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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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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내게 오라"... 돈과 힘 앞세운 미중러 '외교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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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중요성... 미중 갈등 핵심 전장
'국제 왕따' 러시아, 동남아서 활로 모색
한국일보

지난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주요20개국(G20) 외무장관 회담장에 왕이(왼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앉아 있다. 그의 오른쪽 두 번째 옆자리에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모습이 보인다. 발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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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에서 뜨거운 외교 대첩이 벌어지고 있다. 참전국은 미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 최근 두 달 사이 3개국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동남아를 드나들며 외교전을 벌인 횟수가 14번에 달한다.

동남아는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유럽, 경제력이 막강한 동북아시아에 가려져 만년 변방 취급을 받았다. 동남아의 주가가 갑자기 오른 이유는 뭘까.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독특한 정치 체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동남아 방문, 미국 7회 '최다' 중국 5회로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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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태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함께 회담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방콕포스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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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남아 10개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올해 5월 이후 미중러 중 동남아를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는 미국이다. 5월 1일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5일에는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필리핀, 라오스, 베트남을 찾았다.

미국의 '동남아 공들이기'는 계속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달 7, 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곧바로 태국을 방문했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부장관, 차관보가 5월 이후 7번이나 동남아를 찾은 것이다.

중국도 맞대응에 나섰다.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달 3일 이후 미얀마,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러시아도 뛰어들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지난 5일 베트남을 찾은 데 이어 G20 회의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비공개 회동을 했다.

'포위' 미국 vs '수성' 중국… 러시아는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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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필리핀 파사이시 빌라모르 공군기지 도착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모습. CN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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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의 동남아 외교 대첩은 미국의 외교 전략 변화로 촉발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일 대 일 정면 대결'을 시도한 것과 달리, 인도, 일본, 호주와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를 통한 중국 압박을 핵심 전략으로 택했다. 동남아는 일본에서 인도까지 이어지는 중국 포위 전선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특수성도 미국을 움직였다. 동남아 10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아세안은 글로벌 동맹 체결이나 협약 가입 문제를 '합의'로 결정한다. 회원국을 일일이 포섭해야 동남아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미국의 발걸음이 잦아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쿼드의 포위망에 갇히지 않기 위해 동남아에서의 영향력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동남아 각국과 분쟁으로 얽혀 있는 터였다. 베트남, 필리핀 등과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진행 중이고, 메콩강 5개국(라오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과는 메콩강 상류 댐 건설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미국이 이 지점을 공략하자, 중국은 그간의 무시 전략을 버리고 동남아 각국과 대화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러시아의 동남아 구애는 미국, 중국과 성격이 다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국제사회 '왕따'로 전락한 처지여서 외교적 활로가 필요했다. 이에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라오스, 러시아산 무기를 구매해온 미얀마와 캄보디아 등 독재 국가를 챙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실제 베트남과 라오스는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도발에 대한 유엔 긴급결의안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는 오는 11월 연달아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미중러 제각각 전략, '외교 경쟁 장기화'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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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세르게이 라브로프(왼쪽) 외무장관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응우옌푸쫑 베트남 당서기장과 면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VN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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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서 펼치는 3강국의 외교 전략은 제각각이다. 미국은 강력한 글로벌 리더십, 즉 외교 파워를 활용한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메콩 댐 갈등, 남중국해 분쟁 등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하는 식이다. 골칫거리를 해결해 줄 테니, 중국이 아닌 미국에 줄을 서라는 회유 혹은 압박이다.

당근도 준비했다. 미국은 동남아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에서 신음하는 사정을 감안해 의료보건 지원, 농업 등 취약산업 기술 이전 카드를 제시했다.

중국은 재력을 앞세워 동남아 각국의 마음을 돌리려 하고 있다. 중국이 지은 댐으로 가뭄 피해를 겪고 있는 메콩국가들에게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차관 지원을 약속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껄끄러운 필리핀에 대해선 "바다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면 문화ㆍ경제 교류 대확장의 길이 열린다"고 유인했다. 철도 개발은 또 다른 선물이다. 중국은 싱가포르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를 지나 중국에 닿는 철도사업 개발에 속도를 내기로 해당 국가 정부와 최근 각각 합의했다.

러시아는 '염가 세일'로 영향력 확장에 나섰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석유 수출 제재로 동남아는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라오스에 국제가격보다 70% 싸게 원유를 팔고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도 방위 물자를 더 싸게 공급하기로 했다.

동남아 외교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재확산 등 국제정세 불안이 계속되는 한 동남아 외교 대첩은 한동안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정부 도 동남아 외교 지형이 어떻게 바뀌는지 적극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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