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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낙태 가능한가요?”… 美 낙태권 뒷걸음질에 ‘원정 낙태’ 문의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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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했던 과거 판결을 폐지한 24일(현지시간) 대법원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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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례를 폐기하기로 하면서 미국 내 다른 주는 물론 국경까지 넘는 ’원정 낙태’가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24일(현지시간) 낙태를 돕는 멕시코 시민단체 ‘네세시토 아보르타르‘(‘나는 낙태가 필요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에 미국 여성들의 소셜미디어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경 넘거나 낙태약 불법 수입

멕시코에선 최근 낙태 처벌이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전에도 수도 멕시코시티 등 일부 주에서 낙태가 허용돼 왔다.

멕시코에선 임신중절에 쓰이는 약물 중 하나인 미소프로스톨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600페소(약 3만9000원)면 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낙태가 엄격한 주에 거주하는 미국 여성들은 낙태하기 위해 멕시코까지 가기도 했다.

이번 미 대법원 판결로 낙태 금지 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멕시코 원정에 나서는 여성들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네세시토 아보르타르’는 지난 2월부터 매주 10명가량의 미국 여성들에게 낙태약을 제공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이 단체는 멕시코 북부 도시 몬테레이에 있는 주택에 여성들이 낙태약을 복용하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낙태약만 미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주에서 낙태 지원 단체를 운영하는 대학생 에이브릴(가명)은 국경에서 멕시코 낙태권 활동가들로부터 미소프로스톨을 건네받아 몰래 들여온다.

그는 멕시코 국경도시 레이노사에서 약을 잔뜩 받아서 비타민으로 위장하거나 신고하지 않은 채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멕시코 과나후아토주에 있는 낙태권 옹호 단체 ‘라스 리브레스’는 지난 2∼4월에만 기부받은 낙태약 소포 1000개를 미국에 보냈다.

미국 내에서도 원정 낙태 여력이 없는 이민자나 유색 인종 여성들을 주로 돕는다.

이 단체의 베로니카 크루스는 로이터에 “더 많은 미국 여성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 내 약 배포를 돕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낙태 찬반… 둘로 쪼개진 미국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날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1973년 1월 나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보는 임신 약 24주 이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례 파기에 따라 이제 낙태권 존폐 결정은 주 정부와 의회의 몫으로 넘어갔다.

이날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낙태가 점차 엄격해지는 추세였다. 미국 텍사스주가 지난해 사실상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데 이어 오클라호마,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잇따랐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 구트마허연구소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가 무효화할 경우 미국 50개 주 중에 절반 남짓인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대부분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우위에 있는 곳들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예정에 없던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주법으로 낙태가 불법이었던 1800년대로 돌아간 것이다.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는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의회가 연방 차원의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통일된 낙태 규정을 가지려면 연방 의회가 낙태권 보장을 위한 별도의 법을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간 시각차가 워탁 커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한 입법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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