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너를 비난해도 걱정 마 일어설 수 있어, 서로가 다를 수 있어도 모두 일어나 함께 춤추자.”
지난 9일 방송인 홍석천(51)이 부캐 ‘탑 지(TOP G)’로 발표한 신곡 ‘케이 탑 스타(K TOP STAR)’의 한 대목이다.
퀸와사비와 리아킴 등 MZ세대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콘들이 랩, 댄스를 도와줬다. 퀸와사비는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해 한 남자를 놓고 홍석천과 경쟁을 벌이는 역할을 맡았다. 홍석천 '케이 탑 스타' 뮤직비디오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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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용산구 뉴질랜드 대사관저에서 만난 홍석천은 “서른 살의 홍석천이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 중에 하나가 가수였다”며 “요즘은 노래 만드는 데 거대한 회사가 없어도 되니, 그냥 즐거운 작업을 해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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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탑 스타’ 아니고 ‘케이 탑 스타’로, “무겁지 않게”
뮤직비디오도 일부 장면을 뉴질랜드 대사관저에서 촬영했다. 필립 터너 대사와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도 홍석천과 함께 춤을 췄다. 홍석천은 "이렇게 많은 분량을 드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만들다보니 늘어났다"고 농담을 했다. 홍석천 '케이 탑 스타' 뮤직비디오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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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설명하는 여러 요소 중 성적 지향을 부캐 이름 ‘탑 지(’탑게이‘를 줄인 말)’로 내세웠고, 제목 ‘케이 탑 스타’에서도 ‘게이 탑 스타’가 연상된다. 해외에선 릴 나스엑스 등 빌보드 뮤지션도 개인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하지만 국내에선 그가 거의 처음이다.
“이왕 노래를 만드는 거 의미를 담자 싶어서 소수자 관련 이야기도 넣었다”면서도 “제목은 살짝 숨겨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폭을 넓혔고, 진지하지 않고 무겁지 않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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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와사비, 리아킴… 근데 남의 나라 대사관저에서 찍었다고?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의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는 한국 외교관 배우자 중 최초로 인정받은 '동성' 배우자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뒤 1년 넘게 '배우자' 지위가 아닌 채 지냈고, 뒤늦게 '배우자'로 인정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이런 일에 익숙해서 상처받진 않았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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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도 독특하다. 곡에서 랩을 맡아준 퀸와사비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댄서 리아킴이 “MZ와 꼰대가 함께 출 수 있는” 안무를 짜줬다. 화룡점정은 뉴질랜드 대사 부부가 직접 출연해, 홍석천과 함께 뉴질랜드 대사관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주한 대사가 직접 영상물에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다가, 해당 국가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올해 초 식사를 하며 처음 인사를 나눈 대사 부부에게 홍씨가 한달 뒤 뮤직비디오 출연 요청을 했고, 뉴질랜드 정부의 승인을 얻어 대사관저 촬영까지 허가를 받아냈다. 필립 터너(62) 대사는 “처음 제안을 듣고 ‘와 재밌겠는데? 싶었다”며 “이 비디오가 다양성, 관용, 평등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현대 뉴질랜드의 가치와도 맞기 때문에 흔쾌히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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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교관 동성배우자’… 입국 후 1년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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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 대사는 2018년 한국으로 발령받은 대사로, 동성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63)와 함께 입국했다. 외교관의 동성 배우자에 대한 국내 규정이 없어, 1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배우자‘ 지위를 얻었다. 국내 첫 ’동성‘ 외교관 배우자다. 이케다는 “어릴 때부터 이런 처우가 많아서 그걸로 크게 상심하진 않았다”고 말하며 “다른 나라도 외교관의 동성 배우자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대놓고 ’오지 마세요‘ 하진 않지만, 그런 나라에 가려면 배우자가 아니라 대사관 직원으로 간주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터너 대사는 “우리 사례 이후 다른 대사관에서도 동성 배우자를 인정받은 곳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며 “첫 동성 배우자라는 지위를 얻은 것만도 엄청 큰 성취고, 당당한 게이 커플 대사와 배우자로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게 돼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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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도 예전엔 동성애는 감옥행…지금은 결혼도 가능
이들은 1960년대,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에 뉴질랜드와 일본에서 각각 두려움에 떨며 자랐다. 터너 대사는 비교적 이른 20대 초반에 가족에게 커밍아웃했지만, 이케다는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가족에게 털어놨다. 터너 대사는 "동성애 행위는 불법이었고,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며 "내가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가족을 찾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겁에 질린 채 자랐다"고 회고했다. 그가 1986년 뉴질랜드 외무부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동성애 행위는 불법이었고, 1993년 새로 생긴 인권법(차별금지법)이 여성, 외국인, 소수종교, 장애인, 성소수자 등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면서 '불법'에서 벗어났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 만난 대사 부부는 이후 2005년 뉴질랜드에서 동성간 사실혼이 가능해지자마자 파트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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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의 한국, 1993년 뉴질랜드같아”
터너 대사는 “1993년의 차별금지법은 모든 소수자를 포함하는 법안이라 뉴질랜드에서는 큰 사회적 갈등 없이 합의에 도달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세부 조항에 대한 논의는 이후 추가로 진행된 것”이라고 돌이켰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놓고 벌어지는 찬반 논란을 염두에 둔 설명이다. 터너 대사는 “2022년의 한국은 1993년 차별금지법이 생기기 전의 뉴질랜드와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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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 나홀로 스피커… 욕 먹는건 지금도 아프다
홍석천은 2000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커밍아웃을 한 후 다양한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너 따위가 어디’ 하고 비난을 많이 듣는다. 20년간 숱하게 들은 비난이지만 아직도 덤덤해지진 않는다”면서 “조금만 잘못해도 욕을 100배로 먹는데, 제가 받는 비난들이 동료 아티스트한테 가지 않았으면 해서 부탁 같은 걸 잘 못한다”고 말했다.
커밍아웃 후 20년이 지났지만, 홍석천은 "10년쯤 지나면 차별금지법도 생기고, 동성결혼도 생기고 많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소수자 권리를 찾으려는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좀 버겁기도 하고,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혼자 짐을 지는게 굉장히 힘들구나, 생각한다"면서도 "근데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어린 소수자 친구들이 너무 감사해하는 말을 들을 때 '아 짐이 무겁지만 내려놓을 수가 없구나' 싶다"고 말했다.
홍석천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왜?'라는 의문이 해결돼야 속이 시원하다”며 “그래서 커밍아웃을 했을 수도 있어요. '왜 이렇게 핍박을 받지?' 싶어서”라고 했다. 터너 대사는 옆에서 “토니(홍석천)가 한국 사회에 새 길을 내고 있는 걸 응원한다”며 “그는 그냥 게이 맨이 아니라 성공한 엔터테이너고, 그게 지금 한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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