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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실적내는 우주 연구인력이 상실감 느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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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 1호’ 발사 주역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의 쓴소리

동아일보

9일 대전 유성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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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는 고 최순달(1931~2014) KAIST 교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는 1989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 2, 3호를 발사했다.

1987년 말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방송통신위성 보유가 공약으로 제정되고 같은 해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이 제정됐다. 1989년 2월 체신부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국내위성확보계획을 보고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체신부 장관(1982~1983년)을 지냈던 최 교수는 이 계획을 듣고 체신부를 방문해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수천 억 원짜리 위성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발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전에 인공위성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고 초보적인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소형 과학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좋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설립되고, 인공위성을 직접 제작하는 영국 서리대로 연간 5명의 학생을 유학 보내게 됐다. 1989년 처음으로 선발된 유학생 5명 중 한 명이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55)이다. 박 전 의장이 전하는 당시 최 교수의 주문은 자못 비장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너희 손으로 만들고, 너희가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개척자가 된다는 책임감을 항상 간직해라.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려다 그 뜻이 꺾이자 자결했던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하기 바란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면 영국 도버해협에 빠져 돌아오지 마라.”

우리별 1호 발사 30주년을 사흘 앞둔 9일 박 전 의장을 만나러 찾아간 그의 사무실은 대덕 연구단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대전 유성구 엑스포타워에 있었다. 그는 우리별 3호 발사를 마친 1999년, 쎄트렉아이라는 국내 첫 인공위성 개발업체를 세워 경영하다가 2021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를 유치한 뒤 비상임 고문으로만 활동 중이다.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쳤던 KAIST 인공위성센터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작부터 회사에서 은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오래 전에 대표이사를 후배에게 물려줬지만 제가 최대주주였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참 어렵더라고요. 우물쭈물하던 중에 한화로부터 투자 제의가 왔고, 우주산업에 대한 한화의 비전을 확인해 받아들였습니다. 회사가 지속가능하려면 대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0년 전 위성기술을 배우러 유학을 떠날 때 ‘이런 척박한 현실을 후배들에게는 절대로 물려주지 말자’는 다짐은 지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던 KAIST 인공위성센터를 나와 왜 그는 쎄트렉아이를 따로 차려야했을까.

“과학기술처와 항공우주연구소는 우리별 1, 2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양성된 인력을 항공우주연구소로 보내 다목적 실용위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KAIST 인공위성센터에 요구했어요. 정부 요구에 응하지 않자 1993년 10월 과학기술처 국정감사 때 최 교수님이 불려 다녔어요. 정부 입장에서는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겠지만 저희 연구소 입장에서는 사실상 센터를 없애라는 요구와 다름없었어요. 1999년 5월 저희가 우리별 3호를 발사할 때에는 정부의 아리랑 1호 위성 발사시점(그 해 12월)보다 늦추라고도 요구했어요. 정부가 연구비 지원까지 끊었기 때문에 따로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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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영국 서리대로 인공위성 기술을 배우러 유학 갔던 ‘우리별 1호’ 주역 5명이 유학 30주년을 맞아 2019년 서리대 캠퍼스를 방문했다. 30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지금은 세상을 뜬 고 최순달 교수의 자리를 비워놓고 같은 배열로 섰다. 왼쪽부터 장현석 에스아이디텍션 대표, 최경일 KT샛(SAT) 최고기술총괄, 고 최순달 교수,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 김형신 충남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김성헌 미 코넬대 의대 교수.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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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세상을 떴지만 우리별 1호를 만든 주역들은 지금 학계와 기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박 전 의장을 비롯해 김성헌 미 코넬대 의대 교수, 김형신 충남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장현석 에스아이디텍션 대표, 최경일 KT샛(SAT) 최고기술총괄 등 1989년 영국 유학을 떠났던 1기 5명은 유학 30주년을 맞은 2019년 영국 서리대로 여행을 떠났다. 이 때 찍은 사진을 박 전 의장이 보여줬다. 1989년 서리대 캠퍼스에서 최 교수와 찍었던 일렬 배치 그대로 2019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세상을 뜬 스승의 자리를 가운데 비어두고 사진을 찍은 제자들의 마음과 다짐이 전해졌다.

박 전 의장의 말을 빌리면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들이 배워온 인공위성 기술이 지금 대한민국 우주기술의 초석이 됐다. 당시 거의 모두가 불가능하게 여겼던 한국의 인공위성 발사를 한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해냈다.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연구개발 예산을 조달받아야하는 정부출연연구소보다 민첩하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를 제대로 하려면 과거처럼 정부보다 앞선 곳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이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우주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하나.

“결국 비전이죠.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어떤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걸 시각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전문성과 비전 없는 리더나 공무원들이 위원회 꾸려 책임을 미루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정말로 과학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과학기술의 인사이트와 비전을 갖고 아니면 아니라고, 최소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강단 있는 사람을 불러 모아 일해야 합니다.”

박 전 의장은 우주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출연연구소의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축구 국가대표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항공우주의 국가대표, 화학연구원은 화학에 관해 국가대표인 셈이죠. 그런데 이들 국가대표들이 과연 지금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있나요. 국가대표팀에서는 소위 퍼포먼스를 내야 국가대표를 유지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팀에서 교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정부출연연구소는 지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켓에 불붙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밤새서 연구하는 게 즐거운 사람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아야 해요. 연구소도 책임 연구원쯤 되면 연구자 트랙과 관리자 트랙을 분리하면 좋겠습니다. 연구자 트랙을 택해 국가대표 선수로서 성능을 낼 수 있으면 정년과 무관하게 일을 계속 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는 우리의 우주 미래는 ‘남들이 안 하는 것’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눈에 보이는 시장은 경쟁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는 힘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 인천국제공항 만든다고 했을 때 저는 반대 의견을 갖고 있었어요. 제 경험의 울타리 안에서는 인천공항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그 때 공항건립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우주에 대해서도 이 사람 저 사람 얘기할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리더의 비전, 진짜 인사이트를 가진 전문가의 역할입니다.”

박 전 의장은 우리별 1호 발사 30주년인 11일 ‘쎄트렉아이 러시’(위즈덤하우스)라는 책을 펴냈다. 평소 기록차원에서 다이어리에 적어두던 경험과 사건들을 코로나19를 맞아 정리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우리별 개발 스토리, 쎄트렉아이를 경영하며 느낀 소회와 미래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만의 기억과 노트에서 이제 나와야 합니다. 후배들이 참고할 만한 책이 많이 없더라고요. 해외의 경우 일론 머스크를 다룬 책들만 해도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사안들을 조명합니다. 그런 책이 많아져야 과학강국이 아닐까요. 특정 인물, 특정 분야에 대해 파고드는 책이 많아질수록 미래세대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것입니다.”

우리별 1호는 2004년말까지 교신이 가능했다. 지금은 작동하지 않지만 여전히 궤도를 돌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우리나라의 우주시대를 처음 열어준 우리별 1호가 영원히 우주 쓰레기로 남아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한다. 우리별과 아리랑 위성이 개발된 지 벌써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 우주개발 1세대가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시점이다. 리더십, 프로젝트관리, 시스템 엔지니어링 등을 주도할 전문 인력 양성이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지, 기술과 경험이 세대 간에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우주개발 1세대를 만나 인상 깊었던 것은 대덕연구단지를 내려다보는 그의 사무실 창가에 펼쳐져있던 성경과 논어 필사본이었다. 쎄트렉아이 고문으로 물러나 찾고 있다는 “앞으로 20년 간 지속할 의미 있는 일”에 기대를 갖게 된다.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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