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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중국 주부가 심심해서 쓴 위키백과 가짜 러시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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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세 유럽에 만들어진 고성.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학자로 가장한 중국 여성이 몇 년에 걸쳐 쓴 위키백과의 중세 러시아사 관련 서술이 위키백과 사용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위키백과의 형식을 완벽하게 갖춘 전문성 있는 글로 여겨졌지만 알고 보니 상상으로 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매체 바이스 월드뉴스가 13일(현지시간) 해당 내용을 전했다.

중국 소설가 이판은 지난달 위키백과 역사 항목을 검색하다가 중세 러시아에 있었다는 ‘카신 은광’을 설명한 대목에 눈길이 갔다.

“1344년 러시아 농민들이 발견한 은광에서 4만명 이상의 노예와 자유민이 고용돼 일했으며, 이 은광은 14~15세기 러시아 트베르 공국뿐 아니라 이후의 정권들에도 엄청난 부의 원천이 됐다.”

해당 항목은 토양의 지질구성과 광산의 구조, 은의 제련 과정까지 상세하고 풍부한 서술을 담고 있었다. 위키백과 편집원칙대로 각주로 출처도 충실히 달려 있었다. ‘저마오’라는 사용자가 2019년부터 중국어 위키백과에 쓴 206개 항목 중 하나였다.

흥미로운 소설 소재를 찾았다고 생각한 이판은 러시아어 사용자들에게 위키백과 해당 항목의 검증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판은 각주에서 인용된 책이나 페이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은광에 관한 글뿐만이 아니었다. 고대 슬라브족 간의 갈등이나 날짜와 도시 이름, 인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중세 왕국들 사이의 처절한 전투, 17세기 타타르 봉기에 관한 서술 등 저마오의 글 전체가 역사책에 없는 내용이었다.

이판은 이 사실을 위키 편집자들에게 제보했다. 이판과 편집자들은 저마오의 글을 찾아 검토한 결과 해당 내용들은 모두 저마오가 상상으로 꾸며낸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대하역사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글들이 아니라 백과사전의 형식을 한 진짜 대하역사 소설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경향신문

저마오가 상상해서 서술한 위키백과의 한 대목. ‘보로프스크 포위’라는 제목으로 가상의 전투를 설명하고 출처까지 표기했다. 현재는 삭제된 상태이다. /위키백과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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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오는 자신이 러시아 남자와 결혼한 러시아 주재 중국 외교관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프로필에 모스크바 주립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기재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평화주의자라고 덧붙이며 남편이 서명했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청원서도 첨부했다.

저마오가 편집한 글은 영어, 아랍어 등으로도 번역됐다. 저마오는 위키백과 커뮤니티 내에서 편집에 기여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수여하는 훈장인 위키피디아 반스타도 받았다.

실제 저마오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중국의 주부였다. 영어와 러시아어도 할 줄 몰랐다. 그는 지루하고 심심했을 때 해외 논문을 번역기를 돌려 읽고 문장의 뼈대를 만든 뒤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위키백과 항목을 채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저마오는 러시아 전문가들에게 사과했으며 “다시는 무모한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바이스가 전했다. 저마오의 계정과 글은 위키백과에서 삭제된 상태이다.

위키미디어 재단 대변인은 바이스 월드뉴스에 “개방형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유형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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