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18세 피선거권’ 시대 달라진 모습
총선·지방선거 출마 문턱 낮아지면서
2030 광역의원 예비후보 102명 등록
기초의원엔 2002·2003년생도 출사표
기초단체장 출마 29세 이하 예비후보
전국에 0명… 아직은 높은 '현실의 벽'
민주당, 청년 공천 할당제에 팔 걷어
국민의힘은 자격시험으로 공정 부각
21대 국회의원 300명 전수조사 하니
기초단체장·광역·기초의원 출신 18%
여야 의원 3명 ‘풀뿌리 트리플크라운’
“진영간 극단적 대립 감소” 긍정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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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1일 국회는 총선·지방선거의 출마 연령 기준을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그 덕분에 6·1 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 10대 출마자들의 장이 펼쳐진다. 문턱을 낮추니 정치 변방으로 분류되던 2030(20∼30대)세대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과감히 ‘유리천장’을 깨는 ‘유쾌한 도전’에 나선다.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기초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한 40세 미만 후보자는 316명으로 전체(3591명)의 8.8%에 불과하다. 경기도가 68명으로 최다이고 서울(51명), 부산(31명) 등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지방으로 갈수록 적은 편인데, 울산과 대전만 각각 한 자릿수인 1명과 5명이 출마했다. 2030 광역의원 예비후보는 102명이며 이는 전체(1429명)의 7%다. 지역구 수가 최다인 경기도에서 25명으로 가장 많이 도전했지만, 대구는 아직까지 예비후보 등록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정치권에서 청년 공천 확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막상 출마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어려운 현실을 무릅쓰고 여야 모두 10대 청년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기초의원 도전장 던진 10대들… “지역에서 청년 정치 펼치고파”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6·1 지방선거 경북 경주시의원에 도전하는 김경주 예비후보는 2003년 9월생, 현재 만 18세다. 지난 지방선거였다면 투표권도 없었을 나이인데 공직선거법이 바뀌면서 선거권뿐 아니라 피선거권까지 갖게 됐다. 현재 여야에서 출마를 선언했거나 검토하는 후보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김 후보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충분히 정착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다”며 “지방에서는 청년인구 문제가 심각한데 청년,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등을 위한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에 경주시가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6·1지방선거 경북 경주시의원에 도전하는 김경주 예비후보. 김경주 예비후보 페이스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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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에서는 경기 남양주시을 지역에 출마하는 최정현씨가 2002년 4월생(만 19세)으로 나이가 가장 적다. 최씨는 통화에서 “선거법 개정으로 출마 기회를 얻은 만큼 제가 살고 있는 남양주의 교통문제를 해결해보고 싶다”며 “그동안 청년 정치라는 게 할당제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새로운 청년 정치를 보여주고자 이번에 도전했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씨는 “계급장 떼고 비전으로 승부하자”며 인터뷰 내내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역대 국내 선거 최연소 출마자인 최정현 남양주시의원 예비후보. 남정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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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원과 달리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2030세대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전국 모든 지역구에서 29세 이하 예비후보는 현재 없다. 시군구에서 여러 명이 뽑히는 기초의원과 달리, 행정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단체장은 아직 청년들이 꿰차기엔 현실의 벽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 경기 성남시는 ‘청년 격전지’로 꼽힌다. 선관위에 따르면 전국 기초단체장 30대 예비후보는 17명이다. 그중 성남에만 여야 1명씩 2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정보기술(IT) 업계 출신의 민주당 이대호(32) 예비후보는 통화에서 “‘타다금지법’과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출마를 결심한 계기”라며 “제가 바라는 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세상은 누구도 대신 만들어줄 수 없고 용기를 내서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현 성남시의원인 국민의힘 이기인(38) 예비후보는 “부당한 정치로부터 땀 흘려 낸 시민의 세금을 지켜주는 성남시를 만들고 싶다”면서 과감히 체급을 올렸다. 두 후보 모두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하지만 열정과 패기만큼은 중장년 후보들에 뒤지지 않는다.
