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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단독] '루나' 권도형, 초기 사업에 나랏돈 7억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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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파이' 권도형, 공동대표의 아빠 회사 추천으로 국가 사업 선정돼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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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사흘 만에 50조 원이 증발된 루나·테라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의 장본인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달 28일 '루나2.0'을 출시하며 스스로 논란 속에 다시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니 권 대표의 멘탈이 궁금해집니다. 가상화폐를 허상 화폐로 만들어놓고도 부활을 꿈꾸는 그는 폭망한 투자자들의 구세주가 될까요, 아니면 사기꾼이 될까요. 지금부터 전해드릴 이야기는 권 대표에 대한 일종의 추적기입니다.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전체 퍼즐 중의 몇 조각 정도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스탠포드대학 출신의 젊고 유망한 벤처 사업가의 탄생을 알리는 기사는 2017년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권 대표는 '애니파이'라는 기술 개발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이 기술은 와이파이에 연결된 개인 모바일에 '애니파이 앱'을 깔면 모바일 간 연결을 통해 와이파이 범위가 확대되는 거랍니다. '애니파이' 법인 설립 시기는 2015년 9월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권 대표가 '애니파이' 대표로 있을 당시 진행한 모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권 대표는 '애니파이'가 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에 선정된 배경을 「스탠포드대학 선배인 인포뱅크 박태형 대표에게 사업 관련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인포뱅크의 투자를 받았고, TIPS에 지원하게 됐다」, 「스탠포드대학 친구인 장기석 공동대표와 함께 기술자를 모아 애니파이를 창업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TIPS는 뭘까요? 기업형 메시징 기술을 갖고 있는 코스닥 상장사 인포뱅크는 어떤 근거로 권 대표에게 투자를 했을까요? 장 대표는 '애니파이'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관련 기사를 보면서 궁금증이 차고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TIPS는 중소기업벤처부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입니다. 국가가 유망 벤처를 제때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민간이 번득이는 감각으로 그 일을 대신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발굴은 액셀러레이터라고 불리는 탄탄한 IT 관련 업체들이 맡습니다.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을 발굴해 추천하면 한국엔젤협회가 심사를 거쳐 명단을 추리고, 중기부는 이변이 없는 한 그 명단에 오른 스타트업을 TIPS에 선정합니다. 인포뱅크는 당시 액셀러레이터 중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TIPS 선정 과정은 스타트업계의 권위 있는 오디션인 셈입니다. 뽑히면 지원금도 받고, 유명 기업들의 러브콜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죠.

권도형 대표의 '애니파이'는 2016년 4월 TIPS에 선정됐습니다. 법인 설립 7개월 만에 국가 R&D 예산 5억 원, 창업 지원금 1억 원 등 모두 7억 원의 나랏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권 대표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공동대표 장기석 씨의 이력입니다. 장기석 씨는 인포뱅크의 공동대표인 장준호 씨의 아들입니다. 인포뱅크 공시에 따르면 2012년까지 장기석 씨는 인포뱅크의 주식을 12만여 주 갖고 있는 대주주였습니다. 박태형 대표의 부인과 자식들은 '처', '자', '녀' 등 구체적 가족관계로 기재된 것과 달리 장기석 씨는 장준호 대표의 '친인척'으로 공시돼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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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뱅크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현황(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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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권 대표와 장기석 씨가 공동 창업한 '애니파이'는 설립 7개월 만에 TIPS에 선정됐는데, 그 사이 인포뱅크가 '애니파이'에 투자를 했고, 엔젤협회에 TIPS 후보군으로 추천까지 한 겁니다. 뭔가 좀 갸우뚱하다는 생각은 저만 하는 걸까요? 여기에 '친구 찬스', '친구 아빠 찬스'는 하나도 없었을까요?

하여 인포뱅크에 물었습니다. 당시 '애니파이'의 어떤 부분을 유망하다고 보고 발굴해서 엔젤협회에 추천하게 됐는지, 인포뱅크가 '애니파이'에 공식적으로 투자한 금액이 얼마인지, 아들 회사를 국가 예산 수령 사업에 추천하면서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등을 말이죠. 하지만 인포뱅크 측은 일주일째 묵묵부답입니다.

권 대표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그의 시작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것 아니었을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청년 2명이 팀으로 출전했는데 심사위원이 그 중 1명의 아버지였다면, 심지어 팀원 중 1명이 심사위원의 보조로 있었다면 해당 팀의 합격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와 별개로, 잘 만들어진 제도 역시 끊임없이 보완할 부분이 있다는 점 지적하고 싶습니다. TIPS는 설명한 바와 같이 인포뱅크 같은 액셀러레이터들이 스타트업 선정에 막대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권한이 클수록 감시 또한 촘촘해야 합니다. 나랏돈이 들어가는 곳은 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하고요. 하지만 액셀러레이터가 특수관계에 있는 스타트업을 추천해도 현재로선 아무런 제약이 없는 실정입니다. 중기부는 이에 대해 "앞으로 TIPS 신청 서류에 '부친 회사', '자식이, 친척이 만든 회사' 등 특수관계를 설명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특수관계인을 추천하면 그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이번에 찾아낸 조각들이 권 대표의 모든 걸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그가 젊은 나이에 '벤처 신화'를 이룩했다는 평가부터 다시 한번 천천히 톺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조기호 기자(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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