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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軍에 희생된 27세 간호사… "하늘선 꼭 민주화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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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네피도 병원에서 일하다 민주화운동 가담

낙향 후 지방行… 시민방위군에 의료지원 제공

부상한 저항군 치료 중 정부군에 붙잡혀 처형

"정말 훌륭한 간호사"… 각계 애도·추모 잇따라

세계일보

미얀마 정부군에 희생된 자를리 나잉(가운데) 등 5명을 추모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임시로 만든 조형물 모습. BB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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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군부 쿠데타 발생 후 벌써 1년 6개월 가까이 지난 미얀마에서 반(反)군사독재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온 20대 여성 간호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다.

15일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미얀마 중부 친드윈강(江) 서부 마그웨이주(州)의 한 마을에서 남녀 5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심하게 훼손되고 심지어 불에 태워진 점으로 미뤄 미얀마 정부군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됐다. 미얀마는 지난해 2월1일 쿠데타 발생 후 민주화, 그리고 문민정부 회복을 원하는 세력이 시민방위군(PDF)을 결성해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는 등 사실상 내전 상태다.

숨진 5명 가운데 1명은 여성이자 간호사인 자를리 나잉(27)으로 확인됐다. 그는 시민군, 그리고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한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BBC에 따르면 자를리 나잉은 불교 유적지로 유명한 바간의 한 농가에서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 자를리 나잉은 상급학교에 진학해 간호사 자격증을 땄고 수도 네피도에 있는 병원에도 취업했다. 의료 시스템이 극도록 열악한 미얀마에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은 사회적 대우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자연히 자부심도 강하고 정치적 의식도 높은 수준이다. 군부에 맞서 가장 격렬하게 싸우는 집단이 바로 의료인들이다.

자를리 나잉 역시 지난해 2월1일 쿠데타 발생 후 동료들과 나란히 불복종 운동에 뛰어들었다. 일하던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일단 고향으로 돌아간 자를리 나잉은 자신의 정치 성향 때문에 가족이 곤경을 겪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일부러 아무런 연고가 없는 마그웨이로 떠났다. 그곳은 미얀마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고 또 쿠데타 세력에 대한 반감이 유난히 강한 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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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쿠데타 정권에 반대하다가 희생된 간호사 자를리 나잉. 군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BB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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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자를리 나잉은 정부군과의 교전 도중 다친 시민군을 치료하고 또 의료시설에 갈 수 없는 마을 주민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만달레이의 명문 간호대가 운영하는 온라인 강좌에도 등록해 틈틈이 공부를 하는 등 자기계발 노력을 이어갔다. 온라인 강의에 참여했던 어느 강사는 “자를리 나잉은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하곤 했다”며 “그 지역에서 다친 시민군에게 응급처치 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를리 나잉 혼자뿐이었다”고 BBC에 밝혔다.

6월9일 마그웨이의 시민군이 정부군 초소를 공격해 병사 3명을 사살했다. 그러자 이튿날인 6월10일 곧장 정부군이 보복에 나섰다. 정부군 30여명이 마을로 몰려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시민군은 이를 막으려고 병력 이동의 길목에 사제 지뢰를 부설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군 병사 1명이 크게 다쳤다. 다급한 상황에서 일단 몸을 피해야 했으나 자를리 나잉은 이 병사를 치료하겠다며 몇몇 동료와 사지(死地)에 남았다. 그 사이 지뢰 설치를 파악한 정부군은 경로를 바꿔 마을에 들이닥쳤고 자를리 나잉 등은 정부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날 밤늦게 자를리 나잉 등 5명이 처형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나흘이 지난 6월14일 마을 주민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불에 타기까지 한 시신 5구가 발견됐다.

자를리 나잉이 등록하고 수강했던 만달레이 간호대 온라인 강좌의 강사는 BBC에 “숨지기 직전인 6월8일 1학기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고 소개하며 “정말 훌륭한 간호사였다”고 추모했다. 그의 동료 역시 “늘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끝내 가족에 알리지 않았다”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로 비통함을 드러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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