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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객 돈은 내 돈’… 횡령 만연한 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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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새마을금고 직원이었던 최모씨는 2009년 3월 본인이 관리하던 지점 여유 자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최씨가 일하던 지점은 예비 자금을 기업은행에 예치했다. 최씨는 입금 전표를 조작해 3년 동안 은행에 넣었어야 할 돈을 본인 계좌로 빼돌렸다. 이렇게 돈을 빼낸 횟수가 108차례, 빼낸 금액은 12억7500만원에 달했다.
최씨는 빼돌린 돈 13억여원에 고객 명의를 도용해 불법으로 대출받은 5억원을 합쳐 18억원에 가까운 돈을 사치품을 사거나 유흥을 즐기는 데 썼다. 목동 새마을금고 지점 상급자들은 기본 서류조차 검토하지 않고 최씨 말만 믿었다. 기업은행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보내오는 예금 잔액 증명서도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최씨는 백화점 두 곳에서 VIP 고객이었다. 그는 매주 백화점 명품관을 돌면서 수백만원대 가방과 손목시계, 옷을 사들였다. 최씨는 고가의 수입차 BMW 뉴5시리즈를 남편에게 선물하고, 본인은 4000만원짜리 미니쿠퍼S를 탔다. 그는 남편 혹은 친구들과 괌·말레이시아·일본으로 일곱 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씀씀이가 크다 보니 횡령한 돈으로도 모자라 최씨는 6억원에 달하는 빚까지 졌다.
새마을금고 중앙회가 매년 감사를 나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최씨가 저지른 범행은 3년이 지난 2012년 말에야 전모가 밝혀졌다.


서울 광진구 새마을금고에서 지점장이었던 김모씨는 2009년 고객 예금 87억원을 빼돌려 잠적했다. 김씨는 본인이 관리하던 고객 9명에게 “나를 거쳐 예금하면 연 수익률 12%를 보장하는 정기예금 우대상품에 가입하게 해주겠다”고 꼬드긴 뒤, 이들 고객에게 넘겨받은 예금을 사적으로 관리했다.
피해 고객들이 예금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통장을 발급해달라고 요청하면 “정식 통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높은 이자를 주기 어렵다”고 속였다. 이렇게 긁어모은 자금은 총 87억원에 달했다.
김씨는 이렇게 횡령한 예금액 가운데 40억원은 스포츠토토 같은 복권을 사는 데 썼다. 10억원은 유흥비로, 2억원은 주식 투자에 탕진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40억원어치 복권을 사서 당첨된 액수는 1억원에 그쳤다. 새마을금고는 김씨가 날린 나머지 금액을 몽땅 예금자 보호 준비금으로 메웠다.


2020년 청주 새마을금고에서 일하던 A씨는 10년 동안 10억원이 넘는 고객 돈을 빼돌리다 법정 구속됐다.
A씨는 2010년 4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약 10년간 자신이 일한 청주 새마을금고에서 고객 정기예탁금을 중도 해지하는 수법 등으로 10억6000만원을 가로챘다.
이 직원은 범행을 은폐하려고 전자기록을 허위로 조작했다. 예금이 해지된 것을 모르는 고객이 ‘만기가 찬 예금을 다시 굴려달라’고 요청하면 새 계좌를 만들어 돈이 입금된 것처럼 속였다. 지점 전자기록까지 조작할 만큼 대범한 범행을 10년째 저질렀지만, 지점과 중앙회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김씨가 저지른 범죄는 새마을금고 한 고객이 ‘거래 내역이 이상하다’고 상담을 한 후에야 행적이 겨우 드러났다.


대표적인 서민밀착형 금융기관 새마을금고에서 매년 비슷한 횡령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해마다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 규모 횡령이 반복되는 데도 새마을금고중앙회와 관리당국인 행정안전부는 십년이 넘도록 ‘앞으로 비리를 척결하고, 감사를 강화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그 사이 금융소비자가 새마을금고에 맡긴 돈을 마치 본인 돈처럼 빼다 쓰는 임원진과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갈수록 심해졌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최근 50대 새마을금고 직원 B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30년 넘게 한 지점에서 근무한 B씨는 2005년부터 2021년까지 고객이 맡겨둔 예금이나 보험상품을 본인 마음대로 해지해서 40억원을 빼돌렸다. 만기가 찾아온 고객이 돈을 찾아가겠다고 하면 다른 고객이 새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 맡기는 예치금으로 돌려막았다.

