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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난 안걸려" 고양이 불 태우고 배짱…VPN이 만든 온라인 '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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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온라인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 동물을 불로 태우고, 꼬리를 자르고, 철사로 묶는 등 잔혹하게 학대한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추적이 어려운 탓에 '동물학대 인증방'은 텔레그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동물판 N번방]③온라인 기술 뒤에 숨는 범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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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에는 고양이를 산 채로 불 태우는 영상이 올라왔다. /사진제공=동물권단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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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고양이를 포획용 틀에 가두고 불 붙이는 46초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영상은 복제돼 퍼졌다. 그러자 원작자는 영상 원본 파일에만 있는 '촬영 시간과 장소'를 올렸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그러다 (경찰에) 걸린다"고 했지만 원작자는 "안 걸릴 자신 있다"고 자신했다.

동물학대는 징역형도 가능한 범죄다. 국민신문고에 '그를 잡아달라'는 민원 수백건이 올라오자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2월부터 원작자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경찰은 원작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원작자가 VPN(가상사설망) 서비스를 썼기 때문이다. 누구든 인터넷에 들어가면 '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를 받는다. IP주소는 인터넷상 신분증 역할을 한다. 접속자의 위치 정보가 들어있다.

VPN은 이런 IP주소를 바꾸는 툴이다.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IP주소를 해외 IP주소로 바꾸는 게 가능해진다. 한 달에 1만원 남짓 이용료를 내면 쓸 수 있다.

동물학대범들은 VPN의 이러한 특성을 악용한다. 경찰은 영상이 올라온 사이트에 협조 공문을 보내 원작자의 IP주소를 받았다. VPN으로 바뀐 가짜 주소였다. 원작자의 진짜 주소는 VPN 업체에 있다. 하지만 해외 업체라서 경찰이 자료를 받기 어렵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다방면으로 원작자를 추적하고 있다"면서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 밝혔다.


VPN 뒤 숨으면 추적 어려워..."수사 전문성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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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물에 빠뜨리고 던진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 마포경찰서가 작성자를 추적했지만 작성자가 VPN을 쓴 탓에 특정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했다./사진제공=동물권단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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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학대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학대 사진, 영상을 퍼뜨리기만 해도 범죄다.

최근 학대범들은 고양이, 개 등을 학대한 후 사진, 영상을 인터넷 커뮤니티, 단체메신저방에 올린다. 범죄 증거를 스스로 남기는 셈이다.

하지만 학대범들이 경찰에 잡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난해 7월 인터넷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물에 빠뜨리고 던진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작성자를 잡지 못하고 한 달만에 수사를 종결했다. 지난 4월에도 한 누리꾼이 햄스터의 팔다리를 십자가에 묶고 괴롭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 글 작성자도 잡히지 않았다.

이 역시 VPN 때문이었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이 작성자의 진짜 IP 주소를 확보하지 못했다. 기원전 삼한시대 때 범죄자들이 숨어들었던 '소도'를 정보화 시대에선 VPN이 만들어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머니투데이가 만난 사이버범죄 수사관들은 VPN이 범죄자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한 수사관은 "VPN 업체들은 자칫 고객들을 잃을까 해 고객 IP 주소를 경찰에 제공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협조를 강요할 수도 없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전기통신사업자는 경찰의 자료 제공 요청에 협조할 의무가 있지만 거부한다고 처벌할 규정은 없다.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IP 주소를 알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마다 정보 보관기간이 다르다"며 "IP주소를 파기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VPN 업체는 영장을 통한 수사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동물 학대범을 잡기 위해 국제 공조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결국은 국제 공조가 핵심"이라며 "사이버 범죄 조약에 가입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사이버 수사 기법면에서 앞서 있다"며 "VPN 업체의 책임성에 관한 국제적인 룰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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