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1970년 초 남북회담 회의록 첫 공개
남북회담본부 등에서 열람 가능
통일부는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 문서 및 사진들을 4일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남북대화 사료집 제2권 표지.(사진=통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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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분단 이후 남북이 첫 접촉한 1970년 초반 남북 회담 관련 문서 일부가 4일 일반에게 공개됐다.
통일부는 1970년 8월부터 1972년 8월까지 약 2년간 남북회담 기록이 담긴 ‘남북대화 사료집’ 제2~3권을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고 4일 밝혔다.
과거 남북대표가 회담에서 주고받은 내용이나 최종 합의안 등은 이미 보도됐던 것들이 회담 회의록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회담 자료는 생산 후 30년이 지나면 공개하는 ‘외교문서’와 달리 그간 비밀에 부쳐 왔다.
이 가운데 통일부는 지난 2020년부터 남북회담사료 공개를 추진해왔다. 회담 공개가 남북 관계에 미칠 결과를 고려해 공개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유관기관의 의견도 있었지만, 지난 1월1일 남북회담 문서 공개에 관한 규정을 통일부 훈련으로 제정해 예비심사와 유관기관 협의, 남북회담문서 공개심의위 등을 거쳤다.
총 1652쪽에 달하는 문서에는 분단 이후 남북이 적십자회담을 통해 처음 대화의 문을 연 시점부터 25차례에 걸친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까지의 진행 과정이 두루 담겨있다. 다만 이 가운데 개인정보나 국가안보비밀 등이 담겨 있다고 판단되는 418쪽은 비공개 처리됐다.
아울러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끌어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북측 김영주 당 조직지도부장 간 협상, 이후락 부장 및 김일성 당시 내각 수상 등의 회담 내용도 공개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 문서 및 사진들을 4일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은 양측 예비회담 수석대표 인사모습(위 사진)과 남북적십자 상비회담 장면 (사진=통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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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에 따르면 1971년 8월 20일 처음 만난 남북한 파견원들은 통성명 뒤 신임장을 확인하고, 회담 문서를 전달하는 등 임무에 집중했다. 당시 우리측에서는 대학적십자사 이창열 한적서무부장과 윤여훈 한적섭외부참사가, 북한 측에서는 서청철 조선적십자회문화선전부부부장, 염종련 조선적십자회지도원이 나왔다. 우리 측에서 “수해 피해가 없었냐”고 묻자, 북측 파견원은 “수해가 없었다”고 투명스럽게 말한 후, “임무는 이것으로 끝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6일 뒤 열린 제2차 파견원 접촉에서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북한 서성철은 “이미 구면이고 형제간”인데 또 신임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냐고 물었고, 이때부터 남북 적십자사 파견자들은 신임장 확인을 생략했다.
이어지는 3~5차 접촉에서는 남북 파견원들은 북한 측이 미리 준비한 ‘사이다’로 건배를 하며 좋은 회담을 기원하기도 하고,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을 나누기도 했다.
남북이 1972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최초 5개 항 합의 때, 북한 측이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이라는 문안을 두고 문제를 삼으며 쌍방의 기싸움이 팽팽하게 벌어진 사실도 살펴볼 수 있다.
공개 대상 문서는 △남북회담본부 △국립통일연구원 △북한자료센터 등에 마련된 ‘남북회담 문서 열람실’을 직접 방문해 열람할 수 있다. 남북회담 문서 공개 목록과 공개방법, 열람 절차 등은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통일부는 이번 남북회담 문서 시범공개를 시작으로 향후 규정에 따라 남북회담 문서 공개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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