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팰로앨토 리더십 포럼에서 조현정 KDB 차장, 김용범 KIC 워싱턴DC 실장, 안익진 몰로코 대표, 차동준 만도 소장,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이태용 인터베스트 대표,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 이진형 엘비스 창업자(왼쪽부터) 등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팰로앨토 = 신현규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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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시작한 창업자들이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이상의 기업을 일구는 위대한 기업가로 도약하게 도와줄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난 4월 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한인 창업자들이 만든 회사들을 구글 메타 틱톡을 넘어서는 최고 기업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한국의 투자자와 공공기관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처절한 토론이 벌어졌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이건 오프더레코드(비보도)로 해주세요' '정말 곤란한 질문이네요'라는 말이 쏟아졌고 이 주제를 어떻게 하면 실천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건설적이면서도 치열한 생각들이 레이스를 벌였다.
이번 모임 '팰로앨토 리더십 포럼'을 주도한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엘비스 창업자)는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의 시대가 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데, 그 같은 시대가 오면 우리는 언제나 끼지 못한 채 소외되는 사례가 많았다"며 "한국에서 온 창업자들이 수동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미래를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와 공공기관을 비롯해 창업자 지원 환경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화두를 던졌다.
유니콘 기업을 일군 한국 출신 안익진·김동신 창업자는 한국 투자 환경에 대한 아쉬운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는 "창업자 입장에서는 자금을 빨리 투입해주는 투자자가 가장 좋다"며 "회사에 자금이 말라가고 있는데 투자자가 시간을 끌면 그만큼 힘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a16z 같은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에게 피칭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도전한 지 일주일 만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났고 왜 투자하지 않기로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매우 구체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투자하지 않더라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는 "미국 투자자들은 (한국 투자자들과 달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센드버드가 최근 투자를 받은 타이거글로벌과 아이코닉캐피털 등의 벤처투자자들은 대뜸 만나자마자 '센드버드가 10조원짜리 회사가 되면 말이지'로 서두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실제 10조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빠른 의사결정과 더 큰 곳을 바라보게 하는 신선한 자극 등을 투자자와 공공기관이 제공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 대표는 투자자들이 회사를 '해치지 않아(Do no harm)'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투자자들은 한국 창업자들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대안을 이야기했다. 1997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경력을 쌓은 김동수 LG테크벤처스 대표는 "한국이 못하는 것이라기보다 실리콘밸리가 독특한 점이 있다"며 "워낙 큰 성공 스토리들이 나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는 결국 파트너십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하고 나서도 회사가 잘 되게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999년 설립돼 연간 20%가 넘는 투자수익을 거두고 있는 벤처캐피털 인터베스트의 이태용 대표는 "우리는 운용보수로는 절대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는 자세로 투자한 회사를 위해 필요할 경우 컨설팅을 우리 돈으로 제공해주는 일을 실제로 하고 있다"며 "우리가 왜 이 회사에 투자했는지에 대한 내부 스토리가 남다르게 명확하다면 그 정도 참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사무소 형태로 실리콘밸리 다양한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만도의 차동준 소장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투자를 위한 딜을 발굴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아무 근거 없이 무작정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서서히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4년 가까이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현지 투자자와 엔지니어를 만나며 차 소장은 대체하기 힘든 네트워크를 쌓았는데, 한국에서 오는 수많은 기업의 파견 직원이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타 민족은 뭉쳐서 같이 좋은 스타트업을 키우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아직 함께 투자하고 회사를 키워나가는 뭉쳐짐이 없는 것 같다"면서 "힘을 모을 때 좋은 딜을 발굴하고 투자해 스타트업과 동반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설립한 KDB산업은행의 조현정 차장은 "실리콘밸리 내 한인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에게 투자라는 도구를 통해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한 시작점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용범 KIC 워싱턴DC 기업성장지원실장은 "한국인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데 시장이 작아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예가 많다"며 "이런 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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