기초단체장 후보에선 보이지 않던 20대가 오히려 광역단체장 선거에 등장했다. 기본소득당의 김한별(29)씨와 문현철(27)씨가 각각 인천과 광주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은 대선 의제로 등장했던 ‘기본소득’을 각 지자체에서 실현하겠다며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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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청년할당제, 국민의힘은 공정경쟁의 장
여야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큰 틀은 비슷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민주당은 제도적으로 청년 공천 확대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민주당은 일단 청년·여성 공천 30% 이상을 확정했다. 20대 여성인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들어서면서 비상대책위에서 청년 공천을 강하게 주장한 덕분이다. 민주당은 청년·여성 30% 공천 여부를 지역위원장 당무감사 평가 기준으로 삼아 이행을 유도할 계획이다.
청년 출마 예정자들로 구성된 ‘그린벨트’라는 외곽단체도 최근 생겼다. 그동안 ‘각자도생’하던 청년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선거 실무 준비를 도와주고, 정보가 활발히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연대체로서 현재 110여명 모였다.
민주당이 할당제를 펼친다면, 국민의힘은 공천신청자 전원을 기초자격평가(PPAT : People Power Aptitude Test)에 응시하게 해 능력주의 기조를 확립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6·11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공직 후보자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과 소양을 갖추도록 하겠다”며 자격시험 도입을 공약한 이준석 대표가 주도한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당헌·당규(5문항). 공직선거법(5문항), 자료 해석 및 상황 판단(5문항), 당 정책(15문항) 등 PPAT 샘플 문제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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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청년 후보들은 할당의 배려를 받기보단 현역 등 기성세대와 동등한 토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역 당협위원장과 관계가 깊은 기성 정치인이 무혈 입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청년 출마자 17명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청년정치 활성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 승리는 단연코 개혁적인 공천에 달려있다”며 “청년이라는 이유로 공천이 할당되는 것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바라는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실력대로 경쟁하는 공정한 무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조직 선거’에 대한 우려와 함께 토론 비율 상향 조정, 공평한 홍보기회 등을 당 공천관리위에 요구했다. 다만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경선에 참여하는 청년 등 정치신인은 20% 가산점이 부여된다.
◆‘풀뿌리 정치인’ 55명, 중앙무대로 진출
국회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육법당’이란 말이 흔히 들릴 정도로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좌지우지했다.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에서 군인 출신은 점차 사라졌고 그 자리를 민주화운동 인사와 관료, 법조인, 시민운동가 등이 채웠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기초·광역의원·기초단체장 같은 풀뿌리 정치를 통해 실력을 쌓은 인사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1995년 지방자치가 도입된 이후에도 한동안 풀뿌리 정치인들이 중앙 무대에 입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수년 간 하나둘 여의도 문을 두드렸고 21대 국회에는 풀뿌리 출신들이 50명을 훌쩍 넘어섰다. 2030(20∼30대)세대가 지금은 지방선거에 도전하지만, 경험을 쌓고 지역에서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중앙 무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세계일보가 8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을 전수조사해 분석한 결과, 300명 중 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을 지낸 의원은 55명(18.3%)으로 역대 최대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27명 △국민의힘 25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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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입성한 의원 5명 중 3명(김학용·임병헌·조은희)이 풀뿌리 출신으로 지역구에서 저력을 과시했다. 이러다 보니 낙하산을 타고 온 명망가보다는 지역에서 기반을 닦으며 오래 활동한 정치인이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의 문이 더 활짝 열린 것이다.
기초단체장과 기초·광역의원을 모두 경험하며 ‘풀뿌리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의원도 3명(민주당 김성환·이해식, 국민의힘 이채익)이나 있다. 특히 이채익 의원은 이번에 울산시장 선거에 나서는데 경선 통과 후 당선되면 대선을 뺀 모든 단위의 선거에서 승리를 경험하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제주도의원을 거쳐 재선된 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이번에 제주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풀뿌리 출신 의원들이 현재 당 요직을 꿰찼다. 김성환 의원은 정책위의장, 용인시의원을 지낸 김민기 의원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풀뿌리 출신이 많아지면 진영 간 극단적 대립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부천시의원과 경기도의원을 지낸 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최근 세계일보와 만나 “지방의원 때는 지역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여야가 뜻을 모아 함께 해결한 경험이 많은데 여의도 정치는 사안마다 진영 대결로 갈라지고 갈등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며 “대립보다는 협치의 장을 만드는 정치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형창·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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