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과학자 부녀의 발칙한 용 만들기 프로젝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 세계 용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많은 동물 조합하는 상상력 감탄

크리스퍼 유전자 조작 기술 동원

불 뿜고 하늘 나는 용 구체적 설계

세계일보

과학작가이자 캘리포니아대학 세포생물학 교수인 저자는 마냥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용을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등 다양한 학문을 이용해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다. 사진은 러시아에 있는 머리가 3개 달린 용 조각상. 책세상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폴 뇌플러·줄리 뇌플러/정지현 옮김/책세상/1만7800원

거대한 날개로 하늘을 비행하며 무시무시한 불을 내뿜는 용은 신화에서 판타지 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동안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반지의 제왕’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드래곤 길들이기’까지 게임과 영화, 드라마 등 여러 매체에서 용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용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비록 신화 등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하고 마법을 쓰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반려용’으로 한강을 함께 산책할 수 있다면…. 러시아워 때문에 차가 막힐 때 용을 타고 빠르게 회사에 갈 수 있다면…. 이러한 상상이 마냥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생명체의 기본 구조인 유전자 내 원하는 부분만 잘라내거나 삽입할 수 있다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같은 최첨단 생명공학이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저자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조회수 130만회가 넘는 TED 강연으로 유명한 과학작가이자 캘리포니아대학 세포생물학 교수인 폴 뇌플러는 그의 딸 졸리 뇌플러와 함께 발칙하고 흥미진진한 용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책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진짜 용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는 졸리의 학교 숙제에서 시작됐다. 제목은 ‘용 만들기 프로젝트 : 재미 혹은 세계정복을 위해’였다. 우리 부녀는 산책하거나 저녁을 만들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이게 학교 숙제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용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을 함께 써보자고 결심했다.”

두 저자는 전 세계 용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동물을 조합하는 놀라운 상상력과 크리스퍼 유전자 조작 기술 등 최첨단 과학을 동원해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용을 만드는 과정을 상상했다.

세계일보

폴 뇌플러·줄리 뇌플러/정지현 옮김/책세상/1만7800원


용의 이미지를 상상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몸체, 공포를 불러오는 수십개의 머리, 강풍을 불러오는 광대한 날개, 화려한 불 뿜기 등이 모두에게 떠오르는 ‘용’이다. 판타지에서 이런 요소들은 당연하지만, 이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까다로운 생명공학이 필요하다. 어떻게 무거운 질량에도 하늘을 비행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어떤 발전기관을 달아서 언제든 불을 내뿜게 해줄 것인가. 그리고 용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려면 지적 수준을 어떻게 높여야 할 것인가.

저자는 동서양 문화 속 다양한 용을 살펴보면서 실제 용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설계했다. 그런 다음 백악기 공룡인 케찰코아틀루스에서 용의 날개를, 코모도왕도마뱀에서 성체가 된 용의 크기와 다리 개수 등을 상상했다. 언제든지 불을 내뿜기 위해 조류에 있는 모래주머니(근위)를 부싯돌로 이용하거나 전기뱀장어 전기발생세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가발전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아가 뇌과학까지 동원했다. 우리 편을 구분할 수 있지만 너무 똑똑해서 자아를 갖고 도망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똑똑한’ 용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군을 조작하며,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장치도 마련한다. 그러면서 용뿐만 아니라 인어와 유니콘까지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계해낸다. 이 설계과정에서는 역사학, 생물학, 화학, 유전공학, 인공뇌과학까지 다양한 학문이 아우러졌다.

하지만 저자는 용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본격적인 용 제작 단계에 접어들면서 저자는 용뿐만 아니라 복제를 둘러싼 생명윤리를 언급한다. 실제 용을 만들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나열하면서 정말 우리에게 용이 필요한지 자문한다. 더불어 코모도왕도마뱀 멸종 위기에 우리가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등 현실적인 질문도 한다.

과학기술은 상상 속 존재인 용을 이론으로 설계해 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부작용 없이 암세포를 죽이는 방향까지 발전하면서,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편집 아기’를 만들었지만, 이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용인되지 않으면서 처벌을 받았다. 2022년 3월에는 정자 없이 난자만으로 생쥐가 태어났고, 이러한 유전공학의 획기적 성과는 한편으로 인류를 비롯한 생명에도 언제든 조작이 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경고의 의미기도 하다. 용 만들기 프로젝트는 아직 실제로 진행된 적이 없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같은 기술로 완전히 새로운 유기체를 만드는 작업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일명 ‘바이오 해커’들은 말에 그치지 않고 시도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경고만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진짜 용을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만들려는 사람을 도와주려는 것도 아니다”며 “새로운 과학 분야를 살펴보며 지나치게 과장하는 과학을 풍자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생명윤리를 지키면서 과학에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