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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로 번 1000억 인재 육성…최명재 민족사관고 설립자 별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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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5세…빈소 서울아산병원장례장, 28일 학교장

뉴스1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설립자가 26일 5시 20분에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1927년 전라북도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난 최 설립자는 1960년대에 직접 운수업(성진운수)을 일으키면서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낙농업에 뛰어들어 1987년 강원도 횡성에서 파스퇴르유업을 창립했다. 최 설립자는 파스퇴르가 업계에서 자리 잡자 비로소 오랜 숙원이던 학교 설립 추진해 1996년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38만 5000평 부지에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하는 민사고를 개교했다. 장례는 26일 서울아산병원에서 학교장으로 치러지고, 영결식은 28일 오전 9시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거행된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제공) 2022.6.26/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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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뉴스1) 이종재 기자 =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운 최명재 설립자가 26일 오전 5시20분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삶의 전반전은 기업인, 후반전은 교육인으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시대의 반항아이자 기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국민에게 차별화된 질 좋은 우유를 공급하겠다는 신념으로 기존 유가공업계와 치열하게 싸웠다. 또 고교평준화 흐름 속에서도 민족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영재 교육을 주창했다.

일제강점기 학교설립에 재산 대부분을 바친 부친처럼, 고인의 평생 꿈은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고인의 강한 염원과 거침없는 추진력이 국내 최고 명문고로 꼽히는 민사고를 탄생시켰다.

1927년 전북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난 최 설립자는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의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상업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은행원으로 7년을 일했다. 그러다 돌연 택시운전사로 전직했고, 2년 만에 택시 한 대를 직접 구입했다. 택시운전을 하며 번돈으로 1960년대 직접 운수업(성진운수)을 세우며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대 중반에는 우연한 기회로 이란에 진출했다. 운송업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고인은 물류운송 사업에 집중했고, 당시 유럽과 중동을 가로지르며 물류운송업을 번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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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설립자가 26일 5시 20분에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1927년 전라북도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난 최 설립자는 1960년대에 직접 운수업(성진운수)을 일으키면서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낙농업에 뛰어들어 1987년 강원도 횡성에서 파스퇴르유업을 창립했다. 최 설립자는 파스퇴르가 업계에서 자리 잡자 비로소 오랜 숙원이던 학교 설립 추진해 1996년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38만 5000평 부지에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하는 민사고를 개교했다. 장례는 26일 서울아산병원에서 학교장으로 치러지고, 영결식은 28일 오전 9시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거행된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제공) 2022.6.26/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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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에 돌아온 고인은 목장사업으로 또 한번 업종 변경을 감행, 1987년 횡성군에 파스퇴르 유업을 창립하며 낙농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파스퇴르유업은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 우유를 도입했고, 품질을 인정받고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군에 우유를 납품했다. 기존 유가공업체와 경쟁하며 ‘우유 전쟁’을 벌인 끝에 파스퇴르유업은 출시 1년 만에 매출이 10배 오르고, 우유업계 4위까지 성장하는 등 기업이 크게 성장했다.

파스퇴르유업이 업계에서 자리를 잡자 고인은 오랜 숙원이었던 학교설립 추진에 나섰다.

고인은 갖은 규제와 시행착오를 거쳐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38만5000평 부지에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하는 민사고를 지난 1996년 3월1일 개교했다.

민사고가 3월1일 개교한 이유는 ‘3·1운동 정신을 갖지 않으면 민족 지도자로 성장할 수 없다’는 고인의 ‘고집’ 때문이었다.

고인은 생전 1970년대 영국 이튼 학교에서 넬슨 제독의 전승기념일 행사를 보며 ‘이튼 학교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지도자 양성교육을 펼치고,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인재를 만들어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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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에 위치한 민족사관고등학교(자료사진)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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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생전 학생들에게 “조국과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고, 출세가 아니라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파스퇴르를 운영하면서 번 수익금 대부분을 민사고 설립과 운영에 쏟아부었고, 그 액수는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해 30여명만 선발해 기숙사를 포함한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개교했던 민사고는 파스퇴르의 부도로 재정난에 부딪혔다. 파스퇴르유업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따른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98년 1월에 부도를 냈다.

당시 교사들이 급여를 받지 않고 교육을 이어가고 학부모들이 자진해 기숙사비를 납부하는 등 어렵게 학교 운영을 이어갔으며, 현재는 입학 정원을 150여명으로 늘렸다.

민사고는 파스퇴르유업이나 국가의 재정지원 없이 당초 고인의 계획대로 양질의 교육을 지속하려다 보니 ‘귀족학교’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는 민사고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이었던 민족주체성 교육을 높이 평가했다.

고인은 민사고 설립 초기 자신이 직접 민사고 교장으로 취임해 교육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강연 때마다 “나는 장사꾼이다. 기왕 장사를 시작한 바에는 큰 장사를 하려고 한다”며 “창조적인 천재 한 명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학교를 만들고 영재를 교육해 장차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나로서는 수천, 수만배 이익을 얻는 셈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 민사고 정문에는 그가 지향하는 인물상인 충무공 이순신과 다산 정약용의 동상이 서 있다. 학교 진입로에는 미래 민사고 출신이 받을 ‘노벨상 좌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영재 육성을 목표로 한 민사고는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하버드대 13명, 예일대 20명 등 985명을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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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설립한 최명재(95) 이사장이 26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파스퇴르 유업을 창립해 기업인으로 성공 신화를 이룬 뒤 민족 지도자를 키우겠다며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민사고를 설립했다. 고교평준화 흐름 속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시대의 반항아이자 기인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이날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명재 이사장의 빈소. 2022.6.26/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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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 등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8일 오전 6시20분이다.

장지는 횡성군 안흥면 민사고가 자리한 덕고산 자락(우천면 오원리 일대)이며, 28일 오전 9시 민사고 체육관에서 학교장 영결식이 치러진다.
leej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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