘한반도 안보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정책 의지가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에도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지 않으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사드를 제대로 운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를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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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명료성 필요···원칙 갖되 유연하게 대처해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에 대한 대처를 놓고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도 전략적 모호성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나라 사이에도 개인 사이처럼 명료성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다고 알게 하는 것이 중요 전략이다. 당장의 작은 실망으로 나중의 큰 실망을 방지하게 하는 것이 전략적 명료성이다.

-미중 사이 한국 입장이 모호해지는 때도 있다.

△한국은 국가 안보, 자유무역, 민주주의와 인권, 이 세 가지에 대한 기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미중 사이에서 그렇다. 다만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자유무역과 어긋나는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한미 동맹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에 참여는 하지만 그 안에서는 자유무역의 기치를 올려야 한다. 신장위구르·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도 먼저 나서서 중국에 제기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항상 알게 해야 점도 마찬가지다.

-원칙은 갖고 있되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나는 이를 깃발로 표현한다. 한국은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깃발을 갖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깃발을 어떤 높이로 흔드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이 칩4를 같이 하자고 하는데 ‘자유무역을 중시한다’며 깃발을 흔들어 댈 수는 없다. 깃발의 높이를 조절하면서 우리의 가치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드 문제도 국가 안보적 가치의 범위 내에서 중국이 갖는 민감성도 감안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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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미중 냉전 격화 상태···韓, 위기관리 능력 키워 피해 최소화”

-서해상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남북 관계를 보통 국가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늘 통일을 염두에 두지만 통일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는 두 개의 국가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정책이 왜곡되고 남북문제로 허다한 정쟁이 발생한다. 서해상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는 국제해난구조협약이, 탈북민 강제 북송과 관련해서는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이 있다. 두 문제 모두 국제규범에 따르면 될 문제이고 남북 간은 물론 국내에서의 논란도 불필요하다.

he is··· △1948년 경남 진주 △마산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1975년 외무부 입부 △1997년 대통령비서실 국제안보비서관 △1997년 북미국장 △2001년 주폴란드 한국대사 △2005년 외교통상부 차관보 △2006년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2015~2017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박경은 기자 eu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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