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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단독] 삭발 이광재 직언 "이재명·전해철·홍영표 불출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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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에서 만난 이광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삭발을 한 모습이었다. 그는 까슬까슬해진 짧은 머리를 만지더니 “강원지사 선거에서 지고 다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깎았다”며 “민주당이 ‘네 탓’이라고만 해서는 살길이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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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강원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뒤 '내탓'이라는 이유로 머리를 삭발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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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의원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만연한 ‘네 탓이오’를 ‘내 탓이오’로 바꾸는 것이 분열로 가는 민주당의 첫 번째 개혁과제”라고 강조했다. 8월 전당대회가 친이재명(親明)계와 반이재명(反明)계의 정면대결로 치닫는 상황을 지적한 말이다.

그는 이재명 의원은 물론 반명계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전해철ㆍ홍영표 의원 등이 모두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고, 70~80년대생 신진 세력에 기회를 주는 것이 민주당의 분열을 막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Q : 대선ㆍ지선 연패 뒤에도 전대를 앞둔 계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A : “이재명 의원은 당의 좋은 자산이다. 다행히 인천 계양에서 일할 터전을 마련했으니, 일단 국회에서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는 게 먼저다. 지금 전대를 통해 친문(親文) 배격의 양상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출마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이 의원과 전 의원, 홍 의원이 모두 불출마하고 후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떨까 한다. 지금 민주당에는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단합, 둘째는 자기혁신, 셋째는 유능한 민생 평화 정당이 되는 것이다. 이 의원과 전 의원, 홍 의원의 불출마는 당 단합에 도움이 되고 쇄신과 세대교체라는 면에서도 좋은 시그널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공존의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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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종로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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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 의원이 대표를 거쳐 대선에 재도전한 ‘문재인 케이스’를 염두에 뒀다는 평가도 있다. 상임위도 문 전 대통령과 같은 국방위원회를 지망했다.

A : “사실 '문재인 케이스'는 리스크가 컸다. 야당 대표는 집중포화를 받는 자리다. 문 전 대통령도 결국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당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이낙연 전 대표에게도 이런 이유로 전대 불출마를 건의했지만 듣지 않았다. 특히 이 의원은 결코 인지도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던진 의문에 답해야 할 과제를 받은 상태다. 먼저 국민의 질문에 답하고 비전을 세우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낙선 후 왜 긴 외국 생활을 했겠는가. 대선 후보는 당 대표보다 권력을 나누어 주면서 힘을 키우는 게 지혜로운 길이다.”

Q : 86그룹 용퇴론도 나온다. 신진 세력이 중심에 설 방안이 있나.

A : “세 사람이 출마하지 않으면 충청권의 강훈식, 영남권의 전재수, 제주의 김한규 등 젊은 층의 공간이 열린다. 그럼 ‘이준석 대체효과’가 가능할 수도 있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도 소중한 자산이다.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키워 나가야 한다. 70~80년대 생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 주요당직을 맡길 수도 있을 거다. 86그룹은 이미 많이 써먹어 봤다. 이제 자기 변화가 있는 사람만 살아남고, 변화가 없다면 사라져야 한다. 다선 의원들도 한 지역구에서 3선 또는 4선 이상을 하지 못하게 하고 험지 등으로 지역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대신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으로 생환 가능성을 높여서 개혁에 동참하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유승민이 배신자가 돼 공천에서 탈락하고, 김부겸이 떨어지게 해선 안 된다. 큰 정치인을 만들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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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국회 정문 앞 담장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의 첫 출근을 축하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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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의원은 과도한 ‘팬덤 정치’에 대해선 “적을 더 많이 만들어 지지하는 정치인을 왜소화시키고 섬에 가두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노사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이제 잘하는지 견제하겠다’고 했던 건강한 세력이었다”며 “그러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문 전 대통령 때부터는 ‘무조건 지지’라는 흐름이 강해지며 타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게 민주당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다.

