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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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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차 배우 예수정 “나에게 '연기'는 광활한 삶의 학원이에요”[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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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할 때 배우 예수정씨(67)에게서 외견상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표정이다. 그러한 표정의 8할은 그의 눈빛이 발산한다. 형형함에 희로애락이 교차하며 담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깊이 몰입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카메라로 그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클로즈업하던 사진기자가 “눈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감정표현에 감정이입돼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화장기 하나 없는 민얼굴에 염색하지 않은 백발. 그는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면 주름살과 흰머리가 편안하게 느껴져 평소 스킨과 에센스만 바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이듦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시간 속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오히려 그에게선 생동감이, 성찰적 삶을 살아온 이의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1979년 한태숙 연출가의 연극 <고독이란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했으니, 44년차 베테랑. 무대연기에 잔뼈가 굵은 그는 2001년 이후 영화와 드라마까지 넘나들며 관객에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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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예수정.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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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7월 25일 서울 압구정동 ‘카페아트앤’에서 진행됐다.

-최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체력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규칙적인 생활이 관리의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죠. 따로 하는 운동은 일주일에 3번 정도 30분씩 걷는 게 전부예요. 그 외에 경락받는 것을 좋아해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니까요.”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나요.

“오전 4시 5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매일 해 뜨기 조금 전에 일어나요.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장엄하게 느껴지거든요. 저 먼 데서부터 해가 뜨려는 기운을 느껴요.”

-그걸 몸으로 느낀다고요.

“김수근 선생(1931~1986·건축가)이 1970년대에 지은 서울 종로구 신영동의 한 단독주택을 매입해 수리해 산 적이 있어요. 20년 전 이야기예요. 거실에서 보고 있자면, 해가 뜨기 직전에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여명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걸 보려고 매일 이부자리를 거실에 깔고 잤어요. 당시의 강렬한 체험 때문에 그곳에서 이사 나오고 나서도 같은 시간이면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이 저절로 떠져요.”

-이후엔 뭘 하나요. 또 그렇게 일찍 기상하면 잠자리에는 언제 듭니까.

“해 뜨는 기운을 느낀 후에는 제가 직접 온갖 정성을 기울여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를 마셔요.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젊었을 때는 하루 10잔씩 마셨는데, 그래서 위를 많이 상했어요. 지금은 위장에 기름칠을 먼저 해주느라 삶은 달걀 하나 또는 아몬드를 곁들여 마셔요(웃음). 잠은 촬영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해가 지면 바로 자요. 해진 후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예씨의 뿌리는 연극이다. <과부들>, <밤으로의 긴 여로>, <나는 너다>, <벚꽃동산>, <하나코>, <화전가>, <신의 아그네스> 등 숱한 무대에 올랐다. 히서연극상, 김동훈연극상,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서울연극제 연기상, 이해랑연극상 등 연극계 권위 있는 상들을 거머쥘 만큼 내공 있는 배우다. 영화·TV드라마로 활동영역을 확장한 시기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다. <도둑들>, <부산행>, <신과함께: 죄와 벌> 등 1000만 관객 동원작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비밀의 숲>, <마인>, <원더우먼> 등 히트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대중에 얼굴을 각인시켰다. 2018년 <신과함께>로 ‘더 서울 어워즈’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0년에는 첫 영화 주연작 <69세>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올 한해에만 해도 그는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tvN), <인사이더>(JTBC), <마녀는 살아있다>(TV조선)에 이어 8월 1일 첫 방송되는 MBC 4부작 <멧돼지 사냥>에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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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예수정의 뿌리는 연극이다. 예수정이 출연한 연극 <앙상블>,<바다와 양산>,<과부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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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넘나들며 쉼 없이 많은 작품을 소화하고 있어요. 힘들진 않습니까.

“재미있어요. 그게 제 삶이니까요.”

-동시에 여러 작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선택 기준은 뭔가요.

