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사퇴 선언한 김기현 국힘 원내대표
'이준석 파동'중재 비화 '투머치'에 공개
"내가 만나 설득하겠다" 윤핵관 달래고
윤석열-이준석 회동 끌어내 상황 정리
사퇴여론 메모 들고 이준석 만나 담판
오후5시'강찬호의 투머치토커'상세보도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 측근들 간에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이 대표와 말이 통하는 내가 중재역을 했는데 그때마다 윤 후보가 내 뜻에 동의하면서 이 대표와 화해해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정권교체 성공으로 이어졌다. 원내대표로서 임무를 완수한 데 자부심을 느낀다"
임기를 한 달 남기고 조기 사퇴의 뜻을 밝힌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연말연시 두 차례 터진 '이준석-윤핵관' 갈등을 중재했던 막전막후를 공개했다. 30일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 인터뷰에서다. 일문일답.
-4월 30일까지가 임기인데 왜 한달전에 조기 사퇴의 뜻을 밝혔나
"정권 이양기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9년 전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권력이 넘어올 때 원내수석부대표로 민주당과 정부 조직 개편 협상을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40번은 만났다. 지금도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 등 민주당과 힘들게 협상할 현안이 많다. 또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예고돼있다. 거기다 6.1 지방선거가 코앞 아닌가. 여야 간 갈등이 극대화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미리 후임자에게 권한을 넘겨 협상을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미리 물러나는 거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겐 미리 얘기했나
"발표 전에 알렸다. (말리진 않았나?) 말릴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당선인과는 친한 사이 아닌가
"수시로 만나고 통화한다. 밥도 자주 먹는다."
-11개월간 원내대표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난 내 미션(임무)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성취는 물론 정권교체다. 지금은 국민의힘이 110석이지만 1년 전 원내대표 취임할 때는 103석이었다. 그러나 180석 민주당과 붙어서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다. 상임위원장 배분이나 추경, 예산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얻어냈고 언론중재법 같은 악법도 막아냈다."
-언론중재법 막을 때 기억나는 일은
"바로 이 자리(국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서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신문-방송사 대표단과 언론중재법안을 심사하며 토론한 거다. 결국 공정보도가 목표인데, 법안이 거기 부응하려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아주 세밀히 따졌다. 한 언론사 대표가 '이렇게 치열하게 법안을 심사하는 줄 몰랐다. 국회의 새로운 면을 보고 간다'고 하더라."
-180석 민주당과 싸우면서 기억나는 일은
"지난해 12월 추경안을 협상하는데 민주당은 '자영업자들에게 1인당 최소한 500만원씩 지원하고 손실보상률도 100%로 해주자'는 우리 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래놓고 1월 재협상할 때는 이 내용을 다 넣더라. 자신들도 그 지원금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상대방에 공이 돌아가는 건 싫고, 대선이 가까워질 때 자신들이 돈을 푸는 모습을 연출해 표를 얻으려는 나쁜 의도가 드러난 것이다."
-100석 겨우 넘는 야당 원내대표로서 180석 여당과 싸우기 힘들었을텐데
"결국 민심이 이기는 거다. 민심을 얻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썼다. 여당의 횡포를 국민에게 알려 관심을 끌면 여당도 부담을 느낀다. 그 틈을 친 것이다."
-지난해 12월 초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후보 측근들과 불화 끝에 '가출'했을 때 중재를 했다.
"이 대표가 지방을 떠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예산 처리 때문에 12월 3일까지는 손을 쓰지 못했다. 예산 처리를 미루고 중재역에 나서면 민주당이 '민생은 팽개치고 당내 정치에 올인한다'고 비난할 것 아닌가. 그래서 예산을 처리하고 나서 바로 이 대표에게 전화해 '만나자. 어디 있나'고 했다. 이 대표가 '제주도'라 답하길래 '제주도로 가겠다'고 하니 '곧 부산, 울산에 간다'고 해서 '그럼 울산에서 보자'고 약속을 잡았다. 직후 윤석열 후보와 그의 측근 6~7명을 만나 회의를 했다. 거기서 윤 후보 측근들 상당수는 이 대표에 쌓인 불만을 쏟아내며 '이젠 (이 대표를) 청산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더라. 정치적으로 이 대표를 배제하고 가자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이 대표를) 깨고 가선 안 된다. 붙이고 가야 한다'고 했다. 당시 당에서 이 대표와 얘기가 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윤 후보와 측근들에게 '갈등을 격화시키지 말고 기다리라. 내가 이 대표 만나 방법을 찾겠다. 결과는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바로 부산으로 날아가 공항에 내린 뒤 울산으로 향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윤석열 후보였다. '내가 울산에 가겠습니다'고 하더라. 그때 '(윤 후보 측이) 생각을 바꿨구나'란 느낌이 들었다. 이 대표를 껴안기로 말이다. 기분이 좋았다. 바로 이 대표에게 연락해 '윤 후보도 온다는데 셋이 보자'고 하니 이 대표도 '좋다'고 하더라. "
-그래서 어떻게 됐나
"울산에서 내가 먼저 이 대표를 만나 한참 얘기했다. 이 대표가 (윤 후보 측근들에게) 가졌던 불만을 다 얘기했는데 들어보니 접점이 보여 중재를 할 수 있겠더라. 이후 윤 후보가 울산에 도착해 셋이 고깃집에 갔다. 나랑 사전에 얘기가 됐기 때문에, 윤 후보와 이 대표 간의 대화는 잘 풀려나갔다. 이 대표가 '이런 이런 게 좋지 않나'고 제안할 때마다 윤 후보는 통 크게 '좋죠. 그럽시다'고 받아, 갈등이 봄눈 녹듯 해소됐다. 나는 분위기 띄우려고 연신 폭탄주를 말았다. 술이 약한 체질이라 다음 날 고생했다. 링거를 맞으며 종일 누워있었다."
