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간 피해지 돌며 기숙학교 '문화적 제노사이드' 사죄
"몇달째 분노·수치심" 가톨릭 제도책임 인정하고 바티칸 복귀
이누이트족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가톨릭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 방문 마지막 날 이누이트 원주민들에게도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학대에 대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엿새간 이어진 캐나다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29일(현지시간) 캐나다 최북단 북극지역의 누나부트준주 이칼루이트를 방문해 "오늘도 이곳에서 천주교인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얼마나 죄송한지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칼루이트는 인구 7천700명 규모의 이누이트족 마을이다. 육로로는 접근할 수 없고 배나 비행기로만 방문이 가능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누이트족 원주민들과 비공개 면담을 진행한 뒤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가 원주민을 탄압하고 백인 문화에 동화시키는 정책에 참여했다"며 "생존자들이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벌써 몇 달 전부터 이어지던 분개심, 수치심이 다시 처음처럼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이날 이누이트족은 전통춤과 노래로 교황을 맞이했다.
교황의 사과를 듣고 나서는 가톨릭과 캐나다 정부가 기숙학교 학대 피해 생존자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앞서 이날 퀘벡에서도 원주민 지도자들을 만나 "부당한 정책으로 원주민을 탄압했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과 경청하는 이누이트족 |
캐나다에서는 정부 주도의 백인문화 동화정책 하에 기숙학교가 다수 운영됐다. 이들 학교 대다수는 가톨릭에서 운영했다.
이 기간 원주민 아동 15만 명 이상이 가족에게서 강제로 분리돼 기숙학교로 끌려갔다. 학교에서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면 체벌을 당했다. 성적 학대 피해자도 상당수였다. 캐나다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런 학교 운영을 '문화적 제노사이드'라고 일컬었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집단을 말살하려는 조직적 시도를 뜻하는 말이다.
작년 5월부터 가톨릭 기숙학교 부지 3곳에서 원주민 아동 유해 1천200여구가 발견되면서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교황을 향한 공식 사과요구도 커졌다.
교황은 4월 1일 바티칸에서 캐나다 원주민 대표들을 만나 "가톨릭교회 구성원의 개탄스러운 행위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한 바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캐나다로 날아와 주요 피해지를 돌며 일일이 사죄했다.
25일 앨버타주 매스쿼치스의 기숙학교 부지를 찾아 "그토록 많은 기독교인이 캐나다에서 원주민에게 악행을 저지른 데 대해 겸허하게 용서를 구한다"며 공식 사과한 것을 시작으로 6일간 방문지마다 원주민들을 만나 거듭 몸을 낮췄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단체 등은 교황이 '많은 기독교인의 잘못'만 언급했을 뿐 가톨릭 교회의 조직적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런 비판이 제기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존 사과에 더해 가톨릭 교회의 제도적 책임까지 인정하는 발언을 보탰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칼루이트 방문을 끝으로 이날 캐나다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 교황청으로 복귀하기 위한 이탈리아 로마행 비행기에 올랐다.
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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