“간단해요. 하기 싫은 작품은 안 한다예요. 다행히 그 범위가 좁아요. 동조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담긴 작품은 거부해요.”

-무대연기와 영상연기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그래서 베테랑 연극배우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현장에선 절절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다르게 연기하는 게 익숙한가요.

“연극은 연습을 두 달 이상 하면서 버릴 것이 많이 발견돼요. 칸딘스키(1866~1944·러시아 태생의 화가) 하면 저는 선을 그린 작가로만 알았어요. 창문을 통해 보이는 식탁, 그 위에 놓인 냅킨과 포크, 유리잔, 접시 등을 자세히 그려놓고 하나하나 지워가다가 결국 남겨진 게 선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통해 우리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됐어요. 연극도 마찬가지예요. 아주 구체적인 디테일까지 연습한 결과로 공연이 가까워질수록 버리는 게 많아져요. 관객이 상상하도록 하는 거죠. 반면 영화와 드라마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사실적 연기를 해요.”

-연기의 정수는 연극이라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 출연이 잦은 이유는 뭔가요.

“사람들의 일상을 배워요. 연극처럼 우리 삶의 중요하고 심오한 주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우리네 생활을 그대로 표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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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씨는 이야기할 때 표정이 풍부하고 손동작이 크다. 그러한 표정의 8할은 그의 눈빛이 발산한다. 희로애락이 교차하며 담긴다. 굉장히 몰입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찰나적 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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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삶에 대한 만족도가 큰 것 같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학습을 하는 게 무척 재미있어요. 고맙죠. 나, 예수정 개인의 삶의 폭은 좁으나 배역을 맡아 몰입하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한 인물이 있잖아요. 배우는 그 인물들의 삶과 시각을 연기를 통해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 자체가 광활한 삶의 학원이에요. 굉장히 흥미롭죠.”

-중견배우 김학철씨가 얼마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연예계는 승자 독식’이라며 냉혹한 연예계 현실을 비판했어요. ‘이 생활을 40여년 하다 보니 다음 생엔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고요.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수동적 직업이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수천, 수억의 돈을 쓰며 명품을 사는 사람들을 비난해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그분들이 고맙다고 말해요. 그런 사람들이 돈을 써주니까 백화점이 건재하고 나 같은 사람이 지하 식품코너에서 질 좋은 과일을 사먹을 수 있는 거라고요. 출연료를 많이 받는 스타 배우는 그에 따른 책임이 굉장히 커요. 시청률도 책임져야 하잖아요. 제 몫을 못 하면 스러지는 거고요.”

-결국 선택받고 안 받고는 배우 역량의 문제라고 보나요.

“역량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 스스로 만날 준비가 안 됐거나, 사회의 질감에 부합하지 않아 선택을 못 받는 후배들이 많아요. 소비자가 원하는 기호에 맞는 배우가 스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기호는 시기에 따라 변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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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의 어머니는 <전원일기> 김 회장(최불암) 어머니로 유명한 연극배우 출신 배우인 고(故) 정애란씨(가운데)다 . 사진은 <전원일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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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씨의 어머니는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최불암) 어머니로 유명한 연극배우 출신 배우인 고(故) 정애란씨(1927~2005)다. 언니는 탤런트 김수옥, 형부는 1970~1980년대 안방극장 최고의 스타였던 한진희씨다. 밑으로는 남동생 하나가 있다. 예씨는 “극장 분장실에서 어머니 젖을 먹고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만 네 살 때부터는 이모와 함께 객석에 나란히 앉아 어머니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회상했다.

-만 네 살이면 아주 어린 나이인데, 극장이나 어머니가 출연한 공연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까.

“분위기만 기억나요. 명동의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이었어요. 사위는 캄캄하고 진공상태 같은 정적이 흐르다 땡-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비치는 환한 빛….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무의식중에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어릴 때 어떤 소녀였나요.