-거기서 김종인 총괄선대위 위원장 추대도 성사됐다.
"주흥이 무르익는데, 돌연 서울에 있는 김재원 최고위원이 윤 후보 수행비서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옆에 김종인 위원장이 계시는데 윤 후보에게 전화 좀 받으라 해라'는 거였다. 윤 후보가 전화를 넘겨받아 김종인 위원장과 통화하면서 '크게 도와주십시오'고 청하더라. 김 위원장도 '그러겠다'고 해서 선대 위원장 추대까지 그날밤 성사된 것이다."
-그날 윤 후보와 이 대표, 김 원내대표 셋이 찍힌 사진이 화제가 됐다.
"셋이 술자리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처음에 윤 후보와 이 대표는 손만 흔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 대표를 돌려세우면서 '윤 후보를 안으라'고 했다. 그 결과 이 대표와 윤 후보가 포옹하는 멋진 사진이 나온 거다. 난 옆에서 박수 치고.(웃음)"
-그러나 올 초 이 대표가 윤 후보 측과 또 갈등을 빚어 '탄핵' 직전까지 가는 위기가 재발했다.
"지난해 12월 내가 코로나에 걸려 10일부터 25일까지 격리돼 있었다. 그때 그 난리가 난 거다. 윤 후보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12월 26일 출근하자마자 해법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는데 또 악재가 터졌다. 이 대표가 윤 후보에게 '내가 내는 연습 문제를 풀라'고 한 것이다. 윤 후보 측근들은 물론 의원들 상당수가 '심하다'고 했다. '아무리 당 대표라도 아버지뻘 되는 후보에게 이럴 수 있나'는 거였다. 난 '이제 마지막이다'는 생각에 일요일인 1월2일 선대위원회 회의에서 '이래선 무난히 진다. 선대위원 전원이 사퇴하자'고 질렀다. 위원들도 의견이 비슷했지만, 결론은 못냈다. 그래서 다음날 '나 혼자라도 사퇴하겠다'고 선언한 뒤 '끝장을 내자'는 심정으로 6일 의원 총회를 소집했다. 그런데 그 전날 저녁에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가 내게 '이 대표 사퇴 요구서'를 들고 왔다. '지금까지 이 대표 보호에 전력을 다했지만 이젠 방법이 없다. 이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나도 '그리하시라'고 했다."
-그때 이 대표를 정말 사퇴시키려는 뜻이었나?
"그런 뜻이 아니라, 사즉생의 심정으로 극한 처방을 해 난국을 해소하려는 것이었다. "
-원내지도부의 사퇴 요구에 대한 이 대표의 반응은?
"추경호 부대표가 사퇴요구를 전달한 가운데 의원총회가 열린 6일 이 대표는 대표실에서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의원들이 대표를 탄핵하는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다. 속이 타들어간 나는 마침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저녁 5시쯤 이 대표를 만났다. 내 호주머니엔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에 대해 논의된 내용(사퇴여론)을 적은 메모가 들어있었다. 그걸 끄집어내지는 않고 이 대표에게 말했다. '이제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합니다'라고 말이다."
-최후통첩을 하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인 듯하다. 이 대표 반응은
"이 대표는 '내가 당을 깨려 하겠느냐. 당을 살려야지. 나를 믿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난 '대표를 믿는다'고 하니 '그럼 좋다. 내가 의원총회에 가서 공개발언을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우리가 같이 사는 길로 가자'는 얘기도 나왔다. 그때 윤 후보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사에 있다'고 하더라.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여기 오시는 게 좋겠다. 이 대표와 상당 부분 얘기가 됐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대표를) 품겠다'고 하더라. 그 뒤 국회로 온 윤 후보와 이 대표, 그리고 내가 별도의 방에서 만나 갈등을 풀고 나와서 손을 잡는 사진이 찍힌 것이다."
-이준석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훌륭한 자원이다."
-국무총리 임명이나 장관 입각설이 도는데 향후 거취는.
"부족한 저를 후보군에 거론한 건 감사하지만, 원내대표 사직은 선공후사 차원에서 결단한 것뿐이지 다른 의도나 배경은 전혀 없다. 이제 다시 민생으로 들어가 백의종군하겠다고 페이스북에서 입장을 밝혔으니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이 기사는 30일오후5시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에서 상세보도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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