이번에 새마을금고에서 벌어진 40억원대 횡령 사고는 2020년 청주 새마을금고 횡령사고의 ‘확장판’이다. 10년이던 기간이 16년으로 늘었고, 금액도 10억6000만원에서 4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불었다. 새마을금고 차원에서 횡령을 잡아내지 못한 것도 판박이다. 2020년 청주 횡령사고는 고객이 신고한 뒤에야 전모가 밝혀졌다. 이번 송파 횡령사고에서는 횡령한 직원 본인이 자수하기 전까지 새마을금고는 횡령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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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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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는 전국에 본점 1300개, 지점 3218개를 운영할 정도로 촘촘하게 퍼진 서민 금융기관이다. 신한은행이나 KB국민은행 같은 1금융권 주요 은행도 전국에 800~900여개 점포만 운영한다.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서민들과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투자)’ 행렬이 이어진 덕에 올해 2월 기준 자산이 250조원을 넘겼다. KDB산업은행에 준하고, 농협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렇게 덩치는 커졌지만, 새마을금고에서는 최근 10년간 다른 금융기관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상천외하고 후진적인 횡령 사례가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 외에도 수십억원대 굵직한 횡령 사건이 수두룩하다.

2013년에는 SM새마을금고 밀양 하남 업무총괄부장이 잔액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공금 94억원을 횡령했다. 이 부장은 횡령한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2014년 12월에도 충북 새마을금고 박모 부장이 4년 동안 회원명의로 한도거래대출을 부당하게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13억 6000만원을 횡령했다.

행정안전부 자료를 종합하면 2013년과 2014년 새마을금고 직원이 일으킨 금융사고는 각 9건, 10건에 그쳤다. 그러나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새마을금고 비리 사고는 2015년 13건, 2016년 12건, 2017년 16건에서 2018년 25건, 2019년 21건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농협이나 수협, 우체국과 같이 특수금융기관에 해당한다. 다만 농협이나 수협이 금융당국에 해당하는 금융위원회 감독을 받는 것과 달리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 관할이다.

올해 2월 행정안전부는 새마을금고 건전성과 윤리의식이 꾸준히 도마에 오르자 ‘새마을금고 감독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2년마다 행정안전부가 금융감독원·새마을금고중앙회와 함께 하는 종합감사를 1년마다 하고, 재정건전성 외에 비위·비리 혐의도 세세하게 살펴보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서울 중심부 새마을금고에서 거대 횡령사고가 발생하면서 행정안전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 모두 체면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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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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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경영 공시는 1년에 두 번뿐이다. 일반 금융소비자들은 행정안전부 사이트에서 새마을금고 감사 관련 문서를 확인해야 문제가 된 사항을 알 수 있다. 신협과 농·수·산림조합이 금융감독원에 매월 업무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과 달리 새마을금고는 업무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도 없다.

새마을금고는 중앙회가 지역 단위 금고들을 지휘하지만,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 금고를 총괄하는 이사장이 직접 경영을 하는 독립채산제다. 각 단위 금고 이사장은 한 번 선출이 되면 장기간 자리를 지키며 지역 토착세력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이 탓에 중앙회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강도 높게 규제를 하기도 어렵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새마을금고에서 수십 년째 같은 형태로 횡령 사고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새마을금고가 금융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주무 감독기관이 행정안전부라 금융당국 차원에서는 이들을 관리·감독할 법적인 근거가 마땅치 않다”며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나 금융 전문인력이 (새마을금고)관리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금융권에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3월 재취임하면서 ‘ESG경영을 통해 존경받는 새마을금고 비전을 달성하고, 백년대계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약속했던 박차훈 중앙회장 리더십에도 금이 갔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중앙회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선거 당시 박 회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는 2017년 9월 일부 지역 대의원 등에게 495만원 상당의 국내산 송이버섯 30박스, 270만원 상당 과일 선물세트를 돌리고 새마을금고가 보유한 골프 회원권으로 488만원어치 ‘무상 골프’를 치게 하는 등 1546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박 회장 혐의에 대해 ‘액수가 크고 죄가 중하다’며 새마을금고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광주지법은 지난 1월 박 회장이 금품을 살포한 혐의를 인정해 1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현재 박 회장은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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