“유년기부터 초등학교 들어가서까지 몸이 많이 약했어요. 팔에 링거를 꽂은 채 병원에 누워 창밖으로 무심히 하늘만 본 날이 많았어요. 학교 결석도 잦았고요. 그때 늘 주위를 감싸던 수액 냄새가 싫어 지금도 저는 비타민을 안 먹어요. 눈에 안 띄는 아이기도 했어요. 말썽을 일으키면 배우 딸이니 저렇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스스로 조심했던 거예요.”

-청소년기에 농구선수를 꿈꿨다던데, 이후 건강해졌나봐요.

“중2 때 몇 번이나 체육선생님을 찾아가 농구부에 넣어달라고 졸랐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제 키가 작다고요. 오기가 생겨 중3 때부터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고 잘 먹었어요. 그랬더니 살도 찌고 키도 큰 것 같아요(그의 현재 신장은 16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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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씨는 이야기할 때 표정이 풍부하고 손동작이 크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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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여중·고 출신이지요. 여고시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까.

“말수는 늘 적었어요. 하지만 학생회 부회장을 맡았을 만큼 행동력은 있었죠. 윤형주, 송창식씨 등을 초청해 강당에서 공연을 벌이기도 했어요. 또 릴케(1875~1926)의 시를 너무 좋아했어요. 섬세하면서 깊고, 생각은 몹시 날카로우면서 합리적이고, 또 엄청 낭만적이니까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면서 독어독문학과를 선택한 거예요. 릴케가 독일 시인이니까.”

그는 1973년 고려대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했다.

-원래 이름은 김수정이었다죠.

“고3 때 예비고사 접수를 해야 하는 것을 접수 마감날 아침에서야 기억했어요. 문제는 첨부해야 하는 호적초본이었어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제 호적초본을 떼려면 아버지 고향인 경북 안동까지 다녀와야 했는데 시간상 불가능했어요. 엄마가 동사무소 직원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더니 엄마 호적으로 저를 빨리 입적시키라고 방법을 알려줬어요. 그렇게 성을 바꾸고 이후 처리는 담임선생님께서 해주셔서 무사히 접수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었어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한 건가요.

“대학교 1학년 때예요. 극장에서 영화 <대부>를 봤는데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 충격을 받을 만큼 강렬한 감흥을 느꼈어요. 나, 저 사람처럼 한 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시 극장 위에 있던 독일문화원에 곧장 달려가 ‘나, 이것 좀 해보면 안 돼요?’ 했어요. 이후 연기를 시작하면서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독일의 극작가이자 연출가)를 만났어요. 브레히트의 ‘극장은 시민을 계몽하는 공간이다’라는 말이 가슴을 달궜어요.”

당시는 엄혹한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그는 압제에 맞서 거리로 나가 돌을 던지는 대신, 연극을 통해 사회 변혁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요.

“젊은 날에는 그렇게 ‘사회 계몽에 참여하는 것이 내 인생이다’라고 푯대를 꽂았었죠. 하지만 지금은 ‘수정아, 네 눈앞의 머리카락을 잘 줍는 것이 시작이야, 너의 삶을 잘 마무리하는 자체가 원래의 목적에 반 발짝이나마 나가는 거야’라고 스스로 다독여요. 당초 내 주제에 다다를 수 없는 높은 소망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신발을 아직 신지 않은 것인지, 생각해요.”

-1979년 한태숙 연출가의 연극 <고독이란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했는데, 어머니는 딸이 배우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아요. 언제 허락을 구했습니까.

“전 말씀드린 적 없어요. <고독이란 이름의 여인>을 보신 유덕형 선생님(연출가·전 서울예대 이사장)이 당신 작품인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 저를 스카우트하셨어요. 그런 어느 날 연습에 참여한 제가 엄마 허락을 안 받고 연극을 한다는 것을 유 선생님이 눈치채셨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당신이 직접 우리 집에 찾아가 엄마께 말씀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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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씨는 이야기할 때 표정이 풍부하고 손동작이 크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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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반응은 어땠나요.

