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격' 연루 통일교는 자민당과 오랜 인연
신사본청, 개헌 지지하며 '신토 부흥' 꿈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가 열린 12일 도쿄 조조지에 운구차가 도착한 가운데 조문 인파가 몰려 있다. 일본에선 혼례는 신토식으로,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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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암살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가 공격을 결행한 직접적 원인은 모친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대한 과도한 기부라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는 "종교가 총격 사건의 원인"이라는 애기가 나오자마자 통일교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의 이름이 입길에 올랐다.
일본에는 토속신앙이자 동시에 생활양식인 신토(神道), 한반도로부터의 전래 후 신토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토착화한 불교, 그리고 두 종교를 기반으로 파생한 다양한 신흥 종교 교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분명한 지지 정당을 만든 교단도 있고, 특정 정치인을 공개 지원하는 교단도 있다. 교인을 동원하는 교단의 영향력은 기성 정치권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창가학회가 낳은 공명당, 자민당 고삐도 쥐어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가 2013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고 있다. 공명당은 한일과 중일 관계 등에 대립을 피하는 방향으로 풀어 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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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종교 기반 정당의 대표 사례는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다. 불교 계열인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가마쿠라 시대 니치렌 선사가 창안한 일련종의 일파로 분리돼 나온 창가학회는 일본 군국주의 정권이 군소 종교를 탄압하면서, 시조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가 옥사하는 고난을 겪었다.
이 때문에 창가학회는 현실 정치의 참여를 '방어적 참여'라고 주장한다. 1956년 참의원 선거에서 종교 상태로 의원을 당선시켰고, 이들을 기반으로 1964년에 중도 성향 정당인 공명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명당 정치인들이 창가학회에 비판적인 서적 출판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포착되며 비판이 쏟아지자 1970년 '정교 분리'를 공언했다. 즉 공명당과 창가학회는 공식적으로는 별개의 관계다.
하지만 창가학회는 여전히 공명당의 조직 기반이다. 창가학회는 선거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수면 아래에서 종교 모임을 진행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공명당 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 모임으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교인을 선거에 동원하고 있다. 1999년 이래로 '만년 여당'으로 통하는 자민당과 연정이 형성되면서 정치적 영향력도 더욱 커졌다. 창가학회가 교세를 팽창하는 데에 공명당의 정치적 성공이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창가학회와 공명당이 늘 '한몸'인 것만은 아니다. 2014년 아베 신조 내각에서 헌법상의 자위권을 '집단자위권'으로 확대하는 해석을 한 이후, 공명당 역시 자민당의 해석에 동조하는 흐름을 보였다. 이에 창가학회의 젊은 회원들은 교리의 핵심 중 하나인 '평화주의'를 내세우면서 '반파시즘 SGI' 운동을 벌여 공명당 노선을 비판했다.
공명당은 현재도 '평화헌법 9조' 개헌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공명당이 연정 체제로 자민당의 과도한 우경화를 견제한다는 평가와, 정치 권력이 주는 이득에 취해 자민당에 끌려다닌다는 평가가 동시에 존재한다.
신당 만들고, 특정 후보 지지 선언도
'행복의 과학' 창시자이자 '행복실현당'의 당수인 오카와 류호는 극우 성향으로 유명하다. 행복의 과학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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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당만큼 성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종교 교단이 정치에 관여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리부터 극우 성향이 짙은 '행복의 과학'이라는 신흥종교는 '행복실현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이 종교는 일본 국내 언론에서조차 사이비(컬트)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그 당세도 미미하다. 그 외의 신흥 종교들은 주요 여당인 자민당과 야당인 입헌민주당 등의 정치인을 공개 지지하며 선거 지원에 나서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종교적 대결 구도가 지지 정당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있다. 창가학회와 마찬가지로 일련종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역시 갈라선 '입정교성회'는 과거 자민당 정치인을 주로 지원했다. 하지만 공명당이 기존에 사회당 등 혁신계와의 연대를 중단하고 자민당과 연립노선으로 돌아서자, 거꾸로 입정교성회는 자민당과 거리를 두고 민주당 계열 정치인을 주로 지지하는 방향으로 틀었다. 입정교성회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입헌민주당 쪽을 집중 지원했다.
통일교, 아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오랜 인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일본지부의 수장 다나카 도미히로가 지난 11일 도쿄에서 기자회견 도중 기자의 질의를 듣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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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역시 일본 정가에 입김이 있었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온 신흥종교다. 일본 전문가인 리처드 새뮤얼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국제학연구소장이 2001년 일본정책연구소(JPRI)를 통해 공개한 연구논문을 보면, 전후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정계의 '흑막(막후 실력자)' 사사카와 료이치를 통해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를 소개받았다. 기시는 문 총재가 설립한 '국제승공연합'을 높이 평가했으며, 기시가 보유했던 도쿄의 땅에는 통일교의 일본 본부가 건설됐다.
1970년대 초에 통일교 신자들은 자민당 선거운동원으로 무보수 봉사했고 그 대가로 특유의 공격적 포교 전술을 용인받았다. 이후 기시 파벌의 정통 후계자인 후쿠다 다케오, 기시의 사위인 아베 신타로, 그 아들인 아베 신조에 이르기까지 3대가 통일교와 관계를 유지했다. 자민당뿐 아니라 오자와 이치로, 하시모토 류타로 같은 다른 정당 인사들도 통일교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교 일본지부 다나카 도미히로 회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기시 전 총리에 대해 "통일교 조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문선명 총재의 평화운동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해서는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으나 우리의 평화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왔기에 우리도 좋아하는 분"이라고 마이니치신문에 밝혔다.
반면 통일교 활동을 위법적·반사회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본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관련 행사를 축하하는 등의 행동을 두고 "앞으로 정치인으로 계속 활동할 것이라면 통일교 및 관련 단체의 행사에 협력, 지원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며 비판한 바 있다.
'개헌 지지' 운동 참여하는 신사본청
2013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에 앞서 신관의 뒤를 따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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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의 정치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일본 전국 8만여 개 신사를 제도적으로 통할하는 '신사본청'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본래 신토는 일본 군국주의 정권 시기에 국가 이념의 중심이 됐다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후 연합국 군정에 의해 국가신토가 해체되면서 타격을 입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며 군정기가 끝나자 신사본청은 '부흥운동'을 개시했고, 이 과정에서 보수 정치권과 긴밀하게 연결됐다.
신사본청의 작업 중 결실을 맺은 것은 '건국기념의 날' 제정과 연호의 공식적 사용이다. 또 신사본청은 2016년 이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정치결사단체 '일본회의'도 지원하고 있다. 일본회의는 천황과 황실의 지위 격상, 애국적 교육 강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공식' 참배, 헌법 개정 등을 목표로 삼는 우파적 단체다.
신사본청에 일본의 모든 신사가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속해 있더라도 모시는 신이 저마다 다른 신토의 특성상 개별 신사는 대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한국에서 유명한 야스쿠니 신사 역시 신사본청에 속하지 않은 독립 종교법인이다. 다만 신사본청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입장은 마찬가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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