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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화날 상황 맞나요?" 내 감정을 익명 게시판에 물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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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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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고 있는 20대 직장인입니다. 화가 났을 때 이게 화를 낼 상황이 맞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상대가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반대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한 것 같을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 꼭 물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친구의 카톡 답장에 기분이 상하면 익명 게시판에 "이런 카톡을 받으면 기분 상할것 같나요?"라고 물어보고 '기분이 나쁠 만하다'는 댓글이 달리면 그제서야 화를 냅니다. 만일 '너무 예민하다', '화낼 일이 아니다'라는 댓글이 달리면 자괴감에 시달립니다. 난 왜 남들이 기분 나빠 하지 않는 것에 기분 나빠 할까, 난 어딘가 망가진 게 틀림없어, 하며 끊임없이 자책에 빠져요.

얼마 전에는 직장 동료의 업무인데 마치 제 업무인 양 답변을 대신한 일이 있었어요. 그 후 걱정이 되어서 혹시 이게 잘못된 일이냐고 글을 올렸더니 '큰 잘못'이라는 답변을 받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싫어하겠지, 난 이걸 왜 물어봐서야 아는 거야, 하고 스스로를 자책했어요. 회사에 가기가 무서워 사고가 나길 바랄 정도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요. 지금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어렸을 때 첫 기억이 부모님이 싸우던 기억일 정도로 정말 자주 싸우셨고, 저에게도 화를 자주 내셨어요. 부모님이 서로 싸우실 때는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요. 덜덜 떨며 싸움이 멈출 때까지 방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곤 했어요.

어머니는 학업 성적이나 학교 생활에 간섭이 심하셨어요. 수학 문제를 틀리면 새벽에 깨워 다시 풀게 하셨습니다. 제가 반장처럼 인기 많은 학생들이 하는 업무는 겁나서 맡고 싶지 않다고 하자, 분에 못이겨 저에게 윽박지르기도 하셨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저에게 악을 쓰기에 창피해서 그러지 말라고 하니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너무 미웠지만 그래도 비위를 맞췄습니다. 안 그러면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니까요. 그러다 대학생 때 2년 동안 집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상품권이 사라졌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셨는데, 예전 같으면 화가 수그러들 때까지 조용히 참고 있었겠지만 그날 따라 무슨 용기였는지 '가족들 중 아무도 훔치지 않았다', '본인이 보관을 잘못해 놓고 우리에게 화내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릇이 제 머리로 날아왔습니다. 어머니도 제 편은 아니었어요. 괜히 분란만 일으켰다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그날 이후 집을 나와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더 이상 휴학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았지만, 취업을 하고 경제적으로 능력이 생긴 지금 다시 연락을 끊었어요.

그나마 어떤 일에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는 건 괜찮아요. 그냥 화를 안 내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기는 너무 싫어요. 상대방 기분도 기분이지만, 제가 너무 죄책감이 듭니다. 행동 하나하나를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떻게 하면 사람 대 사람으로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요?

표지아(가명·29·회사원)
한국일보

지아씨, 우리는 살면서 화, 짜증,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시시각각 마주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런 감정을 표현할 때 보통 '그러니까 내가 당연히 기분이 나쁘지', '그러니까 내가 당연히 화가 났지'와 같은 말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지아씨 사전에는 '당연히'라는 게 없어요. 자기 감정은 말 그대로 '자기 것'인데, 지아씨는 이조차 다른 사람의 잣대와 평가와 기준에 따라 결정하고 있어요.