“유 선생님이 웃으면서 대화 내용을 전해주셨는데, 그때는 엄마 때문에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개런티는 제대로 주면서 하시게’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어머니는 딸이 배우가 되는 것을 왜 반대했던 건가요.

“당신이 걸어온 길이기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까요. 엄마는 강단이 대단한 분이셨어요. 제게 ‘대학교 졸업한 후에는 집에서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하셨고, 실제로 그러셨어요. 그래서 학교 졸업 후 독일어 가정교사, 순복음교회 교지 편집장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가면서 연극을 했어요. 가족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먼 엄마의 그런 태도가 제게는 두고두고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대선배인 어머니께 연기에 대해 조언을 들은 것은 없습니까.

“없어요. 다만 생활 속에서 보여주신 철학이, 당신의 삶과 연기에 책임지는 태도가 나의 무의식에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제가 하는 연극을 딱 한 번 보러 오셨어요. 그것도 저 때문이 아니라 손숙 선생님 보러 오신 거였어요(웃음).”

그는 연극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마치고 1980년 결혼했다. 1982년 딸(연출가 김예나)을 낳고 1984년 남편과 함께 독일 뮌헨대로 유학을 떠났다. 1986년 아들이 태어났다. 독일에 8년간 머무는 동안 남편은 연극이론 박사학위를 받았고, 예씨는 연극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귀국했다.

-독일 생활을 통해 뭘 얻었습니까.

“제일 크게 얻은 것은 예수정 머리에 균열이 생긴 거예요. 많은 의문부호가 있었지만 이전까지는 (자신의 머리를 위에서 양손으로 누르며) 여기를 철통같이 막아버리고 사회와 발맞춰 질서와 예절을 가장 중시하면서 사는 삶이었어요. 그런데 독일로 건너가 공부하고 독일인 속에서 살면서 비로소 제 의식과 시야가 열리고 발전하고 넓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런 나를 발견한 것이 최고의 수확이었어요. 또 우리 두 아이와 함께 만든 소중한 추억들도 너무 좋았고요.”

-남편 뒷바라지와 육아로 정작 본인은 논문을 못 썼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역시 한국 가부장 문화의 영향인가요.

“말도 안 돼요. 뒷바라지 안 했어요. 그분은 남편으로서 민주적이고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각자 잘 살았어요. 한국에 들어와서도 제가 박사학위를 못 딴 것을 안타까워해 아이들을 자신이 케어할 테니 돌아가 공부를 마치라고 권한 사람이에요. 그냥 저는 아이들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삶을 배우며 사는 게 학과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을 뿐이에요.”

두 사람은 20년 전쯤 이혼했다. 예씨는 “지금쯤 헤어지면 굉장히 잘 살았다고 서로의 인생에 남겠다는 생각이 당시 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연극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중간에 유학기간이 있었습니다만 40년 넘게 연기를 해온 배우여도 아직도 자신의 연기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나요.

“느끼죠. 나의 연기의 부족은 많은 부분이 이 내 몸에 부여된 어떤 것들이 충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 물으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를 완전히 열어놓고 어떤 의문점에 대해 타인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시간 속에서 배우로서 얻는 게 많다고 봐요. 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미술에 충분히 심취하는 시간도 자주 가지려 해요.”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가가 있습니까.

“말러와 바흐예요. 좋은 미술전시회에 가서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그때가 본연의 내가 열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그는 생각이 많은 예술가로 보였다. “물비린내에 민감해 생선을 안 먹는 것은 물론이고 욕실과 주방에도 물기 하나 보이지 않게 한다”는 그는 “집의 창문은 늘 활짝 열어놓고 산다”고 했다. “먼지와 함께 사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예술가의 예민함과 자유주의적 태도를 동시에 지닌 그에게서 젊은 날 가슴속에 타올랐을 뜨거운 불덩이와는 다른, 연기와 삶을 대하는 성숙한 결기가 느껴졌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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