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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왜 우리 학교엔 장애학생이 없을까?"…장애인 이동권 현실과 정면으로 맞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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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장애학생 교육 기본권 보장을 위해 연합동아리 ‘모이자’를 결성한 울산 현대청운고 학생들. 무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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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학교엔 엘리베이터가 없을까?” “왜 우리 학교에선 장애학생이 안 보일까?”

학창시절 한 번쯤은 떠올렸을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 나선 학생들이 있다. 전국 8개 사립고 소속 학생들로 구성된 연합동아리 ‘모이자’는 28일 “학교 내 이동권과 교육기본권 보장을 위해 경사로,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엔 비장애학생 1203명과 서울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에 재학중인 장애학생 1명이 참여했다.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등 사회·교사 단체도 지지를 표명했다. 성명은 각 학교들이 위치한 지역 교육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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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 교육 기본권 보장을 위해 연합동아리 ‘모이자’를 결성한 포항제철고 학생들. 무의 제공


■‘모두의 학교’를 위한, 질문 한 가지

“왜, 이 학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나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위해 힘겹게 계단을 올라온 장애인 선생님의 질문에 현대청운고 3학년 최민기군은 “학교 내 이동권에 눈뜨게 됐다”고 했다. 최군이 다니던 현대청운고엔 엘리베이터가 없을 뿐더러 장애학생을 위한 특별전형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문제라고 생각했던 최군은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군처럼 ‘모두를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한 학생들이 곳곳에 있었다. “2년동안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가 이렇게 계단만 있는 줄은 몰랐어!” 체육대회 때 다리를 다쳐 ‘일시적 장애인’이 된 친구가 호소하는 불편함에 귀 기울인 포항제철고 학생들은 최군의 연락을 받고 ‘모이자(모두의 이동이 자유로운 학교를 위하여)’라는 새 연합동아리 이름을 제안했다. 이어 동참한 대구 경북예고와 전주 상산고, 경북 김천고, 부산외고, 광양제철고, 북일고 등 8개 학교의 학생들이 모여 지난달 22일 ‘모이자’가 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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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 교육 기본권 보장을 위해 연합동아리 ‘모이자’를 결성한 경북예술고 학생들. 무의 제공


■“사립고에선 왜 장애학생이 안 보일까요?…이동권이 없어서죠.”

학생들은 “자사고, 특목고를 비롯해 사립고교에서 장애학생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편의시설이 미비해 장애학생 입학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지금 학교에 다니는 장애인이 없더라도 이를 이유로 장애인이 교육을 받을 환경을 마련하는 것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성명에서 공개한 학교별 시설 현황을 보면, 성명에 참여한 8개 학교 중 7개 학교는 장애인등편의법상 5층 이상 건물에 설치돼야 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5개 학교는 별도의 장애학생 선발 전형이 없었고, 나머지 2개 학교는 전형은 있으나 특수학급이 설치돼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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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예술고의 건물 입구. 엘리베이터 없이 가파른 계단으로만 건물을 드나들 수 있다. 모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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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예술고의 건물 입구.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없이 가파른 계단으로만 건물을 드나들 수 있다. 모이자 제공


성명에 참여한 포항제철고 유은서양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어 다리 다친 학생이 이동수업을 못하고 보건실에 남았던 사례가 있었다”며 “편의시설은 장애학생뿐 아니라 비장애학생들이 일시적 장애를 갖게 됐을 때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설치 등 기본 편의시설 지원, 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준수, 장애학생 입학 전형 확대를 요구했다.

■‘교육 선택권’ 침해하는 이동권 부재…사립학교 내 편의시설 설치 ‘시급’

학교 내 편의시설과 특수학급 부재는 장애학생들의 ‘학교 선택권’도 침해한다. 지난해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전체 일반고 1616개교 중 장애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특수학급이 설치된 곳은 1113개로 이 중 91.8%가 국·공립고다. 서울의 경우 특수학급이 설치된 전체 95개교 중 11개교만 사립고이다. 교육청은 사립고에도 특수학급 설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핑계 등으로 특수학급 설치를 반대하는 사립고들이 허다하다.

▶관련기사: 공립고는 포화 상태인데…여전히 '잡음' 심한 사립고 특수학급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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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이 한영고를 비롯한 사립고 4곳과 공립고 1곳에 특수학급을 새로 설치하겠다고 밝히자, 서울 강동구의 한영고등학교는 특수학급 설치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교문에 걸었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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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장애학생의 경우 고교 진학시 거주지와 가까운 3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데, 고교로 갈수록 특수반 설치가 안 된 사립학교 비중이 높아져 선택권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특목고·자사고의 경우 전국에서 학생 선발이 가능한 자율형 고교 10개교 중 절반은 엘리베이터조차 설치돼있지 않다. 장애인 당사자로 성명에 참여한 서울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재학생 유지민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립학교에 지원하고 싶었으나 포기하고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며 “다수의 사립고등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장애 학생들이 학생의 기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교육 기본권을 위해 사립학교 내 선제적인 편의시설 설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사립학교일수록 장애학생 편의시설이나 지원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며 “입학한 후에 편의시설을 요구하면 예산 확보와 설치에 몇 년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학생 뿐 아니라 사고나 질병으로 일시적 장애를 겪는 비장애학생들 교육권을 위해서도 편의시설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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