당신은 자기 감정에 대한 확신이 상당히 부족해 보여요.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요. 틀린 마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영역이 아니에요. 물론 감정도 상식에 기초해 표현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내 입장(기준)에서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어요. 상대방이 느낀 감정은 상대방이 처리해야 할 몫인 겁니다. 이건 내 감정'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감정은 상식의 선에서 참기도 하고 거르기도 해야 하지요. 그런데 당신은 자기 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게 한 것 같을 때나 내가 화가 났을 때 그 이유가 타당한지를 먼저 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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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향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당신은 자라면서 자기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경험을 많이 못했어요. 특히 아버지는 본래 삶의 태도와 방식에서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상품권을 누가 가져갔냐?'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정말 가족이 훔쳐갔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고, 언제나 자기의 말이 옳고 이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면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존중보다는 '너 그거 맞아?'라거나 '네가 책임질 거야?' 혹은 '네가 뭘 알아'와 같은 말들이 일상적이었다면 아이들은 자라면서 마음이 힘들었겠지요. 당신이 2년간 집을 나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아버지로부터 가족을 의심하는 얘기를 들은 거잖아요. 그런 비슷한 일이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고 자식에게조차 깊은 불신을 보이는 아버지를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유독 그날 참지 못하고 감정이 폭발한 것이지요. 화가 나서 아버지와 싸웠을 때도, 어머니를 포함해 아무도 당신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네가 화날 만하다', '아유, 힘들 만하지'와 같은 정서적 공감과 동의를 경험하지 못했지요.

자녀가 사춘기, 청소년기일 때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는 건 자녀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합니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시험을 못 봐서 야단을 쳤을 때, 아이가 '시험을 어떻게 매번 잘 보겠어요?'라고 대꾸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가 공부를 안 한 것도 있지만 아이 말도 맞긴 맞거든요. 그런데 많은 부모가 '너 그거 말이라고 해? 네가 공부를 안했으니까 그렇지, ○○이는 왜 늘 1등을 하는 건데'라고 쏘아붙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감정을 인정해 주고 잘 받아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기 신뢰, 자기 확신을 갖기 어려워요. 어른들은 아이의 밥을 굶긴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안해하지만, 말을 함부로 해서 감정적 상처를 준 데 대해서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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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특히 '화'라는 감정에 대해서 잘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마음도, 감정도 배우는 것이고 대부분 주 양육자로부터 학습하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부모님이 시도때도 없이 부적절하게 화를 많이 내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화에 대해 반사적으로 부정적일 거예요. 부모님이 나에게 화를 낼 때 기분이 무척 나빴으니 화를 내는 건 곧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화내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적절하게, 적당하게 화를 내는 건 필요하지요. 화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은 이런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웠을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상황에서 당연히 느끼는 화마저도 다루지 못하니까 그럴 때 대체로 화를 억누르고 마음 안에 가뒀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우울함을 느낄 때가 많았겠지요.

감정을 잘 배우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알바를 하는데 사장님이 오늘 짜증을 계속 낸다고 합시다. 그러면 알바생 중에 '오늘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고 투덜거리는 데서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늘 매출이 엄청 낮아서 그런가 괜히 짜증이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사장님이 알바생에게 화를 낸 것은 잘못이지만 후자는 그래도 사장님의 감정적인 입장을 이해하는 거지요. 또 그만큼 사장님의 감정, 짜증에 타격을 덜 받게 되지요.

저는 당신에게 '감정 일지'를 써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사람의 마음을 스스로 배워 나가 보라는 의미에서요.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났다면 그 상황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그때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적어보고, 그 감정을 점수로 매겨 보세요. 화가 난 정도를 0~10으로 나눌 때, 오늘 A가 나한테 이렇게 해서 6만큼 화가 났다고 적는 식이죠. 계속 그렇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 보면, 한 발짝 떨어져 자기 감정을 보게 되고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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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의 상담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당신이 온라인에 물어보고, 칼럼도 신청하는 건 자기 감정에 대해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거든요. 나와 내 상황을 잘 모르는 타인에게 물어봤자 결국 타인은 그의 감정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게 지아씨의 감정이 될 수는 없어요.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책임감 있게 당신의 상황과 마음,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과 의논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또 부모님을 한 인간으로서 이해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지아씨 자신을 위해서요. 부모님의 이런 미성숙한 면에 내가 이런 상처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원망스러웠던 마음이 좀 풀리고 누그러지기도 하거든요. 물론 어느 순간은 불쑥 미운 마음도 들 거예요.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지아씨,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은 사람의 감정을 잘 배워서 알고, 표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인간관계의 미묘함이란 게 말이나 행동, 제스처에 녹아 있는 감정과 의도거든요. 언제까지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의견을 내 감정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어요. 시간이 걸려도 차근차근 감정을 배워 나가세요. 나의 감정, 나아가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안하게 사람들과 지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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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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