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1시쯤 부산 사하구 을숙도. 낙동강이 머금었던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섬에 대형 백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 15.6m, 높이 9.3m에 달하는 조형물에는 날개 아랫부분을 좌우로 관통하는 공간이 뚫려 사람이 새의 몸통 안쪽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새의 몸은 여러 명이 걸터앉거나 딛고 올라설 수 있을 만큼 견고했다.
낙동강 하구에서 포착된 쇠백로. [사진 낙동강하구에코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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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의 정체는 전국에서 끌어모은 폐플라스틱 27t을 재활용해 제작한 쇠백로 파빌리온(전시 목적 임시 건물)이다. ‘Re: 새- 새- 정글(Re:New- Bird- Jungle)’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1만5000개의 재생 플라스틱 프레임과 판재를 가로세로 55㎝의 정육면체 유닛으로 조립하고, 유닛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대형 쇠백로 파빌리온 제작을 기획한 부산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배달음식 이용이 일반화됐고, 플라스틱 용기 사용량이 급증하며 ‘플라스틱 팬데믹’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를 환기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탐구하자는 의미를 담아 이번 작품을 기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환경부 집계를 보면 국내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은 2019년 131만t에서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251만t으로 급증했다.
수목 정비로 보금자리를 잃은 쇠백로 60여마리가 광주 황룡강 주변에 방사됐다. [연합뉴스] |
조류도감은 쇠백로가 “사다새목 왜가리과에 속한 백로의 일종으로, 매년 4~10월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보낸 뒤 남쪽으로 떠나는 여름 철새”라고 소개한다. 낙동강 하구 일대 생태 자원을 관리하는 부산시 낙동강 하구 에코센터 역시 쇠백로를 철새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을숙도를 포함한 낙동강 일대에서 쇠백로를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여름 철새’라는 설명은 더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2017년 부산 강서구는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철새 조사’ 용역을 경성대 조류연구관에 의뢰했다. 이 용역에서 쇠백로 60여 마리가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낙동강 하류에서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쇠백로가 필리핀 등 따뜻한 곳으로 떠나지 않고 을숙도 일대에 눌러앉아 ‘텃새’가 됐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조사다.
쇠백로뿐 아니라 중대백로, 해오라기, 왜가리 등 여름 철새 110여 마리도 그해 겨울을 낙동강 일대에서 난 것으로 확인됐다. 을숙도는 매년 여름과 겨울 50여종 10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드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다. 바다와 강이 맞닿아 기수생태계를 이루는 이곳의 수초와 갈대는 철새의 보금자리가 되고, 먹이로 삼을 수 있는 어패류가 풍부해 철새의 낙원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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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조류연구관 소속 연구원은 “철새의 가장 큰 이동 요인은 기온이다. 여름 철새가 떠나지 않는다는 건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만큼 우리나라의 가을·겨울이 따뜻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기상청 관측 자료를 보면 1991년부터 30년간 부산의 10월~이듬해 3월까지 월별 최저 기온이 0.3~0.6도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된다. 이 연구원은 또 “도시가 개발되고 강변과 해변에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면 잡식성인 새가 먹이 활동을 하기 쉬워진다. 대표적으로 해 질 무렵 해운대 동백섬과 일대 아파트를 오가며 사람이 남긴 음식이나 단지 내 유실수에서 먹이를 구하는 철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며 “기온과 먹이 활동 등 조건이 맞는다면 철새가 떠날 이유는 사라진다”고 말했다.
대형 쇠백로 파빌리온을 구상하고, 플라스틱 사출 등 작업을 거쳐 구현한 것은 곽이브(39) 작가와 이웅열(40) 디자이너다. 곽 작가는 “자료 조사 과정에서 쇠백로가 낙동강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 부산현대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실제로 주변을 날아다니는 쇠백로를 만나기도 했다”며 “만약에 저 쇠백로가 미술관 앞마당에 내려앉는다면, 그런데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이자 놀이기구가 될 수 있다면 흥미로울 듯하다는 구상으로 대형 쇠백로를 구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구상을 실제 작품으로 옮긴 이웅열 디자이너는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프레임과 판재를 이용해 의자, 테이블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뒀다. 견고한 소재를 사용했고, 분해와 재조립이 쉽도록 정육면체 유닛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의 플라스틱 분리배출 방식으로는 재활용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작업 과정에서 절감했다. 이번 전시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쇠백로 파빌리온을 오는 10월 23일까지 야외 전시장에 전시한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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