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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로 칸 찾은 이정재 “선동으로 인한 갈등 옳지 않아…우린 다르게 살 수 있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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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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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가 감독으로 거듭났다. 그가 시나리오 각색부터 시작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 <헌트>가 19일(현지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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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연출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스파이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한재림 감독의 소개로 <남산>이라는 이름의 시나리오 초고를 접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은교>와 <유열의 음악앨범> 등을 만든 정지우 감독, <연애의 목적>, <관상> 등을 찍은 한재림 감독이 잇달아 하차하면서 시나리오를 직접 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오래 몸 담았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건 처음이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종일 앉아있기도, 몇 번씩 원고를 날려 먹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 <헌트>를 만들었다. 감독으로 거듭난 배우 이정재 이야기다.

2010년 영화 <하녀>에 출연한 배우로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던 이정재가 이번에는 12년 만에 감독이자 작가, 제작, 주연까지 맡은 작품 <헌트>로 돌아왔다.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으로서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첫 상영을 마친 그를 21일 오전 프랑스 칸 ‘테라스 드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제가 시나리오를 고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여러 감독이 연출을 고사하면서) 자존심이 상하고, 안 써주면 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컴퓨터를 잘 못하니까 몇 번 날려먹고 까무러치고 했어요. 영화 <대립군>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촬영 직전까지 최종본을 고쳤어요.”

이정재 감독에게서 그간 많은 고민을 거듭해 온 흔적이 엿보였다. 그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만큼 적어도 ‘투 톱’ 영화가 돼야 했다. 두 주인공의 행동에 강력한 명분이 있어야 했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의 주제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주제를 찾는 데 오래 걸렸다”며 “‘왜 이걸 해야하나’ ‘관객과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같은 질문부터 시작해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사건의 큰 흐름을 뒤집는 과정만 대여섯 번 정도가 있었다”고 시나리오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헌트>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고위 간부인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펼쳐지는 첩보액션 영화다. 신군부가 집권한 허구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두환 정부 전후로 벌어진 5·18광주민주화운동, 아웅산 테러, 이웅평 월남, 전경환 사기 사건 등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해 극을 이끌어가는 장치로 삼았다.

특정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인 주제로 삼기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해 1980년대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숙고 끝에 이 감독이 다다른 주제는 ‘어긋난 신념을 이제 그만 내려놓자’는 것이다.

“우리의 신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은 이전에도 이념 갈등 때문에 전쟁을 겪었고 마찬가지로 지금도 끝없이 갈등하고 대립합니다. 그게 너무 싫어요. 그런데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대립하고 갈등합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다시 하고 바꾸자. 그만 갈등하고 대립하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평호가 마지막에 ‘넌 다르게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그걸 얘기하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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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의 취조실 장면. 박평호(이정재·왼쪽)는 김정도(정우성)를 향해 소리친다. 취조실 밖 정도에게는 평호가 보이지만, 평호에게는 자신의 모습만 보인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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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양한 시각적 설정을 통해 주제의식을 전했다. 안기부 취조실 안에 있는 평호가 유리창 밖에 있는 정도를 향해 소리칠 때, 반투명의 유리에는 평호 자신이 비친다. 평호가 울부짖는 말이 정도는 물론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는 걸 표현하고자 했다. 극 후반으로 가면 전혀 다른 신념을 가진 평호와 정도가 재투성이가 돼 뒹구는데, 모든 얼굴이 회색 재로 덮이는 장면을 통해 결국에는 모두가 같은 색이라는 것을 나타냈다.

데뷔작부터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영화 상영 전후로 박수갈채를 받은 그는 “쑥스럽고 긴장됐다. 이렇게 오래 박수를 받은 건 처음인 것 같다”며 “실은 (상영 직후 마이크가 쥐어졌을 때) 영화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 이외에도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거나, 주변에 많이 알려달라는 부탁도 하고 싶었는데 긴장이 많이 됐고 생각보다 오래 조명이 안 켜져서 하고 싶은 말이 머리 속에서 날아가 버렸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은 코로나19 이후의 영화 산업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저한테 영화는 너무나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영화인으로서 엔데믹을 너무나 기다려왔다”며 “<헌트> 역시 세 나라를 배경으로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한국에서 촬영을 해야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벌써 극장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기쁘고 개봉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헌트>는 국내에서 8월 개봉 예정이다.

칸|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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