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전 지역 학생 75%도 '군부 대항' 등교 거부 중
지난해 4월 미얀마 한 밀림으로 대피한 가족들이 움막 밑에 몸을 움츠린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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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9일 오후 8시 30분. 조용하던 미얀마 마궤주(州)의 한 마을에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려 현관문을 열었던 소에(11ㆍ가명)의 눈 앞에는 어머니 A(39)씨가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당시 한창 확산하던 미얀마인들의 '냄비 두드리기' 시위를 집 앞에서 지켜보다 쿠데타 군부 소속 정부군이 쏜 실탄에 맞은 것이다. 정부군은 황급히 어머니에게 뛰어 가던 소에를 제지한 뒤 부상 당한 A씨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날 소에의 가족들에게 "A씨의 시신을 찾아 가라"는 전화 한 통만 남겼다.
영안실에서 모친의 주검을 확인한 소에는 울며 비명을 지르다 기절했다. 이후 소에는 실어증과 만성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군부에 대항하기 위해 현지 의료ㆍ보건계가 동맹 파업을 하던 시절이라 치료를 받을 곳도 전무했다. 결국 가족들은 소에를 수도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친 마음을 치료할 곳은 종교시설이 유일하다고 본 것이다. 초보 승려가 된 소에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미얀마 사가잉주 시민들이 군부의 강제 등교 명령에 거부하는 의미로 붉은 물감을 칠한 티셔츠를 한 학교 교문에 걸었다.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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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만행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에선 지금도 제2, 3의 소에가 속출하고 있다. 24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종국(OCHA)과 국제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정부군의 반군 토벌작전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밀림으로 숨어든 미얀마인은 56만6,000여 명에 달한다. 피란민 중 40%인 15만 명은 17세 미만 취학 대상 학생들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지에선 발표 수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카렌니 지역 난민보호센터는 "유엔은 카렌니 실향민이 9만 명이라고 파악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에선 17만 명에 달했다"며 "부모의 동반 사망으로 홀로 밀림에 남겨진 아이들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란촌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도 소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난민보호센터 관계자는 "장남감과 간식을 줘도 아이들이 웃지 않는다"며 "일상이 된 군부의 공습과 포격으로 지속적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곤에서 활동 중인 카인 윈 정신과 전문의도 같은 소견을 내놓았다. 그는 "소에와 피란촌 아이들의 증상은 전형적인 아동기 트라우마 증상"이라며 "쿠데타로 촉발된 폭력적 갈등이 미얀마 아이들에게 전례 없는 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非)교전 지역에 거주하는 미얀마 어린이들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동남아시아 각국 학교가 이달부터 일제히 개교했지만, 미얀마 학교 대부분은 텅 비어있다. 군부의 강제 개교 명령에 저항하기 위해 부모들이 자녀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전국 각급 학교 수업 등록률은 25%에 미치지 못했다. 일부 군부 운영 학교는 등록 학생 '0'명을 기록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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