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째려보다 촬영돼…"작년까지 '1번 광수' 몰랐다"
"제 명예 훼손, 사과 꼭 받고파…시민군 죽은 것 확인하고 계속 울어"
대국민 보고회 참석한 차복환씨 |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루탄 발사 차(페퍼포그) 위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던 한 시민군의 정체가 42년 만에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개최한 대국민 보고회에는 참석 인원으로 예고되지 않았던 차복환(62) 씨가 등장했다.
차씨는 자신을 향하는 숱한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 듯 주변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아 40여 년 전 카메라를 피하지 않고 째려보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에는 찍힌 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기자님이 찍었더라"며 "그분이 꼭 저만 따라다니면서 찍었다. 찍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찍어서 엄청 화가 나서 째려보다가 찍힌 사진"이라고 말했다.
위원회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 기자는 차씨와 만나 "그때 (차씨의) 눈매가 굉장히 무섭고 예리해서 찍었다"며 "나한테 찍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웃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지 그간 논란이 많았다. 보수 논객 지만원 씨가 이 사진에 나온 사람을 광주 북한 특수군, 이른바 '광수' 중 한 명이라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지씨는 사진 주인공을 '광수 1번'으로 지목하며 북한 농업상 '김창식'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원래 수많은 무명 시민군 중 하나였다가 논란이 커지자 2019년 그의 정체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이 개봉되기도 했고, 이 까닭에 주인공에겐 '김군'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실제 사진에서 차씨가 머리에 두른 두건에는 '석방하라 김군'이라는 글자가 있다.
차씨는 "원래 '김대중'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전라도에서는 김대중 선생님을 우러러보니까 이름을 그냥 쓰기가 좀 그랬다"며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을 쓰라고 했는데 이미 '김'자를 써놔서 그럴 수는 없었기에 '김군'이라고 썼다"고 떠올렸다.
발언하는 차복환씨 |
그는 "저는 작년까지 제가 '1번 광수'로 돼 있다는 것을 잘 몰랐는데 집사람이 영화 '김군'을 보고 나서 제가 광수 1호라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를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제 명예가 훼손된 것"이라며 "사과를 꼭 받고 싶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법적 조치도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까지) 같이 못 하고 나중에서야 (희생된 시민군들을) 확인했을 때 그분들이 다 죽어있는 것을 보고 계속 울었다"며 "솔직히 잊으려고, 20년 동안 진짜 어려웠다. 술 먹고 힘들면 그 꿈을 꼭 꿨다. 그게 너무 싫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광수 논란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맘에 안 들었다"며 "그래서 그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얘기를 해야만 되는 듯해서, 그걸 증명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차씨는 당시 시민군 '특공조'에 속해서 '죽어도 좋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한 뒤 경찰 복장을 지급받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차씨는 영화 '김군'을 통해 논란을 알게 된 후 지난해 5월 5·18기념재단에 전화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제보를 이관받은 위원회는 당시 사진을 찍은 이창성 기자와 차씨의 현장 동행 조사를 통한 영상 채증과 진술 등을 통해 차씨가 사진 주인공이 맞는다고 확인했다.
위원회는 그간 차씨 대신 김군으로 불리던 인물은 5·18 관련 사망자인 1963년생 자개공 김종철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종철은 당시 현장에 있던 계엄군들을 면담 조사한 결과 효덕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연행되던 중 계엄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한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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