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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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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물가…외환위기 이후 최고 6%대 상승 우려에 공공요금 치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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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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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에 물가 급등이 겹친 현상) 우려에 불을 붙인 것은 6%대에 육박한 소비자물가다. 에너지·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자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4% 올라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당분간 고물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물가가 6%대를 돌파하면 외환위기 국면이었던 1998년 11월(6.8%) 이후 24년여 만에 최대 수준으로 치솟게 된다.

문제는 고물가에 무역적자가 심해지는데 미국발 빅스텝(0.5%포인트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글로벌 경기 둔화 위험까지 불붙으며 달러당 원화값이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교역에서 좀처럼 달러를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달러 몸값이 치솟자 원화값이 급락했고, 이로 인해 재차 수입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정부도 고물가의 심각성에 고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하락하니 선제적 조치를 통해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줄 방안을 찾아 달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다음달부터 공공요금 줄인상이 예고됐다는 점도 하반기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민수용(주택용·일반용) 가스요금 원료비 정산단가는 메가줄(MJ)당 1.23원에서 1.90원으로 오른다. 연초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가스공사가 가스를 팔고 못 받은 돈(미수금)이 6조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10월에는 전기요금도 덩달아 오른다. 지난해 말 한국전력이 올해 전기요금 기준 연료비를 4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 킬로와트시(kwh)당 4.9원씩 총 9.8원 인상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물가 상승에 실질 가계 구매력이 줄어 경기 주축인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는데 원재료와 전기요금 등 기업 생산비도 치솟으며 생산까지 타격을 입을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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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에서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해 거시금융부문 권위자인 박원암 전 홍익대 교수의 위기 예측 분석 모델을 기초로 두 개의 지표를 산출했다. 우선 △원화 기준 수입물가 △달러당 원화값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 △재고 출하지수 △코스피 등 9개 지표를 가중 합산한 위기경보지수를 산출했다. 또 매월 광공업 생산지수와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얼마나 올랐는지를 가중평균해 고물가, 경기침체 위기 정도를 가늠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지수를 개발했다.

위기경보지수 값을 작은 값에서 큰값 순으로 1~7단계 구간으로 나눈 후 구간별로 향후 12개월 이내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지수가 위기 수준을 돌파했던 비중을 분석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했다. 그 결과 위기경보지수가 6단계에 진입해 향후 12개월 안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이 88%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매경과 한경연은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2003년 1월 이후 월간 통계를 바탕으로 지표를 산출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2008년 5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의 특징이 나타났다. 이 기간 물가는 평균 4.8% 올랐고 광공업·제조업 생산은 평균 3.7% 하락하며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졌다. 이번 위기에도 이와 비슷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물가가 3%를 돌파해 본격적으로 오른 지난해 10월 이후 지난달까지 물가는 평균 4.0% 올랐다. 이 기간 광업·제조업 생산은 평균 5.3% 늘었지만 4월 들어 증가율이 3.3%로 떨어지는 등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개월 연속 하락해 경기침체 국면이 심해질 것으로 관측됐다. 이와 관련해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국내 경제 상황을 봤을 때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며 "우리 경제가 올해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물가 상승세가 강하긴 하지만 올해 성장률 전망치(2.7%)가 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생산 수준(2%)보다는 높기 때문에 침체 국면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은의 판단에 이견을 제기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성장률은 미국 등 주요국보다 이미 낮은 상황인데 물가마저 급등하고 있다"며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거나 하반기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공급 측 비용 상승이 유발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세계은행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1%에서 2.9%로 대폭 깎으면서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 대책으로 관세 인하 등 단기 대책 이외에 원화값, 금리 정책을 종합한 포괄 대책이 필요하다고 처방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단기 대책으로 물가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수출 진흥책에 총력을 기울여 무역수지 흑자를 쌓고 달러당 원화값을 안정시켜 수입물가를 잡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이 계속되리라는 기대인플레이션 심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단기적 물가 대응에 병행해 해외 자원 개발 지원, 핵심 원자재에 대한 수입처 다변화와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송광섭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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