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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분노, 규제 요구, 입법 좌절, 망각…반복되는 미국 총기 난사 사건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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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텍사스주 출신인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오른쪽)이 25일(현지시간) 유밸디에서 열린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루벤 놀라스코 유밸디 카운티 보안관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유밸디|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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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18세 남성의 무차별 총격에 사망한 사건의 파장이 이어졌다. 범행 전후 상황과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애도와 충격, 분노가 넘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대책에 관해선 민주당과 공화당이 반대의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당은 총기 규제 강화를 외쳤지만, 공화당은 총기 소유 규제는 대책이 아니라고 맞섰다. 이번에도 결국 총기 규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은 잊혀지는 기존 패턴이 반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총격범인 살바도르 라모스(18)는 소셜미디어 앱을 통해 2주 전 알게 된 독일의 15세 소녀에게 범행을 미리 예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CNN방송 등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모스는 범행 당일 이 소녀에게 할머니와 다퉜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얼마 되지 않아 “방금 할머니에게 총을 쐈다”는 메시지와 “지금 당장 초등학교에 총을 쏘러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각각 보냈다는 것이다. 라모스는 앞서 총알을 구입했을 때도 자랑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라모스는 사건 당일 할머니의 얼굴을 겨냥해 총을 쐈고, 목숨을 건진 할머니는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라모스는 집을 뛰쳐나와 초등학교로 향했다. 그는 AR-15 돌격용 소총을 들고 방탄조끼를 입은 채 학교 뒷문으로 들어가 4학년 한 교실 문을 걸어 잠그고 소총을 난사했다. 이 때문에 모든 희생자가 이 교실에서 나왔다고 텍사스주 당국은 설명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라모스가 정신건강 문제나 범죄 전력이 없는 고등학교 중퇴자였다고 밝혔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인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10주기를 6개월 앞두고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자 미국 사회는 경악했다. 특히 불과 열흘 전에 뉴욕주 버펄로에서 흑인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힌 18세 청년이 흑인 밀집 거주지역 슈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해 10명을 사살한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상식적인 총기 규제가 모든 비극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총기 규제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백인 경찰관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2주기를 맞아 백악관에서 경찰 개혁 관련 행정명령 서명식을 하면서 “총기 규제가 수정헌법 2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는 “18세가 상점에 들어가 전쟁용으로 설계되고 살상용으로 판매되는 무기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일어난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도대체 언제 할지에 대해 우리는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연방 하원은 지난해 민주당 주도로 규제 사각지대인 사인간 총기 거래와 인터넷을 통한 총기 거래를 새롭게 규제하는 법안과 총기 구매 희망자의 신원조회 기간을 늘림으로써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법안을 각각 통과시켰지다. 하지만 두 법안은 현재 공화당의 반대 때문에 상원에서 잠자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전염병처럼 퍼지는 총기 폭력을 막기 위한 입법에 협조할 공화당 동료가 10명이 없다는 것은 미국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의원 10명만 동참해주면 이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그의 촉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대책에 관해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텍사스 출신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총기 규제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대책이 되지 못한다면서 무장한 경찰관을 학교에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이 펼치는 ‘교사무장론’을 되풀이한 것이다. 공화당 서열 1위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총격범을 비난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지만 총기 규제 법안을 상원 표결에 부치는 문제에 관한 미국 언론의 질의엔 침묵하고 있다. 소나기만 피하자는 심산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건 현장인 유밸디로부터 약 483㎞ 떨어진 휴스턴에서 27일 열리는 전미총기협회(NRA) 연례행사에서 예정대로 연설을 하겠다고 밝혔다. NRA는 막강한 자금과 로비력을 바탕으로 모든 총기 규제 법안의 입법을 봉쇄하고, 기존 총기 규제 법안들을 철폐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8월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에서 하루 간격으로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여론에 떠밀려 총기 규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웨인 라피에르 NRA 회장을 만난 뒤 없던 일이 됐다. 크루즈 상원의원과 애벗 주지사 등도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희생자들의 장례가 진행되기 전인데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도 총기 규제 입법은 물건너 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대형 총격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유사한 패턴이 있다”면서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 의회는 총기 규제 입법에 초점을 맞추지만 공화당은 대부분의 신규 총기 규제를 지지하지 않고 민주당은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이 비등했을 때 총기 규제 입법 시도가 강력해지지만 공화당의 완고한 버티기에 가로막혀 시간이 흐르고 사회적 관심이 다른 데로 옮아가면 입법이 흐지부지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총기 사고는 오히려 총기 규제 법안 도입 전에 미리 총기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총기 수요를 늘리고 총기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총기 사고 다음날 미국 총기회사 스미스&웨슨과 총기 업체 레밍턴을 소유한 비스카 아웃도어의 주가는 총격 사건 다음날인 25일 각각 7% 정도 상승했다. 또 다른 총기 제조사 스텀 루거의 주가는 4% 이상 올랐다. 드루 스티벤슨 사우스텍사스 칼리지 법학 교수는 “총기 산업은 비뚤어진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며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매출과 주식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총격 사건 희생자들은 계속 늘어난다. 총기 규제 운동 단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에 발생한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올해 들어 27번째 학교 내 총기 사건이었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 4명 이상이 숨지는 대량 총격 사건이 벌써 200건 이상 발생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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