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미얀마 군부 소속 보안병력이 양곤의 한 거리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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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유지에 혈안이 된 미얀마 쿠데타 군부가 극단적인 외교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눈치만 보던 영국 등 서방세계와의 단절을 감수하고, 그 빈 곳을 '우방' 러시아에 전적으로 기대는 전략을 선택했다.
군부는 동시에 스리랑카에 구호미(米)를 보내는 등 독자외교 노선도 표방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제사회의 인정 여부에 개의치 않고 본격적으로 '마이웨이'를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反군부 핵심' 英대사 추방… 서방에 경고
피트 보울스 주미얀마 영국 대사의 모습. 프론티어 미얀마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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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프런티어 미얀마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군부는 지난 13일 피트 보울스 주미얀마 영국대사를 전격 추방했다. 지난해 8월 현지에 부임한 피트 대사가 군정에 신임장을 내지 않아 추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지난해 2월 쿠데타 발발 이후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피트 대사에 대한 신임장 제출을 계속 거부해 왔다.
하지만 현지에선 피트 대사의 추방을 외교적 충돌이 아닌 의도된 '메시지 전달'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1년이 넘도록 상황을 방치하던 군부가 갑작스레 추방을 결정한 건 "서방세계는 미얀마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는 뜻이다. 피트 대사는 현지 민주세력을 적극 지원해 온 대표적 외부 인사이자, 현지 외교가에서 반(反)군부 여론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영국이 미얀마에 가진 상징성 또한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1826년부터 122년 동안 미얀마를 식민 지배한 영국은 최근 20여 년 동안 미얀마 민주진영을 지원해 온 가장 큰 외부세력이다. 이와 관련 영국은 쿠데타 이후 민주진영 등에 2,800만 달러를 지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민주진영의 군비 확충 시도를 막아야 하는 군부 입장에선, '피트 대사 추방'이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는 얘기다.
러 중심 독자외교 시작… "장기통치 밑그림"
지난 13일 러시아 카잔 공항에 도착한 미얀마 군부 수장 민 아웅 흘라잉(왼쪽) 최고사령관이 마중을 나온 루스탐 민니카노프 타타르스탄 연방공화국 대표와 만나 웃고 있다.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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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대사를 추방한 시점 또한 공교롭다. 13일은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러시아 카잔을 국빈 방문하고, 군정이 스리랑카로 구호미 1,000톤을 보내기로 결정한 날이다. 영국을 밀어내면서 독자외교를 의도적으로 공표, 선전 효과를 극대화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흘라잉 사령관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그는 지난 10일 수도 모스크바에 이어 사흘 뒤 카잔까지 방문하며 비밀 계약을 다수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에서 그가 만난 인물은 무기 공급업체인 로소보로넥스포트 대표였으며, 카잔에선 석유회사 파트네프트 최고경영자(CEO)와 독대했다. 러시아 방위 및 에너지 산업 이전이 구체화됐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지점이다.
스리랑카에 대한 지원 결정도 작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인구 2,100만 명의 스리랑카에 겨우 1,000톤의 쌀을 보내는 건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지금의 스리랑카 혼란은 외화 부족으로 인한 경제체제 붕괴의 영향이 더 크다. 현지매체 이라와디는 "군부가 스리랑카에 쌀을 보내는 건 동정심 때문이 아니다"라며 "국제사회에서 배제된 군부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행동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동남아 외교가 관계자 역시 "군부가 외교 변수를 줄이고 심화되는 내전 상황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며 "간간이 외교무대에 존재감만 보이면서 미얀마를 장기 통치하는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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