Q : ‘팬덤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A : “BTS의 팬들은 경쟁 가수를 인격적으로 욕하거나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경쟁자에 대해 선악의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의 팬덤은 열성 당원이나 유튜브 지지자를 말한다. 이들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들만 바라보는 정치는 반대한다. 정치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팬덤과 일반 국민의 인식차가 있다면, 이를 좁혀나가고 수렴해 나가는 게 정치력이다. 그래서 논쟁적 이슈에 대해선 신속하게 500만, 1000만이 참여하는 여론조사 시스템 등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실 탈원전과 검수완박은 진영논리로 끌고 갈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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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원을 비판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인천 부평구 지역구 사무실에 이 의원의 지지자들인 일명 '개딸(개혁의딸)'들이 ″치매가 아닌지 걱정″이라며 비난성 대자보를 붙인 모습.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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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검수완박에 대한 비판에도, 팬덤을 내세운 강경파들은 오히려 개혁이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A : “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해야 한다. 지금은 2004년 ‘탄돌이 시절’과 비슷한 상황인데, 당시 결론은 2008년 민주당의 몰락이었다. 국민도 검찰개혁을 원했지만, 더 강한 요구는 절대 일방적으로 하지 말라는 거였다. 개혁도 정치의 본질인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위에 대해 유능함을 보일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지만, 삶의 질은 30위권인 상황에서 민주당이 도대체 뭘 했는지,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햇볕정책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Q : 선거를 통해 국민이 민주당에 던진 과제가 무엇인가.

A : “국민은 촛불을 거쳐 절대적 지지율과 거대 의석을 줬다. 그런데 5년 만에 적폐청산의 선봉장이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이 됐다. 민주당 대표였던 김한길ㆍ안철수는 인수위원장 등을 했다. 26번 부동산 정책을 바꾸고도 사과는 없었고, 오로지 ‘나만 옳다’는 선악의 프레임으로 국민을 가르치려고 했다. 당도 ‘20년 집권론’에 취해 서울ㆍ부산시장 공천 등에서 무원칙으로 일관했다. 86그룹도 ‘도대체 어떤 후배를 키웠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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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강원지사 선거 운동 기간이던 5월 26일 오전 강원 고성 아야진에서 어업을 돕고 있다. 이광재 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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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의원은 2019년 말 사면된 뒤 2020년 총선 때원주 갑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9년 만에 정계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번 강원지사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2년 만에 다시 야인(野人)이 됐다. 선거에 출마한 이유를 묻자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작은 동상을 가리키며 “노 전 대통령이 여기 있잖아요”라며 웃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우(右)광재ㆍ좌(左)희정’으로 불린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다. 그의 책상엔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의 동상과 노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벼루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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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의원 종로 자택 서재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 캐리커처 피규어.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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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결국 강원지사 선거에서 낙선했고, 사퇴한 원주 갑 보궐선거도 패했다.

A : “만류했던 선거였다. 원내대표 등 꽃길을 마다하고 왜 그 길을 가냐는 반대가 많았다. 명분과 실리를 놓고 고민했지만,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했던 자가 이 정도 용기를 못 가지고서 어떻게 ‘노무현의 정치’를 말할 수 있겠냐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낙선이 꼭 죽는 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 운명 자체가 있는 길을 따라간 삶이 아니었다. 내 에너지가 있다면 언젠가 또 쓰임을 있을 거라 믿는다.”

Q : 패배한 선거에서 느낀 점이 있었을 것 같다.

A : “여의도 기득권 생활 때 몰랐던 국민들의 삶과 고민을 머리가 아닌 내 몸에 체화했다는 데서 내내 행복한 선거였다. 내가 여태까지 책상머리에 불과한 ‘싱크탱크(Think Tank)’였다는 많은 반성을 했다. 정말 삶에 와닿는 문제에 천착한 ‘솔루션 탱크(Solution Tank)’가 돼야 한다는 걸 배웠다. 청년과 노년층에 ‘돈을 줄게’라는 공급자 중심의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요구는 ‘억울한 내 말을 좀 들어달라’는 거다.”

Q : 2년 뒤 총선과 5년 뒤 대선에 도전할 생각인가.

A : “머리를 깎았다. 머리를 깎았으니 자랄 때까지 깊이 생각하겠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 잊히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국가의 비전을 세우는 일, 미ㆍ중ㆍ일ㆍ러에 쌓아온 외교 인맥을 이용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후배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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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종로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뒤 삭발한 머리를 만지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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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치려 하자 “한마디만 더 하자”며 정치교체의 필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그는 “세상을 변하게 하고 싶으면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민주당이 ‘나요. 나!’, ‘내 탓입니다!’, ‘함께 바꿔봅시다’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에서의 싸움은 필연이지만, 젊은 그룹에 전면을 내주고 막후에서 협상과 타협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담론과 사람, 제도에서 확실한 정치교체를 이뤄야만 2년 뒤를 기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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