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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AI 개발한 국문학도... "챗봇은 인문학·공학 결합한 종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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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와 AI ②: AI, 인간에 이르다]
자연어처리 전문 스타트업 '튜닙'의 박규병 대표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가 챗봇과 두 달 간 채팅을 나누며 친구 만들기에 도전해 봤습니다. 펜팔처럼, PC통신 친구처럼, AI는 과연 마음을 나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AI의 대화 기술은 사람 친구와 다름 없는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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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병 튜닙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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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언어죠.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고, 소통하잖아요. 그래서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인간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채팅로봇(챗봇)을 만드는 건 인공지능(AI) 개발자들의 원초적인 꿈일 수밖에 없죠."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인공지능(AI) 기술 스타트업 튜닙(TUNiB)의 박규병 대표는 AI 챗봇 개발에 뛰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튜닙은 자체 개발한 자연어처리(NLP) 기술을 바탕으로 AI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NLP 기술은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머신러닝을 통해 이해하고 해석,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AI의 핵심 분야다.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들이 막대한 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격전지가 바로 AI 시장이다. 그런데 튜닙은 직원이 50여명인 작은 스타트업으로서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무슨 용기로 글로벌 빅테크와 붙어볼 배짱이 생겼던 걸까? 박 대표는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인터넷이 뭐냐, 무슨 쓸모가 있냐는 의문이 참 많았다"며 "우리가 챗봇의 방향성을 미리 결정하는 건 챗봇의 상상력은 좁히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국문학 전공 문과생이 AI 개발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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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스타트업 튜닙이 개발 중인 반려견 컨셉의 챗봇 코코와 마스. 튜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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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AI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회사에서 온라인 검색 사이트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였다. AI에 흥미가 생기니, 컴퓨터의 언어를 더 깊게 알아보고 싶었다. 박 대표는 대학원에서 자연어처리 방식을 다루는 '전산언어학'을 전공했다. 이후 2017년 카카오브레인의 창립멤버로 합류, 4년간 자연어처리팀장을 맡았다.

그랬던 그가 퇴사를 결심하고 전현직 동료들과 함께 튜닙을 차린 건 지난해였다. 박 대표는 "AI 시장이 점점 성숙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나만의 챗봇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창업을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튜닙은 현재 AI 챗봇, 그중에서도 다양한 인격(페르소나)을 가진 페르소나 챗봇을 개발하는데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반려견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코코'와 '마스'다. 인간의 페르소나를 가진 AI와 관련한 윤리적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과도기인 만큼, 인간보다 귀엽고 친근감 있는 반려견 페르소나를 시작으로 점차 다양한 챗봇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문학에서 시작한 그의 이력은 챗봇 개발에도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대화형 AI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인격을 빚는 일인 만큼 공학의 영역을 넘어선다. 인간의 성격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강렬했던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 반면, 스쳐 지나간 사소한 지식은 쉽게 잊혀진다. AI의 페르소나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성격처럼 변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무엇을 기억할 지 어떤 일을 망각할 지를 정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인문학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튜닙에는 컴퓨터공학, 언어학 전공자뿐 아니라 전문 작가와 성우까지 합류해 협업하고 있다. 박 대표는 "챗봇은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도전적인 분야"라면서도 "저부터가 인문학 베이스이기 때문에, 다양한 전공의 기획자와 개발자를 모아 서로 융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 메타버스엔 다양한 성격의 챗봇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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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병 튜닙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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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닙이 그리는 로드맵의 최종 단계는 수많은 페르소나 챗봇이 모여 있는 '챗봇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다. 미래 먹거리로 손꼽히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현실화되면, 메타버스 내 생태계에는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가상인물(NPC)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해진 말만 할 줄 아는 게임 속 NPC가 아니라, 대화 주제에 한계가 없는 '사람 같은 NPC'가 있어야 현실 세계와 흡사한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박 대표는 "페르소나 챗봇이 모여있는 세계가 바로 메타버스의 세계"라며 "메타버스 속에서는 사람과 챗봇의 경계가 어느 순간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두주자는 있지만, 확실한 대세는 없는 대화형 AI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서 작은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대기업이 각사의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하기 위해 초거대 범용 AI 모델을 개발한다면, 튜닙은 대화 비즈니스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셈"이라며 "범용 모델은 어느 하나를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카카오톡의 성공을 돌이켜보면 반드시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성공을 하는 것도, 기술을 아예 배제한 회사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며 "스타트업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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